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인 필란드로스

고린도인 필란드로스

[ 제11회 기독신춘문예 ] 제11회 기독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4월 06일(화) 18:41

글 : 정남희, 그림 : 조혜연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를 스데바나와 그의 동료들의 손에 맡겼고, 그들은 며칠 전에 고린도에 도착했다. 교회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먼저 그 편지를 읽었으며 이내 재빨리 교회는 반응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서야 비로소 바울의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바울을 처음 만났던 그 때를 떠오르게 하는 듯 그의 편지는 힘찼다. 내 기억 속에 그는 약한 몸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그는 건강한 사람보다 더 큰 일을 하는 약한 사람이다. 그의 열정이 이 편지 속에 묻어 있었다. 그래. 여전히 나는 바울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나를 사랑하지 않더라도……. 바울의 주옥같은 편지는, 그 가운데 사랑에 관한 대목은 나를 매료시켰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견디느니라."
 견뎌야 한다. 나는 사랑하기에 견뎌야 한다. 심지어 파문(破門)까지도…….


   
바울의 편지를 받은 고린도 교회는 즉각 회의를 소집했다. 그제 저녁 그 회의에서 나에 대한 파문 결정이 내려졌다. 이러한 결정전에 교회회의에서는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헬리나와 헤어지고 그녀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면 회개한 것으로 인정하고 약간의 징계는 하되, 파문 조치는 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헬리나와 사랑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바울의 편지 전체를 꼼꼼히 읽고 난 지금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된다. 바울은 나를 파문했지만, 바울은 사랑은 참고 견디는 것이라고, 우리의 지식이란 항상 부분적이며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믿음보다는 사랑이 더 큰 가치라고 편지로 나에게 일러 주었다.


지금 나는 아버지의 재산 일부를 가지고 헬리나와 함께 고린도를 떠나고 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지난날들을 돌아보면서 정리해보고 싶다. 누구에게나 있는 회귀본능이 내게도 있을 터인데 내가 다시 고린도로 돌아올 수 있을까? 내가 다시 아크로코린트를 오르고 페이레네와 글라우케 샘물을 마실 수 있을까? 이러한 걱정이 나를 짓누른다. 나는 아마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있었던 모든 것을 글로 정리하고 싶다. 그래야지만 내게 회귀본능이 용솟음칠 때, 책을 펴볼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라도 회귀본능을 달래야 하니까……. 이곳의 바람과 이곳의 바다와 이곳의 하늘과 이곳에서의 추억들을 모두 글로 담을 수 있었으면……. 나의 어설픈 글 솜씨는 이 모든 것들을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이지만 그래도 기어코 써보리라 생각하면서……. 이제 시작해볼까 나의 이야기를…….

지중해를 태양이 간지럽힌다. 뜨겁고 습한 바람이 해안으로 몰려왔다. 고린도의 여름은 언제나 작열하는 태양빛이 대지를 가득 메운다. 이곳의 여름은 대부분 건조한데 내가 태어난 그 해만큼은 우기가 가을, 겨울이 아닌 늦여름에 찾아왔다. 그 해는 참으로 끈적거리는 해였다. 보통 여름에는 항상 북풍이나 해풍이 불어와 더위를 식혀주곤 했는데, 그 해는 바람도 그렇게 많이 불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생모는 나를 낳는 일만큼 고생스러운 일은 없었노라고 나에게 자주 이야기해 주었다. 나의 유모가 그 때 상황을 잘 설명해 주었다.

"그 때, 너의 어머니가 땀과 피로 범벅이 된 채 너를 낳았지. 어쩌면 너의 피부가 그렇게 불그스름한 이유도 아마 그렇게 더운 여름철 고생하면서 태어났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구나."

이렇게 뜨거운 여름날에 태어난 나에게 아버지는 여름처럼 뜨겁게 사랑하라는 이유에서였는지 '필란드로스'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이 이름은 항상 나를 따라다녔고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사랑에 대해서 고민해왔다. 사랑, 사랑, 그 영원한 목마름, 이 계절과 함께 찾아온 갈증……, 그것이 나의 이름이다.

나에게 '사랑'이란 뜻의 이름을 지어준 아버지는 속되게 보면 '고린도 난봉꾼'이요, 좋게 보면 낭만가였다. 그는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로마인에게 지중해가 호수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내 아버지는 지중해 곳곳을 항해하면서 무역을 하는 상인이었다. 상인이 살아가기에 고린도만큼 매력적인 도시는 없었기에 아버지는 고린도인이 되기로 하셨다. 우리 집에는 세계 곳곳의 물품이 많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가져온 목각인형에서부터 인도에서 왔다는 향신료까지 다양한 종류의 물품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고린도의 토기, 놋그릇, 포도주 등을 내다 팔고 여러 지역에서 특산품을 사들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는 말하지 않았던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그는 사람까지도 거래를 했었던 것 같다. 자신도 한 때 로마인에게 포로가 된 그리스인이었는데……. 그는 자기의 올챙잇적 시절을 생각하지 못했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의 무용담을 들으면서 자랐다. 아버지는 항상 "내가 옛날에 말이지"로 시작하는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그리스의 함락과 초기 노예생활 이야기와 가정교사 시절 이야기, 통역관 시절 이야기, 밀무역, 시민권 구입 등의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들을 나에게 늘어놓았다. 아버지가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나는 출생과 함께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아버지는 시민권을 얻고 난 이후 자유롭게 무역을 했다. 물론 로마사회가 브로커(broker)가 가득한 세상이기에 그러한 세상에서 자유는 적절한 상납을 전제조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튼 아버지는 자유로이 무역을 하면서 지중해 곳곳을 다녔는데, 특히 여자를 좋아하여 어디를 다녀올 때마다 여자들을 데려왔다. 상납을 위한 여자 노예들도 있었고, 제법 유력한 가문의 여자들도 있었다. 아버지는 플라톤을 유난히 싫어했다. 그 이유는 당신 자신이 시를 사랑하는 가인(歌人)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시를 사랑하고, 능숙하지는 못했지만, 악기를 다룰 줄도 알았다. 우리 시대에서 음악을 즐기려면 음악 하는 노예를 구입하거나 고용해야만 한다. 이런 때에 노예를 통하지 않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시민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러기에 이것은 아버지가 여성을 매혹하는 좋은 도구였다. 그는 종종 자기가 작곡한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나는 바다사나이라네. 그대는 해변의 여인이라네. 그대 마음 내게 주오."
지금도 아버지가 흥얼거리던 노래가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버지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하게 되는데 이것은 비단 아버지만의 것은 아니었다.

