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의지, 신앙'

'운명, 의지, 신앙'

[ 생명의양식(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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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4월 21일(수) 17:21

▶ 본문 : 막 9장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인간은 출생시에 두 가지 상반된 요소, 즉 '운명(運命)'과 '의지(意志)'를 지니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운명에 자신을 맡기려는 운명론자가 되든지, 아니면 어떤 이는 의지를 앞세워 자신의 운명을 타개하고 극복하려는 가능성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일반적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은 자신의 노력보다 자기운명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됩니다. 운명을 앞세우면 인간은 선한 노력이나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도피시키려는 약자의 체념의식에 사로잡히고 맙니다. 그러나 반면, 의지가 강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불운한 환경을 불굴의 의지를 앞세워 노력함으로써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자신의 의지를 앞세울 때 그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인력을 다하고 천명을 기다린다'는 신념을 가지고 7전 8기의 정신으로 의지를 앞세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갑니다. 그래서 자신의 불행한 환경을 행복으로 바꾸는 인간승리의 주인공이 됩니다.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건강한 삶을 위해 우리가 지녀야 할 자세는 "개인의 장래는 타고난 운명보다 자신의 노력여하에 달려 있다"는 신념입니다.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된다는 말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노력하되 자신의 적성, 소질을 잘 파악해서 슈바이처의 생의 좌우명처럼 "우물을 파되 한 우물을 파라. 그리고 샘물이 솟을 때까지 파라"는 명언에 귀를 기울이면서 따라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인간의지의 한계성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자기가 노력해서 뜻(意志)대로 안 될 때가 현실 속에서 너무나 자주 있음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자기 능력의 한계성에 직면할 때 인간의지는 약해집니다.

지난 1996년 1월 12일 무궁화 2호 위성발사현장인 미국 플로리다의 공군기지에서 한국통신의 위성 사업본부 임직원들과 우주과학자들 20명이 참관해서 발사 직전에 돼지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낸 우스운 에피소드를 저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미신을 믿어서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98% 성공률이고, 성패 미지율이 2%가 된다면 그 2%를 방치하느니 전통적인 고유방식으로라도 미신을 의지하고픈 것이 과학자들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그러한 행동 역시 연약한 지성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의 의지는 약합니다. 하늘을 두고 맹세했으면서도 3일(作心三日)이 못가서 그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의지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약한 의지에 불굴의 용기와 힘을 공급해주는 묘약을 성경은 우리에게 복음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힘'입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나면서 맹인된 사람'을 앞에 두고 제자들이 누구의 죄 때문인가?(2절)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맹인 됨'의 배후를 두고 생전에 조상들 죄의 결과일거라는 운명론적 사고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철저히 그러한 운명론적 사고를 배제시킵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고 답변하신 후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운명을 시인하면서도 그 운명을 타개할 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가능성은 우리 자신의 의지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가시관을 면류관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상처의 흔적을 영광의 훈장으로 하나님께서 바꾸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실제로 어떤 역술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반 불신자들은 타고난 기(氣)가 절대로 바뀌지 않아 일생을 타고난 운명대로 사는데, 예수 믿으면 신비롭게도 기가 바뀌어 모든 운명의 사슬을 벗고 온전히 하나님 뜻대로 살 수 있음을 많이 봅니다." 그 역술인의 말을 바꾸어 옮기면, '예수 믿으면 팔자 고친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운명의 장난에 두려워하거나 스스로를 체념해서는 안 됩니다. 불운한 환경이 비록 깨져버린 유리 조각 같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깨어진 생의 상처투성이 조각들을 다 모아서 그리스도의 피로 아름다운 무지개 색깔의 빛을 발하게 다듬어 주십니다. 이 사실을 믿을 때 우리는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믿음의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옥중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바울 자신의 자족의 비결을 보게 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불안해하십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고용수목사/대구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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