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교회, 과거 넘어 미래의 동반자로

韓日교회, 과거 넘어 미래의 동반자로

[ 교단 ] 평양노회 주기철목사기념사업위, 재일대한기독교회 관서지방회 한일공동세미나 개최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06월 04일(금) 10:29
【일본 오사카=김혜미기자】 "삼가 우리는 '일본기독교단'의 성립과 여기에 이어 전시 하에 '교단'의 이름으로 범한 여러가지 죄과를 오늘에 이르러 회개하고 자각하며 주님의 긍휼과 이웃의 용서를 간절히 구하는 바입니다." (1967년 부활절 일본기독교단 스즈키의장 명의로 발표된 '제2차 대전 하에 있어서의 일본기독교의 책임에 대한 고백' 중에서)

   
▲ 동시통역을 통해 미나코목사의 강연을 청취하고 있는 이북노회협의회 회원들의 모습.

얼마전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한국 강점 100주년, 광복 65주년을 맞이하는 역사학계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한국과 일본 정부에 1910년 한일강제병합이 무효임을 천명할 것을 촉구했다. 분명한 '과거사 청산'이 선행될 때 '아시아의 이웃'으로서 양국 관계의 미래가 밝아질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2010년은 한일강제병합 1백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해다. '과거사 청산'하면 함께 떠오르는 것이 한가지 있다. 바로 한국 장로교회의 신사참배 결의다. 1938년 일제는 이땅의 모든 교회에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같은 해 9월 제27회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가결했다.

이후 교회의 지도자들은 '신사참배' 아래 둘로 나뉘었고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목숨을 잃은 이들도 생겨났다. 주기철목사가 대표적인 예. 주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1939년 12월 평양노회에 의해 목사직에서 파면됐고 지금까지 왜곡된 한일관계를 상징하는 인물이자 일사각오의 순교신앙인으로 기억돼왔다. 다시 평양노회에 의해 원천적 무효가 선언된 2006년 4월 18일 전까지 그의 신분은 여전히 파면된 목사였다.

주기철목사 복권 4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26일 일본 오사카에서는 한일공동세미나가 개최됐다. 지난해 동경에서 열린 세미나에 이어 평양노회 주기철목사기념사업위원회(위원장:손달익), 재일대한기독교회 관서지방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 이번 세미나에는 이북노회협의회 회원 및 일본기독교단 교역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미야마 미나꼬목사(고요엔교회)가 '일본 말기 한일 기독교인들의 수난을 생각하며' 제하의 발제를 통해 일본 여성목사로서 바라보는 주기철목사의 신앙에 대한 견해를 밝히는 한편 미래 동반자로서의 한일 교회의 관계를 조명했다.

   
▲ 세미나에 앞서 평양노회 주기철목사기념사업위원회, 이북노회협의회 회원 및 일본 기독교단 관계자, 오사카교회 성도들이 함께 자리했다. 이들은 강연을 통해 주기철목사의 신앙을 되새기는 한편 미래 동반자로서의 한일 교회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앞장설 것을 다짐했다.

"고교시절 일본사 수업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한 뒤 이를 계기로 한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고 한국인 남편과의 결혼을 통해 양국의 그리스도인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이 필요함을 알게 됐다"며 개인적인 소회를 전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한 미나꼬목사는 "우리 일본인 목사의 책임은 전 생애에 걸쳐 계속돼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이 사명을 이행하는 데 한 알의 밀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강연자 미나꼬목사는 물론, 주기철목사의 일사각오 신앙이 주는 메시지는 국경을 뛰어넘어 한일 양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울림이 됐다. 일본기독교단 오사카교회 오카무라목사는 "전쟁 중 일본교회의 책임을 생각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전도를 통해 일본의 신앙인들을 키워내는 데 있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역사적 왜곡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이번 세미나가 열린 오사카교회 담임 정연원목사는 "일본 선교가 힘들다고 생각할 것만이 아니라 생명바쳐 선교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우리에게도 순교자 신앙이 필요하다"고 했다.