섹스에 대한 집착, 사랑에 대한 갈망은 항구도시 특유의 것이었다. 항구에서 떠나가기 위해서는 신분조사를 받아야 했는데, 특히 매매되는 여자 노예의 경우에는 가혹한 성적 조사를 받기도 했다. 때때로 일부 출항에 지장이 있을 만큼의 문제를 일으킨 남성들이 신분조사를 무마시키기 위해서 성접대를 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고린도는 항상 야(冶)했다. 무역으로 인해 돈은 넘쳐났고, 곳곳에서 끌려온 여자 노예들이 가득했고, 오랜 동안의 항해로 섹스에 굶주린 남성들 또한 넘쳐났다. 항해는 남성의 전유물이었고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허기진 색욕이었다. 그 색욕은 항구에서 해결되었다. 항구에 위치한 여관에는 기본적으로 도우미들이 있었다. 명목상 그들은 오랜 항해에 지친 선원들을 어루만져주어 뭉친 근육을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명목상이었을 뿐, 그 여성들은 대부분의 남성을 더 긴장시켰다. 이에 더하여 고린도에는 또 하나의 명물이 있다. 우뚝 솟은 바위 언덕, 아크로코린트, 지금 내 눈 앞에 고린도 해안은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 눈에 선한 아크로코린트, 나의 놀이터, 아크로코린트. 그 위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그 신전에는 미를 얻기 위한 숭배자들이 많다. 미를 추구하는 여인 참배객들과 거기에 상주하는 여사제들, 그리고 그들과 동침하기를 원하는 남성들이 거기에 가득했다. 나는 바울에게 언젠가 한 번 이스라엘 원시 종교에 대해서 들었다. 바알신과 아세라신은 가나안 전통 신인데 그들은 농경과 대지를 주관하는 신이었다고 하였다. 가나안인들은 그 두 신을 경배하였는데 그 두 신을 경배하는 자리에는 꼭 성적인 경험을 처음 하는 소년소녀가 성행위 장면을 공연하고는 했다고 한다. 그것은 남녀의 교합처럼, 농경과 대지의 신이 교합하여 풍요를 내려 줄 것을 비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쩌면 고린도의 아프로디테 신전도 이와 유사한 기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에 더하여 아프로디테 신전에는 하나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아크로코린트에 아프로디테 신전이 생기기 전에도 이곳은 주변과는 달리 우뚝 솟은 바위가 있어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제우스신이나 포세이돈신 등에게 기도하고자 하는 자들은 아크로코린트에 올라갔다. 어느 날 한 못 생긴 여성이 성전 앞에서 구걸하던 절름발이를 보고 불쌍한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그 여성은 그에게 줄 돈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 여성은 물었다.

"내가 가진 돈이 없는데 돈 이외에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해보시겠어요?"
"제가 어려서부터 이 모습이어서 그 어떤 여성도 나를 사랑해 주지 않더이다. 나를 안아 주시고, 나를 성적으로 만족시켜 주셨으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 여인은 그 절름발이에게 자신의 몸을 바쳤고(布施했고) 산에 올라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기도를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아프로디테 여신의 복을 받아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화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이 흘러내려오면서 아크로코린트에는 아프로디테의 신전이 세워졌고, 미를 얻고자 하는 자는 나그네에게 자신의 몸을 바쳤다. 거룩한 문란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고린도에는 속된 창녀와 거룩한 창녀들이 가득했다.
 
나에게는 신앙이 없었다.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니 신앙이 없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의 신념체계를 가지고 있다. 다만, 나는, 내가 신앙이 없다고 말한 이유는 내가 그리스ㆍ로마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전통적으로 그리스인들이 가진 신앙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종종 신전을 찾았지만, 내가 신전을 찾은 이유는 신앙이 아닌 순전히 육체적인 욕망을 해결하기 위한 이유에서이다. 그래. 나에게 신앙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육체적이다. 나는 아크로코린트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미친 듯이 뛰어오르곤 했다. 나에게 춤은 저 하늘에 닿을 만큼 풀쩍 힘 있게 뛰어오르는 것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고린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이시무스 제전이 열렸다. 건장한 남성들이 자기의 신체의 건강을 뽐내는 자리였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나에게 종교는 육체적이었다.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는……. 나는 그리스인이라면 누구나 들어보았을 신이니, 이데아니, 질료니 하는 말들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그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육체와 감각, 환경과 환경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 뿐이었다. 

가끔씩은 우주의 생성과 기원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지만 탈레스였던가? 물이 세상의 근원이라고 했다길래,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해변에 서보면 누구나 알 수 있다. 물은 물이고 모래는 모래라는 것을……. 아무튼 탈레스라는 영감님 덕분에 나는 철학이란 말에는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 나는 종교나 철학에는 무관심했다. 아니 혹은 어쩌면 지금까지 나는 그런지도 모른다.

바울과 만나게 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내 어린 시절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어린 시절 나는 유모에 의해서 길러졌다. 아버지의 여성 편력 덕분에 나에게는 많은 어머니가 있었다. 유모 역시 아버지의 여자였는데 그녀는 아버지와 연애를 통해 만난 사람은 아니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청탁과 함께 뇌물로 바친 여자였다. 얼굴은 그렇게 못생긴 편은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취향은 아니어서 그녀는 아버지의 여자이기보다는 우리 집의 가정 살림을 돌보는 식모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유모와 아무런 관계를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제법 교양인이었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그는 로마군인으로 돌변하곤 했다. 나 역시도 그러한 술주정의 희생자였다. 그리고 아버지의 여자들도 그런 술주정을 견디지 못했다. 아버지가 술에 취한 날은 아무도 아버지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오로지 나의 유모만이 그 자리를 지켰다. 나의 유모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다. 나의 생모는 유모와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술 취한 아버지는 유모를 때리곤 했다. 유모는 그런 아버지의 곁을 지켜 주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때려놓고는 뒤이어 자기가 우는 이상한 술주정의 소유자였다. 그 때 유모는 자기의 품에 아버지를 안아준다. 마치 왜 아버지가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아는 사람처럼……. 한 번은 유모에게 아버지와의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린도에서 사랑이란 말은 다분히 성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자신은 그것을 소중한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모는 고향이야기를 가끔 해주었다. 마질(?)이던가? 유모의 고향지명이 생각나지가 않는다. 아무튼 유모의 고향은 고린도처럼 이렇게 성적으로 개방된 곳이 아니며, 한 사람과의 영원한 일부일처제는 아니지만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지역이었으며, 은밀한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을 꺼리는 지역이라고 하였다. 자신이 고린도에 정착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고향에서의 성관념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끔 내가 여성의 몸과 성적 감수성에 대해서 엉큼한 질문을 할 때면, 그녀는 곧잘 얼굴을 붉히곤 했다. 나는 그런 모습이 재미있었다. 고린도 여인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는 지금 가장 후회스러운 것은 유모에게 작별인사를 못한 것이다.

