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현장, '지혜의 도시락'

구호현장, '지혜의 도시락'

[ NGO칼럼 ] 엔지오칼럼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5월 27일(목) 10:09
안홍철목사 / 총회 사회봉사부 재해구호담당 간사

요즘은 아내와 딸과 함께 작은 교회에 출석한다. 총회를 섬기는 사역 말고는 주일에 특별한 사역 없이 교회 출석을 하게 되었다. 보통 지하철을 타고 교회 가는데 지하철에서는 열차칸을 돌아다니며 구걸하는 분들이 있다. 딸은 필자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소쿠리에 두 손으로 정성스럽게 넣는다. 그런 사람을 여럿 만나게 된다. 그 때마다 딸은 돈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다 도울 수는 없다고 거절한다. 그러면서도 도우려는 딸의 순수한 마음만은 기쁘게 담아둔다.

필자는 그동안 도림교회와 화곡동교회에서 지적장애인 부서인 사랑부를 창립하는 사역을 하였다. 평광교회에서는 두 차례에 걸쳐 사랑부를 섬겼다. 한 번은 다운증후군 지적장애인 청년이 점심 식사시간에 줄도 서지 않고 새치기하면서 권사님께 밥을 달라고 하는 광경을 보았다. 권사님은 머뭇거리다가 음식을 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그것을 제지하고 줄을 서게 하였다. 권사님은 장애인이라 불쌍한데 그렇게 엄하게 교육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이런 일은 사랑부를 섬기면서 다반사로 겪는다. 권사님의 사랑과 열정은 깊이 새겨둘 만한 은사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다.

재해를 돕고 지원하는 것도 위의 두 경우와 마찬가지다. 지진이나 홍수를 겪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무너진다. 모두 다 배고프고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긴 사람들이다. 모두에게 물과 음식을 나눠주고 더 주고 싶은 마음이다. 생수 한 병을 얻기 위해 긴 줄을 선 사람들 중 특히 나약한 아이들과 연약한 여성들에게 한 병 더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도우려는 열정만으로는 안 된다.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 중 이 사람에게는 주고 저 사람에게는 주지 않으면 일관성을 흩뜨리게 된다. 이 집에 한 개를 주고 저 집에 두 개를 주는 것도 원칙을 깨는 일이다. 재해 구호를 위한 원칙을 세워야 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재해 구호를 할 때에는 우리의 한계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재민들의 욕구와 우리가 가진 자원 사이의 인도적인 간극(humanitarin gap)도 엄연히 존재함을 인식해야 한다. 이번 아이티 지진구호를 위해 우리 교단이 36억원을 모금하여 역대 최고 모금액을 기록했다지만, 그것으로 아이티 전체를 돕는다고 할 때는 지극히 작은 자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한정된 헌금을 가지고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아이티를 돕기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지만 지혜의 편린을 모으는 일은 우리의 역할이다. 배고플 때마다 도시락을 까서 야금야금 먹지 않고 아껴두었다가 예수님에게 갖다드린 오병이어 도시락이 큰 기적을 일으켰듯이 우리의 생활에서 지혜를 찾고 모아둘 필요가 있다. 가장 합당하고 때에 맞는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경험을 살펴보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한 푼 두 푼 모아 헌금한 교회와 성도들의 순수한 마음도 모아둘 일이다. 재해를 당한 이재민들의 요구사항도 놓치지 말고 경청해야 한다. 주먹구구의 일회성 지원을 벗어나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일에도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지혜의 편린을 하나씩 하나씩 모아두었다가 그 지혜의 도시락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래서 이론과 실천이 만나고 머리가 가슴이 통합되는 재해구호 지원이 되도록 힘쓰자.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