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新)맹모삼천을 아십니까?

신(新)맹모삼천을 아십니까?

[ 예화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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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11일(목) 11:59

맹모삼천(孟母三遷)이란 사자성어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맹자의 어머니가 처음 이사를 간 곳이 묘지가 있는 동네였는데, 어린 맹자가 사람이 죽어 장례 치르는 놀이만을 하는 것을 보고서는 후회한 맹자 어머니가 거처를 시장으로 옮겼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하루에도 수백가지의 풍속도가 저자에서 일어나는데, 어린 맹자가 장사꾼들의 모습을 흉내 내기에, 맹자 어머니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서 이번에는 학교 옆으로 집을 옮겼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그 때부터 어린 맹자가 공부를 아주 썩 잘하더라고.

이런 이야기 흐름 중에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맹자 어머니가 바보 아닌가? 정신이 바로 박힌 사람이라면 어떻게 묘지가 있는 동네로 감히 첫 집을 구하여 갈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이러한 의구심을 합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 기존의 해석과 달리, 재해석이란 틀을 가지고 접근한 이야기가 이른바 '신맹모삼천(新孟母三遷)'이다.

어린맹자에게 맹자 어머니는 사람의 끝이 무엇인가를 먼저, 그리고 정확하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묘지 가까운 동네로 집을 구했다고. "사람이란 반드시 죽는다!" 이 분명한 명제를 어린 맹자의 마음에 밑그림으로 먼저 그려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 마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풍속도, 서로 흥정도 하고, 서로 속이기도 하면서 살아가게 되는데, 이런 세상에서 정말 바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배워야 하기에, 시장을 거쳐서 학교 가까운 곳으로 집을 장만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무척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맹자의 어머니를 바보의 자리에서 현명한 지혜자의 자리로 훌륭하게 세워 주는 해석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이런 지혜가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런 지혜를 일러서 나는 '살아있는 지혜, 살리는 지혜'라고 부르고 싶다.

생명력을 가진 지혜, 생명력을 주는 지혜! 앞이 캄캄하여도 이런 것을 볼 수 있는 눈, 혜안(慧眼)을 달라고 늘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한다.

김재남 / 목사 ㆍ아름다운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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