유모와 달리 나의 생모는 출세지향적인 사람이다. 그녀는 나에게 아버지와 만나게 된 것이 운명적이었노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녀의 성격과 가문간의 관계로 보아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 같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아버지와 같이 원래는 그리스인이었다. 그는 아버지처럼 로마시민권 획득을 위해서 노력했지만 실패하였다. 그는 내 아버지에게는 있는 약간의 학식과 수완과 상술이 없었다. 그는 악착같이 돈을 벌어 로마시민권을 얻고자 했지만, 로마인들은 그의 이런 심리를 이용하여 그에게 많은 돈을 요구하고는 돈을 받은 후에 모른 채 하기도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그는 믿음직한 브로커나 로비스트를 만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로마시민권을 획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기의 딸을 정략적으로 혼인시킴을 통해서 시민에 준하는 권위를 얻고자 했다. 그 목표가 아버지였다. 아버지 역시 결혼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 능통했다. 이 부분에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손발이 맞았던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포세이돈 제(祭)에서 만났다. 고린도 지역에는 여름에 바다에 폭풍이 없기 때문에 여름이 주된 항해철이다. 이 항해철에 앞서 매해 혹은 2년에 1번 정도는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포세이돈 제가 열린다. 포세이돈 제는 낮부터 밤까지 이어진다. 무더운 여름철 고린도는 너무도 낮이 뜨겁기에 사람들은 밤에 활동을 많이 한다. 특히 포세이돈 제가 열리는 날은 모두가 술에 취해 있기 때문에 그날의 밤은 찬란하다. 곳곳에 모닥불이 피워져 있고, 여기저기 사람들은 모여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술에 취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이날은 평소보다 더 자유분방한 성관계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내일이면 선원들이 출항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나 바다에서 죽을지도 모른다. 고린도의 여자들은 그러한 선원들에게 자기의 몸을 바친다. 포세이돈 제의 문란함도 다분히 종교적이다. 포세이돈 제가 끝나면 많은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속담을 읊조린다.

"오늘이 그날만 같다면 좋으련만……."
이러한 포세이돈 제에서 나의 생모는 나의 아버지를 운명적으로 만났노라고 했다. 그 때 아버지의 얼굴에 아우라가 있었다고 내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니지만……. 아우라, 나는 어머니의 말을 믿지 않았다. 사람에게 아우라가 생긴다는 말을, 헬리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내 생애 유일한, 내게 태양과도 같은 헬리나……. 지금 내 곁에 함께 하는 이 여인, 헬리나. 나는 이 여인으로 인해 많은 것을, 어쩌면 거의 모든 것을 잃었다. 내가 여전히 존경해 마지않는 바울도, 내가 한 때 몸을 담았던 고린도 교회도, 나의 아버지도, 나의 고향도, 나는 이 여자로 인해 잃었다. 하지만 나는 이 여인으로 인해 모든 것을 얻었다. 그것은 마치 바울이 예수로 인해 모든 것을 잃었고,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을 찾았다는 말과 비슷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바울이 사랑하던 예수를 사랑한다. 하지만 내가 이 여인을 만나면서 느낀 것이 두 가지가 있다. 나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 예수가 만일 나의 입장이었다면 나와 같이 했을 것이라는 것…….
 
이 여인과 어린 시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어쩌면 내가 헬리나를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는 날보다 훨씬 전에 우리가 한 번쯤은 만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항상 내 주변에는 나를 호위하는 노예들이 있었다. 나의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사는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종종 노예들을 데리고 거리를 활보하곤 했다. 거리에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우리처럼 부유하게 보호를 받으며 자라는 사람은 소수였기 때문에 우리들은 구걸하는 아이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나는 어린 시절 그 시선을 즐겼다. 턱을 조금 치켜세우고, 눈을 지그시 아래로 보면서 우리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동전이나 빵을 던져주곤 했다. 종종 나의 심술궂은 친구들은 빵을 던져주며 개처럼 먹어보라고 하거나 한 데나리온을 줄 테니 거리에서 자위를 해보라고 하기도 하였다. 가난한 아이들은 부유한 고린도 부자들의 빵부스러기를 먹으며 성장한다. 그 아이들이 자라면 목숨을 건 항해를 떠나는 선원이 되거나 소작농이 된다. 고린도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넓은 대지가 펼쳐지는데 그 대지 위에 대지주들이 운영하는 포도 농장이나 올리브 농장이 있고 그곳에는 항상 많은 일꾼이 필요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빵을 던져 주는 일을 우리는 뿌듯하게 생각했다. 그것은 고린도를 살찌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을 굶어죽게 하면 안 된다. 그들을 고린도의 청년 노동자로 키워야 한다고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배웠다. 우리는 빵을 던져 주면서 많은 일을 했다. 걸인에게는 빵을, 로마인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 그것을 나와 내 친구들이 했다. 바울을 만나기 전까지, 바울이 전한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그 생활을 한 번도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한 일은 죽어가는 자를 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이렇게 먹을 것과 동전을 던져 주는 일은 비 오는 날에는 더욱 재미가 있다. 진흙에 파묻힌 동전을 찾으려 애쓰는 녀석들, 진흙 묻은 빵을 주워 먹고는 기뻐하는 녀석들……. 비가 내리는 날은 세상은 참으로 우스운 곳이 된다. 하지만 가끔은 진지해지기도 했다. 진흙 묻은 빵을 입에 물고 웃음 짓는 바보 녀석들을 보며 부럽기도 하였다. 빵 한 조각에 웃는 바보들보다 세상에 온갖 맛있는 음식을 차려 놓고 먹고 토하고 먹고 또 토해가면서 식도락을 즐기려 하는 더 심각한 바보가 나였으니까. 사실 그렇게 먹어도 공허함은 채울 수가 없었다. 나의 욕망은 마실수록 더 갈증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나는 거지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배고프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지나가던 내 어린 날, 비 오는 어느 날이었다. 머리를 삼발로 한 여자애에게 동전 한 닢과 빵 한 조각을 던져주었다. 소녀는 동전과 빵이 떨어진 쪽으로 손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진흙에 파묻혀버려 소녀는 찾지 못했다. 그 주변에 있던 남자 녀석들이 소녀를 밀치고 얼른 가져가 버렸다. 나는 애석한 마음이 들어 그 소녀에게 다시 한 번 더 던져 주었다. 역시나 그 소녀는 가져가지 못했다. 나는 나의 호위 노예들에게 물었다.

