기후 붕괴 시대의 교회 십자가

기후 붕괴 시대의 교회 십자가

[ 기고 ] 함께 생각하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12월 29일(수) 12:38

깜깜한 밤이면 반짝이는 것들이 그립다. 밤하늘을 수놓는 고요한 별빛과 달빛이. 하지만 도시의 밤하늘은 온통 가로등과 간판, 그리고 요즘 같으면 거리의 나무를 칭칭 감은 형형색색의 불빛에 어지럽기만 하다. 도시 어디서도 어두울 권리를 누리는 밤하늘은 없다.

도시 밤하늘에선 교회들도 한 몫 한다. 붉은 십자가 불빛을 찾는 것은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교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오직 십자가 불빛뿐인 양 '더 크고 더 밝게' 하기 분주하다. 은은하면서도 품격 있는 불빛은 어디에도 없다. 하기야 연중무휴 24시간 켜놓고 있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겨야 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교회 십자가가 소비하는 전기가 얼마나 된다고 호들갑이냐고 할 것이다. '믿는 이는 물론이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삶의 지표로 제시하는' 십자가인데 어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다. 하지만 교회당 지붕 꼭대기 '첨탑 위에 있는 십자가'이니 더욱 우리의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십자가는 대개 2m 길이에 1.5m의 양 날개로 된 것이 사용되는데, 네온이란 조명이 둘러져 빛을 발한다. 하루 종일 켜놓으면 한 달에 2백kW의 전력을 소비해(28kg의 이산화탄소 배출), 3만3천 원 정도의 전기요금이 나온다. 저녁에만 켜 놓는다고 해도 대략 1백9kW 전력을 소비해 1만8천원의 요금이 나온다. 이 금액은 한 교회로 따지면 얼마 되지 않지만, 전국 6만 여 교회로 치면 한 달에 10억 원, 1년이면 1백20억 원이 넘는 돈이 십자가의 불을 밝히는 데 사용되는 것이다." <2005년 '환경주일예배자료' 중에서>

오늘날 하나님의 창조가 멸절의 위협 아래 놓여있는 것을 생각하면, 교회 십자가 역시 '기후 붕괴'의 현실 앞에서 거리낌이 없어야 한다. 교회 십자가의 에너지 고갈과 온실가스에 의한 기후 붕괴에 대한 책임은 얼마나 될까? 작게는 1년에 1만 톤의 이산화탄소만큼의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매년 그만큼씩 우리가 십자가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기후 붕괴의 위협 앞에서 우리 교회가 당당할 수 있도록 이렇게 해보자. 밤하늘 어둠을 밝히는 십자가 불빛이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수고로 자연스레 밝혀지게 해보자.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요즘 소비전력이 낮은 LED조명을 사용하는 것이 트랜드처럼 번지고 있는데, 현재 사용하고 있는 네온십자가의 10%도 안되는 전력만 사용하고도 불을 밝히는 LED조명 십자가를 세워 전기사용량을 줄이는 거다(조명시공비는 2m 십자가 정도가 대략 50여 만원이라고 한다). 내친 김에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어진 태양광전지판에 LED조명을 달아 밝혀보자. 설치한 태양광전지판에서 생산된 전기는 한국전력으로 보냈다가 다시 받아 십자가 불빛도 밝히고 또 다른 용도로까지 사용해보자.

가능하기만 하다면 종탑 위 십자가 불을 밝히는 시스템을 한전 계통과 아예 분리해서 태양광전지판을 직접 구입해 연결해도 좋을 일이다. 물론 낮 동안 하늘에서 오는 햇빛으로 생산한 전기로 밤하늘에 십자가 불빛을 밝혀야 하니 축전지와 인버터는 필수일 게다. 거기에 성도들의 수고를 더하고 싶다면 자전거 발전기를 덧대어도 놓아도 좋다.

하늘의 은혜와 우리의 수고가 만나서 밝히는 밤하늘 십자가 불빛이야말로, 우리의 교회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곳이 되게 하는 시작점이 되어줄 것이다. 아니 작금의 풍요와 편리에 흠뻑 젖어있는 세상을 밝히려면, 이 정도의 십자가를 자랑할 수 있는 교회라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십자가들이 크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우리의 진정한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유미호 /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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