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밟으면서

낙엽을 밟으면서

[ 젊은이를 위한 팡세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12월 09일(목) 10:46

지금으로부터 33년전 즈음에 부산 국제시장의 한 정류장에서 해운대에 있던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 노인이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허리는 굽어 지팡이를 집고, 손에는 허름한 시장바구니를 들었고, 나이는 아무리 적어도 75세쯤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그 노인이 내게로 다가오면서 웃는 모습이 돈을 달라는 것으로 보여서 한 발 뒤로 물러섰는데, 또 다가오고, 그래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도록 다가왔다.

그리고 그 노인이 시장바구니에서 부스럭거리면서 한 종이를 끄집어 내면서 "예수 믿으세요"하였다. 그 당시 해운대 오산교회 집사로 있었던 필자는 전도지를 받아 들고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흐르는 눈물로 눈을 뜰 수 없었다.

'예수 믿으라'고 전도하는 노인을 구걸하는 노인으로 착각한 내가 참으로 부끄러웠으며, 과연 나도 저 나이가 되어도 이름도 모르는 한 젊은이에게 "자네도 나처럼 예수 믿어!" 하면서 전도할 수 있을까? "만일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이 또 있을까?"

그 때 막 30을 넘겼던 나는 75세 이후의 나의 삶을 생각하였다. 앞으로 40년이 지난 후의 나의 모습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어릴 때부터 생각하여 왔던 신학교에 입학하여 목사가 되었으며, 그 때의 결정을 그 때 이후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가을이 가고 있다. 도로 위에 떨어진 노랗고 빨간 낙엽들을 밟으면서 그 아름다운 색과 소리에 흠뻑 젖어 걸으면 하나님께서는 조용하게 말씀하신다. 그래 너는 아름다운 색깔로 너의 삶을 마감하면서 떨어뜨릴 수 있느냐? 네가 떨어지고 희생되어 다른 생명을 살리는 버팀목이 될 수 있느냐? 라고 말씀하신다.

복효근 시인은 '버팀목'이란 시를 통하여 "태풍에 쓰러진 나무를 고쳐 심고/각목으로 버팀목을 세웠습니다/산 나무가 죽은 나무에 기대어 섰습니다"라고 시작하다가 "버팀목은 이윽고 삭아 없어지고/큰바람 불어와도 나무는 눕지 않습니다/이제는/사라진 것이 나무를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전개시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젠가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 위하여/나는 싹 틔우고 꽃피우며/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젊은 청소년 시절의 나는 앞으로 누구에게 희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누구를 살리는 버팀목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누구를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를 살펴야 한다. 그리하여 안도현 시인이 골목길에 버려진 연탄재를 걷어차다가 '너에게 묻는다'라는 짧은 시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고 물었던 것처럼 늘 나 자신에게 "너는 얼마나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하면서 살고 있으며, 살 것이냐?"고 물어야 한다.

김현승은 떨어진 낙엽들을 보면서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다가 문득 '이별'의 의미를 깨달았다. "지우심으로/지우심으로/그 얼굴 아로새겨 놓으실 줄이야…..흩으심으로/흩으심으로/우릴 흩으심으로/열매 맺게 하실 줄이야…..비우심으로/비우심으로/비인 도가니/나의 마음을 울리실 줄이야…어둠 속에/어둠 속에/보석들의 광채를 길이 담아두시는/밤과 같은 당신은/오오, 누구이오니까!"

이 늦가을, 자신을 지우시고 흩으시고 비우심으로 보석들을 빛나게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면서 나의 삶도 젊어서부터 늙어 허리가 굽기까지 이름도 모르는 한 청년에게 "자네도 나처럼 예수 믿어"하는 전도자의 삶으로 마감하려고 한다.

차종순목사 호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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