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화해는 복음의 꽃

평화와 화해는 복음의 꽃

[ NGO칼럼 ] 엔지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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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8월 26일(목) 11:13
오상열
목사ㆍ기독교평화센터 소장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평화와 화해는 복음보다 중요성이 덜하며 윤리적 차원에 속하는 분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평화와 화해는 실천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정말, 평화와 화해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복음보다 부차적인 것인가?
'평화'라는 용어와 그 파생어는 신약에서 1백회 이상 나온다. 우리말 성경에는 평화, 평강, 화평 등 각기 다른 번역이 있지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Peace be with you, 눅24:30, 요 20:19, 21,26)', '평강의 하나님' 등과 같이 성경에서 빈번하게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평화의 개념이 신약성경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반증한다. 하나님은 거듭 평화의 하나님으로,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성령은 평화의 영으로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사들의 노래 제목은 영광과 평화였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간에게는 평화를 주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산상수훈(마태 5~7장)에서 예수님은 "평화를 만드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으며 제자의 삶에 대해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너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이방 사람들도 다 하는 일이다!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치시며 사랑을 원수들에게까지 확대하셨다.

복음서에 이어, 서신서에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평화의 하나님'으로 부르며 일상적으로 복음을 '평화의 복음'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롬 5:1, 10)

하나님은 우리를 평화 가운데로 부르셨다.(고전 7:15) 우리는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화'를 알아야 한다.(빌 4:7) 베드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를 좇으라"(벧전 3:11)고 말하고 있으며, 바울은 서신 끝에 "너희에게 은혜와 평화가 있을지어다"라고 한 쌍의 단어를 쓰고 있다.

은혜와 평화, 바울은 이렇게 상호 의존적으로 연결된 신약성경의 본질적 주제를 에베소서 2장에서 발전시켰다. 하나님의 은혜로 유대인과 이방인, 할례자와 무할례자들('우리'와 '너희')이 구원받았다. 그 결과가 평화이다. 전에는 멀리 있던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피로 우리와 가까워졌다. 그분은 정말로 우리의 평화이시다(엡 2:14).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원수된 것을 소명하셨다.(엡 2:16) 그 결과 이방인과 유대인을 원수로 만들었던 벽이 허물어졌고, 그 허물어진 벽을 통해 새로운 인간성으로 이전의 원수들과 화해한 하나님의 권속이 되었다(엡 2:19).

예수님의 십자가는 평화의 중심점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자들의 용서를 빌면서 십자가에서 죽어갔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고, 또 인간과 인간 사이에 평화를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평화와 화해는 복음의 핵심이며, 교회는 이러한 복음의 기초 위에서 세워졌고 결국 교회의 기초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평화 사역의 결과이다. 오순절에 함께 모인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의 사람들은 갈등 속에서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하였다. 한국교회가 복음의 핵심이자 교회의 기초인 평화와 화해의 사역을 잘 감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마 5:9)'이라는 복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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