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성수는 '믿음의 고백'

주일 성수는 '믿음의 고백'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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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29일(목) 10:00
나겸일 / 주안장로교회 목사

1960년에 있었던 일이다. 존경받는 신학자였던 박윤선목사가 오랫동안 함께 사역했던 선교사들이 한국을 떠나는 날 부두로 전송을 나갔다. 배가 출항하는 날이 주일이었는데, 부두로 가는 길에 차가 고장나는 바람에 택시를 탔다. 나중에 교단에서 주일에 택시를 탔다는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교단을 떠났던 일이 있었다.

지금은 주일 성수를 하기 어려운 문화 속에 살아가고 있다. 주일에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직장들이 많고, 학생들도 주일에 학교를 가야 하고, 중요한 시험들도 주일에 치르고, 주5일 근무제가 보편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주일 성수를 가볍게 여기는 풍토가 확산돼가고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한국교회 안에 주일 성수에 대한 세 가지 정도의 흐름이 있다. 첫째, 주일 성수를 주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피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일체의 오락이나 매매를 금하는 것이 주일 성수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칫 율법주의로 빠지기 쉽다. 둘째, 주일 새벽부터 저녁예배까지 교회를 중심으로 주일을 보내고, 교회 안의 다양한 모임에 참석해서 활동하는 것을 주일 성수로 이해한다. 셋째, 주일 성수를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주일예배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기타 하지 말아야 할 목록들을 별로 개의치 않아 한다.

미국의 어느 교회는 성도들을 교회에 출석하게 하기 위해서, 교회 건물 안에 쇼핑센터도 만들고, 놀이 공원도 만들어 배려하고 있다고 한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교회의 주일 성수에 대한 엄격함이 이전보다 많이 완화되어 가는 것 같다. 주일예배 외에는 주일 성수를 별로 강조하지 않는 분위기도 있다.특히 수험생들에게는 교회의 영향력이 미미하다. 주일을 지키는 일이 신앙생활의 핵심인데도 입시를 준비하는 수험생이 주일에 빠지는 것을 부모도 교회도 묵인하는 경우들이 많다.

유대인들이 땅을 잃어버리고 세계를 2천년 동안이나 떠돌아 다니면서 그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던 이유가 안식일 때문이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의 신앙을 지켜주었다는 것이다. 주일 성수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율법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일 성수가 우리 신앙의 표현일 뿐 아니라, 우리 신앙을 지켜가는 보호막이 된다.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에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가 담겨져 있다. 안식일은 제 칠일 째이다. 그러나 주일은 안식 후 첫날, 일주일의 첫째 날이다. 주일과 안식일이 다른 측면이 있지만, 안식일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뜻과 은혜가 주일에 계승되고 구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주일은 안식일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일에도 안식 즉, 쉼의 요소가 있다.

주일에 '쉰다'는 것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한 생업을 중단하는  것이다. 주일 성수하고 쉰다는 것은, 나의 생존이 나의 노동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께 나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주일 성수는 '나는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믿음의 고백인 것이다.

지금 주일의 위치가 너무 흔들리고 있다. 예전엔 중요한 시험을 주일에 치르는 것을 피했다. 고 3이라도 주일에 학교가는 일은 없었다. 정부나 사회가 주일을 인정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있었다. 지금은 중요한 시험을 주일에 많이 시행하고, 학생들이 주일에도 학교에 가는 일이 많고, 주일에 수학여행 가는 학교도 많다. 주일에 출발하는 것이 저렴하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 인근의 한 고등학교에서 주일에 수학여행을 갔다. 3백명의 학생 중에서 주일이기 때문에 수학여행에 갈 수 없다고 불참한 학생은 1명이었다고 한다. 0.3%이다. 만일 25%의 기독교인 가정에서 주일이기 때문에 수학여행을 갈 수 없다고 했다면, 학교에서 일정을 변경하지 않았을까?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교회가 주일 성수를 소홀히 여기니까 세상도 그것을 소홀히 생각하는 것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을 내가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함부로 대하는 것이다. 이제 다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기초인 주일성수의 소중함이 회복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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