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돈 쓰는 기술'

할머니의 '돈 쓰는 기술'

[ NGO칼럼 ] NGO칼럼

권이영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8월 19일(목) 15:02

2006년에 있었던 일이다. 하루는 한국해비타트 본부에 웬 칠십 중반의 할머니가 불시방문을 하였다. 그 할머니는 대뜸 1천만 원짜리 수표를 내밀면서 사랑의 집짓기에 써달라는 것이었다. 무조건 감사하며 받아야 할 일이었지만 전혀 사전 통보도 없었고 워낙 연로한 분이라서 그 진정성이 확실치 않아 받기를 망설였다. 어디 사시는 누구시냐고 물어도 그런 건 알 필요 없다는 것이었고, 영수증 같은 것도 필요 없다는 것이었다. 좀 난감하여 운전기사 겸 수행원으로 동행한 분에게 이렇게 받아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다른 곳에도 그렇게 기부하신 일이 있으니 염려 말고 받으라는 것이었다.

수행한 분을 통해 그 할머니가 어느 종중의 큰 어른이며, 성남의 모 대학 정문 앞을 지나다가 때마침 걸려있었던 해비타트 사랑의 집짓기 관련 현수막을 보게 된 것이 계기라는 설명을 들었다. 결국 최소한의 인적사항만 듣고 그 돈을 영수했는데, 나가시면서 우리 스태프들이 수고가 많으니 마음대로 쓰라고 1백만 원짜리 수표도 한 장 내어놓으셨다.
이것까지 영수하여 우리는 그날 1천 1백만 원의 생각치도 않은 기부금을 받은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더 큰 일이 생겼다. 이 할머니가 또 나타나셨는데 이번에는 1억 원이 적힌 수표를 내미는 것이었고, 이번에도 또 안내하는 스태프에게 쓰라고 1백만 원을 주셨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안 들으시고 부랴부랴 수행원을 재촉하여 나가셨다. 이로써 우리는 모두 1억 1천 2백만 원의 기부금을 받은 셈이었다.

무엇이 그 할머니로 하여금 황혼의 시점에서 그러한 용단을 내리게 했나에 대하여는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혹자는 인생의 말년에 가서야 그런 식의 용단을 내는 것보다는 좀 일찍부터 나눔의 삶을 체계화하고 습관화했었다면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 더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을 거라는 이론을 펼 수도 있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좋은 일을 찾아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놓으려고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무 조건도 없이, 유형무형의 대가도 바라지 않고 말이다. 우리 NGO, NPO들은 이러한 좋은 사람들과 좋은 뜻의 재화(財貨)를 좋은 일에 연결시켜주는 가교이며, 동시에 이렇게 위탁 받은 재화를 적재적소에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성실히 사용해야 하는 청지기들이다.

우리나라는 거의 기적에 가까운 고속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온 국가와 기업과 개인들의 '돈 버는 기술'이 막강한 수준에 이르렀다고도 할 수 있다. 이제는 '돈 버는 기술'과 아울러 '돈 쓰는 기술'의 성숙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우리 NGO/NPO들은 이를 위한 계몽, 촉매, 조언, 지원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국가와 사회와 개인이 온전한 부(富)를 이루는 길이다.

이 이야기의 앞으로 다시 돌아가자. 뜻하지 않았던 할머니로부터 1억 1천 2백만 원이라는 기부를 받은 시점을 전후해 한국해비타트는 강원도 인제와 평창의 홍수피해지역 긴급구호 일환으로 컨테이너 정도 크기의 이동 목조주택 50채를 자원봉사자들이 땡볕 아래 제작해 밤새워 대형 트럭으로 배달하는 비상작전을 수행했었다. 예상 못했던 긴급 사업이어서 자금운영에 차질이 생겼다. 그런데 정산 결과 그 액수가 바로 1억여 원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할머니의 고마운 손길이 이 차질을 해결해 준 것이다. 좋은 일을 위한 기도의 힘을 우리는 믿는다.

권이영 / 한국 해비타트 상임고문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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