"왜 저 애는 줍지 못하는가?"
"아마 눈이 어두운 모양입니다. 그냥 가시죠."
"아닐세. 불쌍하지 않은가. 손에 무엇이라도 좀 쥐어주고 싶네만."
"그럼 제가 전하지요. 빵 한 덩이와 한 데나리온이면 되겠습니까?"
"아니, 내가 하지."
"도련님, 제가 하겠습니다. 굳이 손을 더럽히실 것까지야 없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냥 내가 하고 싶네."

그 때 나는 그 소녀의 손을 펴서 빵과 은전 한 닢을 전해주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 신께서 나으리께 복 내리시기를……."
"나으리는 아닐세, 어찌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는고?"
"어린 시절에는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는데 계속 눈이 나빠져 지금은 거의 보지 못합니다. 낮과 밤도 눈으로는 구분이 안 되고, 피부에 닿는 태양의 온기로 낮과 밤을 구분하지요."

"저런저런, 고생이 많네, 계속 수고하시게."
"감사합니다. 나으리"

나는 아버지가 일하는 노예들과 헤어질 때 쓰던 말을 무심결에 소녀에게 내뱉었다. '고생이 많네. 계속 수고하시게.' 속으로 생각해 보니 참 웃긴 말이었구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꺼낸 말을 곱씹다 보니 자꾸만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길을 가면서 실없이 웃는 일은 체통이 없어 보일 것 같아 입을 손으로 가렸다. 내 손에서 평상시에는 맡을 수 없는 냄새가 났다. 하지만 그 냄새는 그리 불쾌하지는 않았다. 그 냄새를 아직도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후 나는 그 골목을 가끔 지나곤 했는데 그 소녀를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헬리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 소녀가 헬리나가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헬리나의 손내음과 너무 비슷해서……. 헬리나의 손내음, 지금은 너무도 자주 느낄 수 있지만 내가 처음으로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섹스보다 더 달콤한 키스가 있음을, 나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면서 알게 되었다. 헬리나에 대한 이야기로 이 밤을 지새울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알게 된 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정착한 뒤 한 3달 정도 지난 뒤였다. 그 전에도 나는 길거리에서 종종 바울과 마주쳤다. 그 때만 해도 나는 바울이 나와 마찬가지로 로마시민권을 가진 사람인지 몰랐다. 그는 천막 만드는 일을 했는데 나는 가끔씩 그의 일터에 가서 천막을 구입하곤 했다. 지중해의 뜨거운 여름 해안에서는 천막이 없이는 견디기가 힘들다. 레케이온 항구 근처에 아버지의 별장이 있긴 했지만 천막 그늘 아래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일이야말로 피서의 매력 아니겠는가? 여름이 지나고 나는 천막이 더 이상 필요가 없어 바울에게 천막을 가져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버리려다 가져왔네. 자네는 이걸 업(業)으로 하니 유용하겠지? 자네가 하게."
 "자네라니, 나 역시 로마인이네."
 "어이쿠, 형님. 그러십니까?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나는 출생 때부터 로마인인 고귀한 혈통이야. 자네는 시민권을 돈 주고 구입했는가? 보아하니 그럴 형편이 되어보이지도 않네만."
 "이 녀석 보게. 나 역시 출생 때부터 로마인이라네. 혹시 가말리엘이라고 들어보았는가? 공부를 좀 했다면 알겠지. 내가 그 밑에서 공부를 했었네."
 "그럼…, 로마시민에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를 했다면 도대체 당신이 지금 천막을 만드는 이 광경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겁니까?"

그렇게 나와 바울의 대화는 시작되었다. 바울과의 사귐이 깊어갈수록 나는 그의 인격과 열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바울과 나 사이에는 나이 차이가 제법 많았다. 바울은 내가 형이라고 부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에 나에게 매번 사도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형이라고 불렀다. 나는 사도라는 말보다 형이라는 말이 더 존경을 담고 있는 말이라고 변명을 하면서……. 나는 그의 헬라어 발음을 놀리곤 했었다. 그는 항상 'ㅋ', 'ㅎ'를 발음할 때 그리스인과는 다른 발음을 했다. 뭐랄까 약간 가래가 끓는 느낌이랄까? 침 뱉을 때 '퀘'하고 소리 내는 그런 느낌, 나는 가끔 그의 소리를 흉내내고는 했는데, 그러면 나에게 버럭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나는 시간이 있을 때면 종종 바울의 천막 작업실에 갔다. 나는 아버지에게서 새로운 것에 대한 열린 태도를 물려받았다. 바울이 들려주는 이스라엘 이야기, 예수 이야기는 나에게 참으로 신선했다. 그의 직업이 천막을 만드는 일이었기에 그는 곧잘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네 인생이란 이 천막과도 같지. 언젠가 우리는 이 천막을 벗게 될 거야."
"형이 말하는 천막이란 것은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거야? 그럼 육체보다 더 중요한 정신, 이데아 뭐, 그런 것들이 있다는 말이야? 플라톤처럼?"

