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 빚을 갚을 때

60여 년 전 빚을 갚을 때

[ NGO칼럼 ]

표현모 기자 hmpyo@pckworld.com
2010년 11월 24일(수) 09:16

지진 발생 3개월이 지나서야 아이티도 지진 이전의 활기를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지난 3월 31일에는 굿네이버스가 지원하는 라리뎀션(Ra Redemption) 초등학교가 레오간에서 최초로 임시학교를 개학했다. 지역사회가 재난 이전의 정상적인 삶을 되찾는 노력 중 중요한 한가지는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학교를 비롯해 모든 건물이 무너졌고, 수업에 필요한 기자재도 모두 파손돼 교사들과 학생들은 언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아이들이 아직도 지진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해 시멘트로 된 교실 대신 학교 운동장에 텐트를 치고 수업을 시작했지만, 표정은 눈부시도록 밝았다.

임시학교는 교과목이 아닌 심리 치료 교실로 운영됐다. 클로레스꼬엔더스(Clolescoenders, 남, 10세)는 임시학교 미술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중 자신의 얼굴을 그리는 시간에 펑펑 우는 모습을 그렸다. 굿네이버스 강사가 친구들 앞에서 그림을 설명해보라고 하자 "지진이 너무 무서웠다"며 그림과 같은 눈물을 쏟았다. 내면의 아픔을 외부로 표출하면서 지진으로 인한 심리적인 상황을 직면하고,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어떤 학생은 차가 전복되고, 꽃이 꺽이고, 시체들이 널려 있는 그림을 그렸고, 어떤 학생은 종이 한 가득 피로 범벅된 다리를 그렸다. 그렇게 내면의 두려움들을 외부로 표출하기 시작했고, 아이들은 조금씩 회복되어 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무너진 아이티의 땅에 작은 희망이 하나 둘 피어나는 것에 감사함도 잠시, 지난 달 중순 아이티 북부 제2의 도시로 불리는 카프아이시앵 등지에서 시작된 콜레라로 인해 사망자가 1천 명을 넘어선 가운데, 콜레라의 위협이 빈민 지역 및 난민 캠프촌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져가고, 모든 병원의 입원실이 넘쳐나고 있어 더 이상의 환자를 수용하고 있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굿네이버스가 학교 및 지역센터를 건축을 진행하고 있는 씨티솔레 지역은 높은 인구밀도와 열악한 위생시설로 인하여 콜레라로 인한 인명 피해 규모가 다른 지역보다 심각한 상태이다. 콜레라로 부모가 사망한 고아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편모(싱글 맘) 가정과 같이 취약계층으로 구성된 가정에 대한 지원이 절실해졌다. 그러나 열흘 앞으로 다가온 대선 등으로 인해 정부 및 국제단체 지원이 어렵고, 특히 씨티솔레 지역은 치안이 매우 불안정해 극심한 피해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정부 및 단체들의 지원이 요원한 상태여서 더욱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굿네이버스는 긴급구호 요원들의 치안확보에 보다 유의하면서 아이티 주민들이 일상생활로 하루속히 복귀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보건소 운영과 장기재건사업의 일환으로 학교건축사업, 레오간 지역의 제방공사와 쉘터공사 등 다양한 사업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씨티솔레 지역은 지역사회 위생환경 자체가 매우 열악하고 주민들의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콜레라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어, 보건소를 이용하는 환자가 하루 평균 2~30여명에서 100여 명으로 늘어나 의료 인력과 환자 수용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 이르렀다.
 
특히 이곳 지역 아동들의 경우 대부분 만성적 영양 불균형으로, 일반 성인보다 콜레라 감염 가능성과 치사율이 매우 높은 편임을 고려해 19일부터 보건소뿐만 아니라 씨티솔레 와프제레미에 거주하는 아동 400명을 대상으로 매일 급식프로그램을 실시, 아동 영양상태를 증진시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도록 할 계획이며, 매회 급식프로그램 진행시 보건 교육을 병행하여 콜레라 감염으로 예방할 수 있도록 할 지원할 예정이다.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보건소 인료인력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방역 인원을 충원해 2차, 3차 감염을 막기 위한 방역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현재 콜레라 확산 속도를 고려하여 적극적인 개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초기 긴급구호상황 당시 세계 각계 각 층에서 우려했던 제 2, 3의 피해를 눈으로 확인하는 지금, 아이티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이 필요함을 느낀다. 지금으로부터 60년 전, 한국 전쟁 발발 직후, 아이티는 우리나라에 2천 달러를 보내왔다. 한국은행 연감에 의거해 오늘날의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8백만 달러, 우리 돈 90억 원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60년 전에 받은 은혜를 되갚는 건 지진 직후에 쏟아진 온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아이티 대지진 참사. 비운의 역사로 잊혀지기에 아직 너무 이르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NGO로서 굿네이버스도 이 곳에서 최선을 다해 재건을 위해 힘쓸 것이며, 한국의 독자들도 이 곳, 아이티의 눈물을 한 번 더 기억해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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