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내서재엔> 연탄길 이철환작가

<요즘내서재엔> 연탄길 이철환작가

[ Book ]

김혜미 기자 khm@pckworld.com
2010년 04월 06일(화) 17:11
   
▲ 이철환작가.
동화작가 권정생을 만나고 싶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끝내 만날 수 없었다. 어느 날, 그의 부고를 들었다. 꼭 만나야 할 그가 고인이 되셨다. 여러 날 동안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권정생은 평생토록 가난했지만, 그의 남루함엔 그늘도 그림자도 없었다. 가난은 권정생이 세상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낮고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이 권정생의 삶이었다.

'권정생 이야기 1, 2(한걸음)'에는 권정생의 문학과 구도자적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어른과 아이들 마음속에 하나의 방식으로 변주 된다. 권정생은 문명과 이데올로기와 억압과 착취에 대한 비판의 알레고리를 이 책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벌거벗고 알몸으로 살던 옛날 비문명인들, 그들은 '소외'라는 말은 필요치 않았을지 모른다. 인간의 가치가 그 무엇에 비길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오염되지 않은 강물과 우거진 삼림과 가난한 마음, 그것만으로도 인간은 결코 외롭지 않을 테니 말이다.(2권, 51p) 권정생의 말은, 말 이전의 삶이었고 삶 이전의 말이었다. 치장과 변명의 세상에서 존재의 겸허함을 일깨워주는 가르침이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잘못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권정생으로 해서 나는 조금씩 깨어날 수 있었다.

   
▲ '권정생 이야기2'
강연장에서 사람들에게 권정생의 시 '딸기밭'을 읽어줄 때 마다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권정생이 기거할 곳 없어 거지생활을 할 때 쓴 시였다. '새빨간 딸기밭이/ 보였습니다/ 고꾸라지듯 달려가 보니/ 딸기밭은 벌써/ 거둠이 끝난 다음이었습니다/ 알맹이보다 더 샛빨간 딸기 꼭지들이/ 나를 비웃고 있었습니다/ 불효자에겐/ 보아스가 룻을 위해 남겨 줬던/ 그런 이삭조차 없었습니다/ 건너 산/ 바위 벼랑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어머니/ 배가 고픕니다(2권, 127p)'

내 가슴 깊은 곳엔 아직도 그의 말씀이 살아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다." 이해할 수 있었으나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말씀이었다. 나는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산다면, 그것만으로도 바른 삶이라 할 수 있는지…….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도 나와 세상을 속이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몇 번을 물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권정생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는 이유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