형은 자기를 플라톤과 비교하는 것을 싫어했다.
"나는 플라톤과 같은 먹물이 아니야. 나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지."
이렇게 말을 하고는 예수에 대해서, 기독교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인간에게는 영혼과 육체가 있어, 그런데 죄를 범하면 영혼은 그 기능을 상실하게 돼. 우리는 그것을 영적 죽음이라고 부른단다. 보이고 활동해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면 우리는 그가 죽었다고 말해. 또한 영적 죽음 외에 육체적 죽음도 있지. 육체적 죽음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죽음을 말해. 죽은 육체는 모두 땅에 썩게 되지. 인간은 이 두 가지 죽음 앞에서 자유롭지 못해. 육체적 죽음이 끝은 아니야. 그것이 끝이라면 아마 나는 천막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이곳에 오지 않았을 거야. 우리는 부활을 믿어. 믿는 자든 안 믿는 자든 모두 부활하게 될 거야. 그리고 부활 이후에는 심판이 있지. 부활이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 더 말하자면 일단 지금의 육체와는 다른 모습의 육체로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하지. 그것 때문에 나는 육체를 천막이라고 말하는 거야. 새로운 육체로 부활하게 될 테니까."

"부활이라고? 형. 그리스인은 부활을 믿지 않아. 우리는 삶만을 믿어. 그리고 육체를 믿어. 나는 형이 들려주는 예수 이야기를 좋아해. 그의 삶, 그의 죽음은 항상 새로운 자극과 도전을 줘. 하지만, 형. 우리 그리스인이 진정으로 형이 생각하는 부활을 믿을 수 있을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형이 이 고린도에서, 아니 이 그리스에서 기독교를 전하고 싶다면 부활이란 개념을 포기하든지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해야 할 거야."

"아니야, 내가 네게 전하는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은 없어, 필란드로스. 부활의 교리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기독교 신앙이라기보다 이교(異敎)에 가까워.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메시지야. 예수는 심판을 면하게 하기 위해서 자기를 대속제물로 던졌어. 예수는 죽었지.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했어. 그는 특이하게도 옛 육체를 새 육체 삼아서 부활했어. 그는 승천했고 곧 오리라고 약속했어. 이것을 믿어야 해. 전 인류는 부활하게 될 것이고 모든 피조물의 탄식이 끝나게 될 거야. 부활 이후의 심판, 예수의 희생, 그로 인한 하나님과의 화해됨, 이것들을 믿어야 해. 성령의 충만을 사모하고 성령 받기를 간구해라."

나는 바울 형과 대화하다가 당황할 때가 종종 있다. 그것은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말투가 설교로 바뀔 때가 있기 때문이다. 조근조근 대화를 하다가도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그는 강력한 폭풍으로 돌변했다. 지중해에 불어 닥치는 유라굴로라는 겨울 폭풍처럼 강력한, 확신에 찬 목소리로 선포했다. 사실 그 역시도 때때로 우리의 인생은 불확실한 것투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도 두렵다고……. 두렵고 떨림으로 산다고…….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수가 잦다고 하며 그는 말하기보다는 글쓰기를 더 좋아했다. 그는 회당에서 설교를 할 때도 꼭 기록한 원고를 그대로 읽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스러운 사람도 복음에 대해서 말할 때면 강력한 확신의 사람으로 변했다. 마치 나는 다른 인격을 보는 듯했다. 바울 안에 다른 바울이 있는 것처럼, 한 사람 안에 또 다른 인격이 자리하고 있다는 느낌……. 언젠가 한 번은 형에게 형이 마치 고린도에 있는 영매들처럼 가끔씩 다른 인격에 사로잡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형은 버럭 화를 내었다.

"감히 하나님의 사도를 누구랑 비교하느냐? 네가 감히 나를 이교도와……. 네가 아직 성령을 알지 못하는구나."
나는 순진하게 물었다.
"형, 그럼 성령이 뭐야?"
"진리의 영, 보혜사, 거룩한 영이야."
"형,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말이야. 나는 유대인이 아니라고……. 나는 그리스인이야. 좀 더 쉽게 현실적인 언어로 말해줄 수 없어?"
"그래? 그렇다면 예수의 영이라고 해두지. 누구든지 예수를 주(主)로 고백하려면 성령을 받아야 해. 단순하고 투박하게 말하면 성령은 예수의 영이야. 예수에 대해 참된 앎과 신앙을 가지는 것은 예수의 영을 만날 때 가능하지."

"영이라……. 또 영에 대한 이야기구나. 많은 그리스인들은 영혼의 존재를 믿어. 하지만 나는 잘 믿어지지 않는 걸. 그것은 도대체 내가 감각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란 말이야. 나에게 영이란 말은 너무나도 모호해. 다른 말로 영을 설명할 수는 없을까? 영에 대한 이야기 없이 나에게 기독교를 말해줄 순 없어?"

바울은 갑자기 돌변해서 나에게 설교를 시작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고, 육으로 난 것은 육이야. 아직 네가 성령을 받지 못해서 그런 거야. 성령 받기를 간구해라."  다시 나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나는 예수를 잘 모르겠다. 기독교도 잘 모르겠다. 영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겠다. 내가 모르는 이유는 성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령은 내가 의지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리고 바울 형이 선물로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나는 무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나의 무지는 계속 반복된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이…. 나는 읊조렸다.

"나에게 보이는 기독교, 내게 삶을 말해줘, 형."
나는 바울에게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화를 원했지만 이 말을 하게 되면 또 다시 설교를 듣게 되리란 것을 나는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무지에서 쳇바퀴를 돌리고, 나의 반복되는 질문에 그는 또한 그의 복음(혹은 그의 성령론)으로 쳇바퀴를 돌렸으니까….

신비로운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곧잘 반항했다. 그러나 내가 여전히 바울 곁에 머무른 이유는 그에게서 예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로마의 평화(Pax Romana)하에서 만족하면서 지냈고 신분제는 나에게 안전망이었다. 세상은 그야말로 태평천하였다. 우리는 평화로웠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언제나 거리에는 빈민이 가득했지만 번화한 고린도 거리에서는 구걸을 하면 연명은 할 수 있었다. 이런 태평천하의 시대에 바울은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예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갈릴리의 예수 이야기, 예수의 수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로마의 평화가 얼마나 거짓된 것인가를 느끼게 되었다. 예수를 죽이고 누리는 로마의 평화가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가르쳤다. 우리가 같은 믿음 안에 있으면 노예도 형제로 여겨야 한다고……. 그는 노예를 형제로 대하는 삶을, 자신이 로마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몸소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영적 모습보다 그런 현실적인 것에서 기독교를 인식했다. 나의 신앙은 영적인 것이 아닌, 삶(生活)적인 것, 현실적인 것, 행동적인 것에 기초하고 있었다.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 나는 예수 이야기를 더 바울보다 더 자세히 들려주는 이야기꾼 몇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예수의 비유와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부자 청년의 이야기였다. 예수는 부자 청년에게 말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그 부자 청년은 울면서 돌아갔다고 한다. 반면 제자들은 자기의 생업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고 했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에게 부(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을 버리라니……. 이 얼마나 파격적인가? 분명히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약간의 돈을 기부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나는 그렇게 살아갈 수가 없다. 나더러 고린도의 구걸하는 거지들처럼 살아가라는 말은 내가 가까이 다가설 수 없는 차원의 말이었다. 하지만 바울의 영적 이야기들보다 예수의 메시지는 더욱 더 선명했다. 예수의 말은 하나같이 나에게 도전적이었고 내 삶을 자극했다. 나는 되도록 예수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길 바랐고, 두로와 시돈으로 항해를 하는 선원들에게 항상 예수에 대한 자료를 얻을 수 없냐고 묻곤 했다.

