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태교 편지

할아버지의 태교 편지

[ 기고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10년 03월 23일(화) 17:30

안 현(安晛)은 내 첫손자다. 이제 겨우 삼칠일을 넘긴 갓난아이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하는 짓거리가 큰 아이 같이 의젓하여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어지는 우리 집 보배다. 어디서 이렇게 귀여운 것이 왔는지 신기할 뿐이다. 곁에 두고 자라는 모습을 매일 보고 싶은 데 따로 떨어져 살고 있으므로 그러지 못해 너무 아쉽다. 다행이 첨단문명 덕분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하여 귀여운 모습을 하루가 멀다 하고 손자와 대하고 있다.

내가 손자를 보기 전에는 주위 연배(年輩)나 지인들이 손자 자랑 하는 것을 보면 "제 자식은 다 귀여운 법인데 괜한 주책들이야"하고 냉소 했었는데 이젠 나도 속절없이 주책 부류에 입문하게 됐고, 손자 자랑에 여념 없는 주책 할아버지가 되었나 보다.

며늘아기가 아기를 가졌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는 나도 이제 곧 진짜(親) 할아버지가 되나보다 생각이 들며 손자녀석이 무척 기다려졌다. 그리고 복중 아이의 태교에 도움이 되고, 또 함께 살지 못함으로 한 식구된 며느리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보여주지 못하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며, 가풍(家風) 등 많은 얘기들을 들려줌으로써 우리가문의 역사와 전통들을 함께 공유하여 한식구로서의 유대가 더욱 깊어지리라는 생각에서 며늘아기에게 메일을 통해 편지를 쓰기로 했다.

첫 번째 시작하는 서신으로 보낸 것이 '우리가문의 내력'이었다. 네 복중의 태아는 우리 가문(順興安氏 直長公派)의 30대손이며 위로는 석학(碩學) 안 향(珦) 어른을 비롯하여 애국지사 안창호, 안중근 등이 계시다는 것과 감사하게도 나의 할아버지께서 일찍이 기독교를 믿으심으로 내가 3대째 신자요 네 태아는 5대째 신자가 되는 것이며, 그 아이를 우리 집안의 4대 장로로 반드시 키워야 한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그 다음 서신으로는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된 나와 아내의 살아온 간단한 삶의 편력(遍歷)이며, 사랑이야기, 아쉬웠던 회고들을 가감(加減) 없이 들려주었다. 세 번째 서신으로는 지금 며늘아기의 남편인 큰애가 자라 온 얘기를 세세히 적었고, 네 번째 서신은 시동생이 되는 둘째의 성장과정과 오늘의 모습을 가까이서 얘기하듯 담담히 적었다.

다섯 번째로는 '태어 날 아기 - 현(晛)이 이야기'로 태교를 위해 임산부가 가져야 할 심신의 덕목과 교훈을 적었다. 임부(姙婦)의 생각과 몸가짐이 그대로 태아에게 전해지며 심지어 그리는 얼굴 모습까지도 닮는다고 하므로 섭식(攝食)과 자세(姿勢)는 물론 생각까지도 맑고 바르게 가질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이 이름은 외자로 하고, 남아든 여아든 현(남자면 햇빛 현(晛), 여자면 고울 현(睍))으로 하자고 했다.

메일을 받으면 며늘아기는 곧 답신을 보내오곤 했다. 감사하다는 인사에 이어 보내 주신 글들을 뱃속의 아이가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읽어주고 있으며, 매번 출력해서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가 현이가 크면 꺼내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러던 사이 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는 추석연휴를 포함해 두 주간 짬을 내어 산모의 뒷바라지를 해 주었다. 나와 현이의 첫대면은 내가 추석 전날 성묘 차 내려가 있던 상주(尙州)까지 내려 온 큰 아이의 속 깊은 배려로 상경하게 되어 이루어졌다. 차 안에서도 내내 현이의 모습이 궁금했고 그렇게 가슴이 설레일 수가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첫 손자 현이를 어멈에게서 받아 가슴에 꼭 품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살며시 갖다 대었다. 보드랍고 따스한 촉감이 너무 감격스러워 왈칵 울음이 복받쳐올 만큼 고맙고 대견스러웠다. 무엇이라 형언할 수 없는 희열이 온 몸을 휘감아 왔다.

부득이 하루만 머물고 내려왔는데 현이의 그 순진무구하고 준수한 얼굴이 잠시도 눈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내가 내려오면서 가져 온 현이의 사진 중에서 가장 귀여운 모습을 크게 확대해서 거실 에어컨 송풍구 앞에 커다랗게 붙혀 놓았다.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고 볼 때마다 꼬집어 주고 싶도록 귀엽다.

요즘 우리 집에는 현이 모습으로 가득하다. 문갑 위, 벽면, 호주머니 안 수첩 속, 식탁 유리판 밑, 휴대폰 속이며, 휴대폰 고리에 함박 웃는 현이가 있다. 내 사무실 책상유리 밑에도 정면 캐비닛문 앞에도 현이가 웃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내 눈 속 내 마음속 가득히 현이가 자리해 없는 데가 없다. 현이는 지금 이름 그대로 우리 집의 밝은 햇빛이며 볼 때마다 엔돌핀이 넘치게 해 주는 맑은 샘물이다.

안상진/장로ㆍ부산영락교회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