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부상조(相扶相助)

상부상조(相扶相助)

[ 생명의양식(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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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13일(화) 18:19

▶ 본문 : 마 7장 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상부상조'란 '서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사람이 필요한 모든 것을 혼자서 마련할 수 없습니다. 도움을 주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사람은 어차피 다른 사람과 함께 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은 서로 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도움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논어에 보면, 공자께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는 남에게 억지로 시키지 말라'입니다. 상부상조의 실례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지 않는 일을 당신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라'입니다. 부정적(negative)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상부상조의 '긍정적(positive)' 표현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러기는 혼자 나는 것보다 떼를 지어 날 때 71% 더 오래 날 수 있다고 합니다. 혼자 하는 것 보다 함께 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기러기가 날아갈 때 V자를 만드는 것은 천부의 지혜로 공기층을 형성하여 뒤따르는 기러기들을 날기 쉽게 만듭니다. 미물의 날짐승이지만 기러기는 서로 도와줍니다. 기러기가 날아가다가 V자 형이 흐트러지는 것은 임무 교대하는 때라고 합니다. 뒤따르던 기러기가 앞으로 나가고 앞서 날던 기러기가 뒤로 가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제일 앞에 나는 기러기가 가장 빨리 지칩니다. 기러기가 날면서 우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뒤 따르는 기러기에게 자기가 가는 방향을 알려 주고 서로 격려하는 소리랍니다. 만일 한 마리가 아프거나 부상으로 인해 함께 여행을 계속하지 못할 경우에는 서너 마리가 남아서 낙오자를 돕는다고 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우리 인간들은 동료를 경쟁상대로 보고 대열에서 낙오시키려고 중상모략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러기가 인간보다 상부상조합니다.

상부상조는 영어로 'co-operation', '함께 활동함'입니다. 협동입니다. 협동을 한문으로 '화합할 협(協)', '한 가지 동(同)’을 씁니다. 특히 '協'자는 '十'로서 세 사람이 힘을 합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十'로 상부상조, 협동해야 합니다. 나 혼자의 개성과 의견만을 주장하지 말고 남의 의견도 존중하며 마음과 뜻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영어에 이해한다는 말을 'understand'라고 합니다. 그 말의 뜻은 밑에 선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밑에 선다'입니다. 상부상조하려면 상대방의 밑에 서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위에 서서 상부상조하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인간을 이해하셨습니다. 배고픔도 억울함도 연약함도 유혹도 우리 주님은 아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상부상조하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해한 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 이 말씀을 천국시민의 가장 지고한 행동규범으로 황금률(The golden Rule)이라고 합니다. 철두철미, 이타적인 윤리 규범입니다. 실로 우리의 욕구는 이웃의 욕구가 무엇임을 알게 하는 척도입니다. 우리가 황금률을 그대로 실행하려면 나 자신이 먼저 양심적인 인물, 신앙적인 인물이 되어야 합니다. 고결한 인격을 갖지 아니하면 황금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까지는 할 수 있다 해도 대접하는 일을 실천하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친구를 주시고 이웃을 주셨을까요? "상부상조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힘을 합해서 돕고 살라'입니다. 그런데 정작 사는 모습을 보면 상부상조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화를 내고 무시합니다. 모든 이익을 혼자 차지하려합니다. 이런 개인주의가 우리 한국 사람에게서 유별나다고 합니다. 이렇게 좋지 않은 특성이 교회 안에서도 기승을 부립니다. 성도 상호간에 이해하려 하지 않습니다. 서로 도우려 하지 않습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19,20)"

여기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무엇이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이루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여기 두 사람은 상부상조의 최소 단위입니다. 하나님은 합심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시너지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1+1^2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힘을 모으면 그것이 3이 될 수도 있고, 4 혹은 6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합심은 위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상부상조하는 교회, 상부상조하는 성도가 됩시다.

조천기목사 / 증산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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