   
바울이 고린도에 머물면서 제법 많은 신자들이 생겼다. 그리스보와 가이오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바울의 메시지는 나에게는 그렇게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많은 고린도인들에게는 호소력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몇몇은 열광적인 방식으로 믿기도 했다.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울은 그것을 방언이라고 나에게 말해주었다. 열광주의자들은 그것이 성령의 역사라고 말했다. 종종 병이 낫는 일도 있었다. 그러자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열광주의에 빠져들었다. 나는 그것을 기이한 일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신비의 차원이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그것들이 기이한 일일 뿐이다. 나의 감각으로, 나의 경험으로 신비를 맞이하지 못했기에 나는 여전히 그것을 기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다른 고린도 교회의 열광주의자들처럼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런 것을 하지 않아도 나는 신을 믿는다. 아니 인간이 된 신, 예수를 믿는다. 나는 신을 시험하고 싶지는 않다. 신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싶지 않다. 헬리나, 눈이 어두운 헬리나를 보면서 전지전능한 신을 시험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헬리나의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당신의 전능함을 내가 믿겠노라고 외치고 싶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니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십자가에서 신음하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목마르다 말하는 신을 믿기 때문이다.

바울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한 가지를 더 말해야 함을 느낀다. 나는 그리스인이자 로마인이기에 유대인의 정서를 이해할 수가 없다. 바울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클라우디우스 칙령에 의해서 로마에서 추방되어 이곳으로 이주해왔다. 클라우디우스 칙령은 로마에서 유대인을 법적으로 강제추방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나는 법적으로 사람을 추방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이해되기도 한다. 유대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너무도 다르다. 우리들이나 그들이나 삶 속에 종교가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율법이란 것은 우리 그리스인들이 추구하는 자유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것이다. 같은 고린도 교회에 있으면서도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자들은 나와 같이 식사하기를 꺼리고 고기도 먹지 않았다. 특히, 고기도 돼지고기는 절대로 먹지 않고, 피는 완전히 제거한 이후에야 먹는다. 아무튼 고린도인인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습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유대인이었다. 그런데 더 신기한 일은 새로이 갈리오 총독이 아가야 지방에 부임해 오면서 발생했다. 예전에는 아테네가 가장 번성한 도시였는데, 지금은 고린도로 아가야의 수도가 옮겨졌다. 그래서 지금은 고린도에 총독의 관저가 있다. 갈리오 총독은 새로이 부임해 오면서 지역의 여러 현안들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그 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유대인들이 집단적으로 바울을 고발한 것이다. 그리스인들에게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인들은 자기의 견해를 언제나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도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고 바울의 사고방식이 율법에 위배된다면서 그를 고발했다. 갈리오 총독은 유명한 철학자 세네카의 동생답게 역시 지혜로웠다. 바울의 가르침이 당신들의 문화권에서는 문제를 일으킬지 몰라도 로마법에는 저촉되지 않으니 고발요건이 충족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쉽게 말하면 귀찮다, 당신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물론 그는 정치가답게 교양이 있는 말투와 수완으로 유대인들을 돌려보냈다. 나에게 그 사건은 유대인들의 이상한 풍습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해프닝이었지만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1년 반 정도의 고린도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 사건을 다른 지역을 선교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바울의 역사를 해석하는 방식이 신기할 따름이다. 작은 해프닝들을 어떻게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해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무튼 그는 고린도를 떠날 준비를 마치고는 고린도 동쪽 사로니카만에 있는 겐그레아항으로 떠났다. 나도 그 때 동행했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바울과 함께 고린도를 떠나겠노라고 했고, 바울은 겐그레아 항구에서 서원한 바가 있다면서 삭발을 했다. 저렇게 떠돌아다니는 생활방식과 서원한 바가 있다고 삭발하는 풍습까지…. 1여년의 동안을 바울과 사귀어왔지만 나는 당최 유대인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나는 노잣돈으로 약간의 헌금을 바울에게 건넸다. 바울은 그렇게 떠났고 이후에 에베소에 머물고 있다고 들었다. 이후에도 고린도 교회는 계속적으로 바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한 번은 아볼로가 바울이 머무르고 있다는 에베소에서 와서 한동안 설교를 해주기도 했었다. 교회에 문제가 생기면 스데바나와 글로에 등 바울과 친분이 깊은 이들을 통해서 구두와 서면으로 상황을 전달했고, 바울은 항상 친절하게 모든 의문들에 답을 주었다. 대부분의 경우는 구두나 짧은 편지로 답변을 전했다. 그 편지들은 항상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대부분의 글들은 상황이 종료가 되면 잊혀지곤 했다. 그런데 내가 어제 읽은 그 편지는 워낙 강력하고 또한 고린도 교회에 불러일으킨 파장이 크기 때문에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라진 예전의 편지들과는 달리……. 나는 두 번 다시는 그 편지를 볼 수 없겠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내가 사랑하는 헬리나로 인해서…….

이제 마지막으로 헬리나와의 이야기를 끝으로 이 추억록도 끝을 내어야겠다. 헬리나. 그녀는 나에게 태양이었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특이하게도 나는 그리스의 신들을 믿지 않는다. 우리 도시에 태양신 아폴론의 신전이 있었지만 나는 그 신을 믿지 않는다. 구경삼아 몇 번 놀러가곤 했지만, 한 번도 경배를 한 적은 없었다. 그리스인답지 않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신이 있어 신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신전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아닐까?"

