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해야 할 '거지'들이 있으니까

우리가 사랑해야 할 '거지'들이 있으니까

[ NGO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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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1월 14일(목) 10:55
최민석/ 월드비전 간사

취재차 보스니아에 간다하니 여기저기서 핀잔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그곳까지 가느냐?”는 단골 레퍼토리부터, "하필이면 왜 많고 많은 곳 중에 유럽에 가냐"는 것까지 그 핀잔은 정말 다양했다. 맞다. 우리나라에도 노숙자, 빈곤층이 많고, 아프리카에는 깨끗한 물 몇 모금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어간다. 그런데 왜 굳이 유럽까지 갔을까.

보스니아에는 로마족이란 사람들이 있다. 무슨 부족 이름 같기도 하고, 이태리에서 온 이민자들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집시족', 그들이 바로 로마족이다. 그러나 집시족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나태하고, 부정적이라 약 20년 전부터 '좋은 사람'이란 뜻을 가진 '로마'족으로 불린다. 보스니아에 간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로마족' 때문이었다.

보스니아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겪은 전쟁으로 국가전체가 피해를 입었다. 세르비아 군인에게 꽃을 건네는 아이에게도 총격이 가해졌고, 집에서 책을 읽던 소녀도 창 너머로 날아온 총알에 생을 마감했다. 도심 곳곳에는 아직도 포탄 자국이 남아있다. 조깅을 하는 시민들 뒤에는 총탄 자국이 즐비한 건물이 나란히 서있다.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일상처럼 도배하고 있다. 일반 시민도 이러한데, 집시족이었던 로마족들의 생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내가 만났던 한 로마가족은 빈민가에 살고 있었다. 개천 위에 있는 화장실의 절반은 떨어져 나가있었다. 어른 한 명이 들어가면 곧 무너질 것 같았다. 볼일을 보다 비명횡사하지 않으려면 화장실을 안 쓰는 수밖에 없다. 온 가족의 식사는 감자 몇 개가 전부였다. 판자촌 같은 집 안 곳곳에는 비가 새 이끼가 천장부터 바닥까지 끼어있었다.

깊은 뜻 없이 물은 질문에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은 일도 있었다. 하는 일이 뭐냐고 물었는데 대답을 하는 어머니가 눈물을 글썽이며 "저는 거지입니다"라고 답한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가 울자 따라 울었고, 엄마는 아이들에게 미안해 또 울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어딨냐고 물으니 "수도 사라예보에 있는 쓰레기장에 음식 찾으러 갔다"고 했다. 질문 하나만 해도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와 어찌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물론 이들도 유럽인이다. 하지만 편견처럼 결코 게으르거나 노동의지가 없지 않다. 오히려 일하고 싶어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싶어 하지만 사회의 편견이 높고, 자립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와서 다양한 종류의 핀잔을 또 들었다. 그때마다 나는 보스니아에서 만났던 로마족 아이들과 사람들, 그리고 전쟁의 피해를 아직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도 한국전쟁으로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났고, 그 피해를 완전히 극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외부의 도움을 얻었던가. 사랑은 돌고 돈다고 한다. 우리가 받은 사랑을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돌려줘야 하는 것이 참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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