   
▲ 손달익목사가 재일대한기독교회 관서지방회장 김종현목사에게 주기철목사 관련 전기를 기증하고 있다.
또한 평양노회 주기철목사기념사업위에서 출간한 주 목사의 전기를 기증받은 관서지방회장 김종현목사(나니와교회)는 "강연의 내용도 훌륭했지만 이렇게 고민하는 일본인 목사가 있음에 큰 감명을 받고 앞으로 한일 젊은 기독교인들의 연대에 희망을 갖게 됐다"면서 "60주년을 맞게 되는 관서지방회도 주기철목사의 신앙을 본받아 잠자고 있는 상태에서 깨어나 생명바쳐 투쟁해야 할 것"이라고 다짐을 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평북노회장 김석주목사(마장제일교회)는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미워하기 보다는 앞으로 관계개선을 위한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일본 학생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일본교회 내 지도자 배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면서 "신학교간, 교회간, 노회와 지방회간 교류도 의미가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사업을 계속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세미나 현장에서 만난 한 일본인 목회자는 "매일 5명, 연간 1천7백명의 일본 기독교인이 감소하고 있다"며 한국교회에 관심과 기도를 요청했다. 현재 일본기독교단 교회 주일 전체 예배 출석 인원은 5만8천여 명이다. "매주일 축구경기장에 들어갈 인원만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그의 말에 과거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한일 교회의 과제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주기철목사기념사업위원회는?
평양노회는 지난 2005년 제1백63회 노회 결의로 '주기철목사 복권 및 참회고백 추진 위원회'를 구성, 이듬해인 2006년 제1백64회 노회를 통해 주기철목사를 노회원 명부에 재등재시키는 한편 한국교회와 유가족을 향해 노회의 죄책을 고백하는 참회고백서를 발표했다.

이후 평양노회 주기철목사기념사업위(위원장:손달익)는 복권 1주년인 2007년 주기철목사의 신앙과 삶을 다룬 '예수의 양 蘇洋 주기철'를 출간한 것을 시작으로 2주년에는 주 목사의 신앙을 세계교회에 알리기 위해 이 책을 영어로 번역, 협력교단 및 신학교에 보냈고 지금까지 컨퍼런스 개최, 장신대 신대원생 장학금 지급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펼쳐왔다.

위원장 손달익목사(서문교회)는 "주기철목사는 그동안 역사 속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것으로 기억돼왔지만 행정적으로는 파면된 목사로 머물러있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20여년 전, 한차례 복적이 시도됐으나 불발에 그쳤고 지난 2006년에서야 노회가 공식적으로 주 목사의 파면이 성서는 물론 교회법절차에도 어긋남을 인정하고 원천적 무효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고 그간의 과정을 설명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도 있어요. 이러한 모임이 과거사를 들춰내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판하며 상처를 내는 일이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는 "3세대로서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야 할 신앙적 책무 앞에 서있다"며 "굴절로 뒤틀린 한일간, 한일교회간, 국민과 국민 사이에 관계를 바로잡으며 한일관계를 새롭게 하고 아시아의 평화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기 원한다"고 소망했다.

강연, 통역에 나선 가미야마 미나코, 홍이표목사 부부
 
   
▲ 강연자 미나코목사와 남편 홍이표목사, 딸 린아.
"이제는 남편이 내 생각을 가장 잘 아는 한국 사람이 됐죠."
 이날 일본어로 진행된 발제의 통역은 미나코목사의 남편인 홍이표목사(기독교대한감리회 파송 선교사)가 담당했다. 부부의 인연을 맺어준 곳은 연세대 어학당. 8년간 친구로 지내던 그들은 2006년 평생가약을 맺고 부부가 됐다.
 30년 가까이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이들의 결혼생활이 물론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가 경쟁할 때마다 미묘한 감정대립을 경험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미나코목사는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같은 사안을 두고 얘기하면서도 내면화된 정보의 차이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독도문제 등에 있어서도 일본에 사는 사람과 한국에 사는 사람이 오랜시간 서로 다른 정보를 접하며 오해의 뿌리가 깊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고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결혼생활을 통해 '풀뿌리 교류'에 대한 그들의 생각도 완전히 달라졌고 부부는 첫째 아이의 이름을 한일 기독교 교류에 평생을 바쳤던 구라타 마사히코목사의 저서 '내 선한 이웃 한국, 그리고 아시아'를 기념해 '린아(隣雅)'라고 지었다. "평생 한일 기독교 교류를 위해 살다가 한국에 묻혀 '한국의 흙'이 되고 싶다"며 마지막 말을 전하는 그녀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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