사실 그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로 다른 이들과 논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스인들에게 신은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분이니까, 나에게는 그렇지 않지만……. 아폴론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다른 곳으로 갔다. 아폴론은 태양신인데 나는 그 신을 믿지 않는다. 나에게 태양은 헬리나니까……. 나에게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태양 헬리나가 있다. 애석하게도,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눈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의 온 존재는 나에게 태양이었고 빛이었다. 그녀의 어두움은 나에게는 빛이었고, 그녀의 상처를 보았기에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상처들에 입을 맞추고 싶었다. 내가 그녀에게 무엇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 아니 그 이전에 이미 그녀가 나에게 온 존재로 다가왔다. 예수의 십자가 고통이 전 인류에게 빛으로 다가온 것처럼, 그녀의 상처와 아픔이 나에게는 나를 살게 하는 이유로 느껴졌다. 바울이 이 여인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았더라면 차마 나에게 파문이라는 심각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진흙 속의 진주이다. 사람들은 진흙만을 볼 뿐이다. 그녀는 창녀이다. 그렇다. 그녀는 아프로디테 신전 앞에서 몸을 팔던 창녀이다. 나 역시 그것을 부인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것은 내 신앙과 신념에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 바울은 늘 이렇게 말했다.

"나의 삶 곳곳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그것을 의심하게 된다.

"앞을 못 보게 된 여자가 신의 섭리를 믿을 수 있겠는가?"
이 여인이 생존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구걸하는 것과 몸을 파는 일뿐……. 혹이라도 그녀에게 밝은 눈이 있었다면 적어도 몸을 팔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최소한의 선택이라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이 여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신의 섭리가 있다면 그녀는 신의 섭리대로 처절한 삶의 구렁텅이로 빠진 것이다. 그녀가 몸을 파는 것은 그녀만의 죄일까? 인류 전체의 죄일까? 법은 무죄인가?…….

바울이 있을 때도 그랬고, 바울이 떠난 후에도 나는 가끔씩 사창가를 들렀다. 바울을 만나기 전부터 계속 되어온 고린도적 삶의 모습을 버릴 수 없었다. 독신으로 살아가는 바울을 보면서 나는 놀랐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욕망이 충동질하는 이 고린도에서 어떻게 그렇게 살아갈 수가 있는지……. 그의 설교를 들으며 가끔씩은 나는 남성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서 원망하기도 했다. 주기적으로 배설하고자 하는 이 육체를 한없이 긍정하던 고린도적 삶에서 기독교는 남자로서의 육체를 경멸하도록 나를 내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나는 내 육체를 나의 정신으로 길들이지 못했다. 나는 주기적으로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맹인 창녀인 헬리나를 만났다. 그녀를 만났을 때 나는 이적지 느껴보지 못했던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리고는 순간, 그녀의 참혹했을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그녀의 옷을 하나 둘 벗었다. 그녀의 매끈한 가슴과 온 몸 곳곳에 난 상처들 - 아마 그 상처들은 보이지 않는 눈 때문에 넘어져서 난 상처이거나 남자들에게 맞아서 난 상처이리라. - 과 그녀의 생식기가 드러났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무엇을 원하십니까?"
그 때 나는 내 욕망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적지 살아온 내 삶이 한낱 욕망의 편린으로 여겨졌다. 탁자에서 떨어진 토기처럼 나는 산산이 부셔졌다. 나는 오로지 조용히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내가 가진 돈의 전부를 그녀에게 주었다. 사실 그녀의 몸에 난 자그마한 상처들 하나하나까지 전부 입을 맞추고 싶었지만, 적어도 오늘만큼은 이 여인의 손등에만 나의 부정한 입술을 대리라고 다짐했다. 그녀는 그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감사합니다, 나으리. 신께서 나으리께 복 내리시기를……."
이렇게 말을 이었다. 이후 나는 종종 그녀를 찾곤 했다. 가끔씩 그녀를 찾아 그녀의 손과 발에 입을 맞추고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녀의 눈은 멀어 있었지만, 그녀의 눈물은 마르지 않았다. 때때로 삶이 죽음보다도 더 참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노라고……. 그녀는 눈물지으며 말했다. 죽음을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고……. 하지만 죽음을 생각하면 더 두려워져서 포기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난날에는 신을 원망하기도 하고 분노도 해보았지만 이제 그녀는 태연해졌다고 말했다.
 "매일 슬프지만 그래도 죽고 싶지는 않아요. 이제는 신을 원망하지도 않아요.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아가요."

나는 이렇게 슬픈 자를 두고 도대체 예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좋았다는 생각을 이어지는 사건으로 하게 되었다. 가끔 그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 행복이라면 행복이었는데 그것마저도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는 횟수가 잦아지고 내가 맹인 창녀에게만 집중적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아프로디테 신전을 찾아도 아무런 말이 없던 전과는 달리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아프로디테 신전에 거액을 바치고 헬리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와 함께 하게 되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 그는 그녀를 자신의 첩으로 삼는 동시에 서쪽 항구 레케이온 근처의 별장에만 거주하도록 그녀를 감금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내가 이 여자를 죽이지 않은 것은 아프로디테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내가 먼 곳으로 이 여자를 떠나 보내지 않은 것은 네가 떠나갈 것을 염려함이다. 앞으로 이 여자와는 만나지 말거라. 네가 나의 사업들을 충분히 다 익히고 물려받고 정략적인 결혼을 통해서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그 때 내가 이 여자를 너에게 첩으로 주마."

나는 이제 그녀가 여러 다른 남자들에게 몸을 팔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며 안도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나는 헬리나와 다시 만나게 될 것을 기대하며 아버지의 사업들을 점점 배워나갔다. 그러면서 고린도 교회에도 계속적으로 출석을 했다. 여러모로 입지를 굳혀갔다. 경제적으로도 독립이 가능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무엇보다 이 지루한 하루하루를 견디게 하는 힘은 헬리나와 함께 하게 될 날들에 대한 기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로마에서 고린도로 돌아오던 아버지가 레케이온 항에 도착했다. 그는 날이 어두워지자 레케이온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머물렀는데 거기서 헬리나에게 수종을 들라고 요구했다. 술을 따르고, 안마를 하도록 시켰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헬리나를 때리고 겁탈했다. 신전에 돈을 내고 아버지의 여자가 되었으니 로마법으로는 겁탈이란 말은 부적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겁탈이었다. 내가 손만을 범한 순결한 여인, 헬리나는 적어도 나에게는 순결한 여인이었다.

