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선교 역사와 한국교회

세계선교 역사와 한국교회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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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6월 17일(목) 09:54
박준서 / 목사ㆍ경인여대 총장

첫 번째 이야기. 19세기 중엽 영국의 무역선들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던 시절, 영국과 중국사이에 '아편전쟁'이 일어났다. 영국 무역선들이 해외로부터 영국으로 실어간 물품 중에 영국인들을 매료시킨 것은 중국산 비단, 도자기, 중국차였다.

영국 상선들은 부지런히 이런 품목들을 실어 날랐다.  영국이 중국에 지불해야 할 무역대금이 늘어나자, '신사의 나라'라고 알려진 영국은 가장 '비신사적'인 추악한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것은 당시 영국이 지배하던 인도에서 생산된 아편을 중국에 팔아 그 돈으로 무역대금을 지불하려고 한 것이다. 영국은 엄청난 양의 아편을 중국 시장에 팔았고 중국인 중에 아편 중독자들은 늘어만 갔다. (약 1천2백만 명 이상으로 추산) 중국 조정은 이런 상황을 좌시할 수 없었고 영국의 아편 판매를 막으려 했다. 영국은 무력으로 대응했고, 결국 '아편전쟁'(1839-1842)이 일어났다.

중국은 당시 군사강국이었던 영국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영국의 일방적 승리로 전쟁은 끝이 났다. 1842년 양국은 '남경조약'을 맺게 되었다. 패전한 중국은 승전국 영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항복'조약이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남경조약의 마지막 조항이다. "중국 조정은 중국내에 기독교 교회를 세우는 것은 허락할 것"이다.

남경조약으로 중국의 기독교 선교는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중국 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오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편전쟁'때문이었다. 의식있는 중국인들이 기독교를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 교회들은 중국선교에 집중했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기독교인 수는 3~4%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이 공산화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낮은 수치임에 틀림없다.

두 번째 이야기. 1857년 인도에서 '세포이 반란'(Sepoy Rebellion)이 일어났다. 17세기부터 영국은 '영국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지배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영국의 인도에 대한 제국주의 정책은 더욱 강화되었고, 수탈과 탄압이 심해졌다. 이에 견디지 못한 인도 군인(세포이)들이 영국통치에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영국 측에서 보면 '반란'이었으나, 인도사람들 시각에서 보면 '독립운동'이었다.) 세포이 반란 때 많은 영국인들이 희생당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많은 인도 사람들도 죽임을 당했다. 왜 세포이들은 동족 인도사람들을 죽였을까? 세포이들은 기독교로 개종한 인도사람들을 죽였다. 인도사람이 어떻게 '정복자' 영국인들의 종교(기독교)로 개종할 수 있느냐?하는 이유였다. 오늘날도 인도의 크리스찬은 2%에 불과하다.

세 번째 이야기. 오늘날 전세계에서 단일국가로서는 가장 많은 이슬람교도를 갖고 있는 나라는 '인도네시아'이다.

1600년대부터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에 진출하여 경제권을 장악했고,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완전히 식민지화 했다. 1950년 인도네시아가 독립할 때까지, 네덜란드 교회는 인도네시아 선교에 열을 올렸다. 그러나 오늘날 인도네시아 2억 4천만명 인구의 86%가 무슬림이 되었다. 자존심 강한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정복자'의 종교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 선교의 실패의 역사는 아프리카의 여러나라들, 남미의 곳곳에서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선교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분명히 복받은 교회이다. 기독교는 이땅에 '민족 해방의 복음'으로 들어왔다. 초기 선교사들이 세운 기독교 학교들은 수많은 민족 선각자들과 애국자들을 배출해냈다. 그리고 일제치하에서 교회는 애국운동의 중심이요, 독립운동의 주역을 감당했다. 일제하에서 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일하러 가세 일하러가…"는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노래이기도 했고, 일제는 이 찬송가를 금지시켰다. 하나님은 한국교회를 특별히 택하셨다고 우리는 믿는다.

한국교회에 내려주신 은총의 분량이 큰 만큼, 오늘날 세계 선교의 책임도 더욱 막중함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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