"감히 헬리나에게……. 당신이 그럴 수가 있는가?"
나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피가 거꾸로 솟아오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그 때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를 구타하고 싶은 욕망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때 이후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나는 헬리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매일을 보냈다. 나는 매번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 나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아버지가 상단을 이끌고 알렉산드리아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나에게 로마에 다녀올 것을 명령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 네가 만나게 될 카포우스란 사람은 로마 원로원 중에서도 중요한 인물이다. 그와의 돈독한 관계 유지 없이 우리의 사업은 어려워. 자, 이 돈을 받아라. 이 돈은 카포우스에게 로비할 때 사용하도록 하여라. 반드시 실수 없이 해야 해. 그를 반드시 우리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혹시나 돈이 부족하거든 로마에 있는 메키토스를 찾아가거라. 그는 오랜 기간 동안 나와 거래해온 사람이며 부자이니 필요한 만큼 그에게 빌릴 수 있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레케이온 항에서 각자의 길을 떠났다. 레케이온 항구를 떠나 아버지의 배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나는 배를 돌리라고 명령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호위하던 노예 네톤이 말했다.

"그러시면 안 됩니다. 카포우스는 나으리 사업에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까?"
"알지. 그러나 카포우스는 다음에 만나도 되지 않는가? 너도 알잖는가? 헬리나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란 것을……. 배를 돌리게."
"안 됩니다. 나으리."
"네톤, 너는 아버지의 사람인가? 나의 사람인가? 내가 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알겠는가?"
"분부대로 합죠. 하지만 나으리의 앞날을 위해서 저는 말씀을 드린 것입니다."
"자네 마음은 내가 알지, 하지만 내 마음은 아직 자네가 몰라주는구만, 이제 잔소리 말고 서둘러 레케이온으로 가지."

나는 레케이온 항에 도착했다. 나는 즉시 헬리나에게 달려갔다. 아버지의 사람들이 나의 앞길을 막긴 했지만 그들도 다 고용된 노예 신분인지라 나의 호통에 길을 열어주었다. 나는 헬리나를 데리고 고린도로 돌아왔다. 아버지의 집에는 어머니들이 가득하여 나는 따로 헬리나가 머무를 만한 공간을 마련했다. 아버지가 떠난 알렉산드리아는 제법 먼 길이어서 오랜 기간이 걸리며 또한 쉽지 않은 항해가 예상되었다. 그래서 한 동안은 고린도에 머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에게서 편지가 왔다.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던 도중 풍랑을 만나 시라쿠사에 정박하고 있다고 했다. 시라쿠사에서 풍랑이 잠잠하기까지 대기한 다음 다시 알렉산드리아로 출발한다고 하였다. 나에게 헬리나와 고린도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더 생긴 셈이다. 나는 아버지가 도착하고 난 다음 거취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아버지와 정면대결을 벌일 것인가? 아니면 아버지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고린도를 떠날 것인가? 나는 전자를 선택했다. 이를 위해서 나는 아버지가 나에게 카포우스에게 로비하라고 준 돈을 고린도의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는 데 사용하였다. 아버지와의 분쟁발생시 이들이 나의 편이 되거나 적어도 개입하지 않도록 물밑작업을 하였다. 아버지와의 분쟁발생이 끝나면 나는 적절한 돈과 권력을 챙기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가 아닌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다. 문제는 고린도 교회에서 발생했다. 나는 고린도 교회에서 소수에 속하는 부유한 그리스인 그룹이었다. 우리는 할례, 육식, 성찬에 비교적 자유로웠다. 반면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눈에는 내가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특히 나의 성적인 문제……. 아버지의 첩을 사랑하는 현실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일부 가난한 그리스인 그룹도 이들과 생각을 같이 했고, 그 소식은 스데바나를 통해서 바울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바울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면서, 스데바나 편으로 그 기나긴 편지를 써 보낸 것이다.

"고린도 지역은 음란한 지역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음란한 자와의 관계를 끊고자 한다면 아마 고린도에서는, 더 나아가 세상 안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야. 음란한 자들이랑 관계를 맺는 것은 전도의 차원에서도 중요하지. 하지만 너희 성도 가운데 아버지의 아내를 사랑하는 음란한 자가 있다면 조속히 교회에서 파문해야 하네."

이 구절이 나를 파문에 이르게 한 구절이다. 그래. 한편으로는 바울 형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바울이 지금 내 입장이라면……. 더 나아가 예수가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능력자 예수는 눈을 뜨게 해주었겠지? 예수가 한 여자만을 사랑했다면 나처럼 하지 않았을까? 이것은 비겁한 변명인가?


지금 고린도를 떠나는 배 위에서 나는 생각한다. 예수는 인류를 위해서 인간이 되었다. 인간을 위해서 십자가를 졌다. 모르겠다. 바울에게서 많은 설교를 들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리스인이다. 눈 어두운 이 여인 앞에서 전지전능한 신이 도대체 무슨 필요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나는 예수가 황제나 제우스나 디오니소스처럼 능력자여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예수는 신음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이니까…….
나의 하나님은 헬리나와 함께 눈물을 흘리는 흐느끼는 하나님이니까…….
목마른 예수가 나의 하나님이니까…….
그 예수만이 헬리나와 함께 울고 흐느끼고 눈물 닦아줄 수 있으니까…….
그것이 임마누엘,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 예수의 다른 이름이니까…….
나의 눈물을 나누는(與하는) 자, 예수…….

헬리나의 눈물에 참여(參與)하는 자, 예수……. 나는 그 예수를 믿으니까…….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내가 함께 슬퍼할 것이요 하며 말하는 예수…….
바울은 편지에서 사랑은 정이 깊은 것(愛は情け深い)이라고 말했다.
정이 깊은 예수께 나는 기도한다.

"예수여, 오직 이 한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여, 나는 섭리를 믿지 않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외다. 나는 믿지 못해도 이 여인이 나를 만나고 사랑하게 된 것이 섭리였다고 믿을 수 있을 만큼 내가 간절히 이 사람을 사랑하게 하소서. 예수여, 나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이외다. 하지만 참으로 부활이 있다면 거기서 이 사람이 호수같이 맑고 깊은 눈망울로 당신을 바라보게 하소서. 그 자리에 나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지만 기대해도 될까요? 믿음 없는 사람이지만 소망해도 될까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우리를 기억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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