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들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들

[ 생명의양식(설교) ] 생명의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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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8일(월) 19:02

본문 : 고후 3장 1~3절

" …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2010년, 올 한해를 '그리스도의 편지'로 살았으면 한다. 편지를 받으면 누구나 기뻐한다. 시골에서는 우체부만 봐도 반가워한다. 비록 자신에게 가지고 온 편지는 없어도 괜히 기쁘다. 왜 그럴까? 그분은 소식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누구와 만나도 반가운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반가울까? 첫째로, 사람은 긍정적이어야 한다. 항상 밝은 웃음을 얼굴에 담고 상대방에게 풍겨주는 이미지가 있어야 된다. 찌푸린 얼굴은 상대방에게 괜히 부담을 준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살전5:16)고 했다. 둘째, 긍정적인 사람은 희망을 준다. 말을 할 때도 부정적으로 하지 말고 희망적인 말을 자주 해야한다. '안된다' '안된다'보다 '된다' '된다'를 많이 하고 용기를 주는 식으로 많이 말해야 한다. 셋째로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이다. 불평하는 사람은 어딘지 불안을 준다. 반대로 감사하는 사람은 평안을 만든다.

편지는 기다려진다.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할 때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다림'은 행복이다. 그래서 사람은 기다림의 존재이다. 기다릴 때 행복하고 누군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고 생각할 때는 더 행복에 젖기 마련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린다는 말은 그 속에 달콤한 사랑의 창조가 들어있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철학자 루소가 말했듯이 '만남'이 중요하다. 만나고 싶은 인간이 아쉽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남에서 관계가 이어지고 그 관계 속에 역사는 창조되어 간다. 일찍이 마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관계성 정립을 위해 '잘 만남'의 관계를 역설했다. 그 '잘 만남'이란 인격적인 관계로 설명된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식은 금물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대인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곧 편지의 역할이어야 한다.

편지는 침묵이지만 그 내용이 사연을 알린다. 사람들은 실제로 만나선 할 수 없는 말을 말없는 편지로 그의 속말을 알려준다. 편지의 묘미라 할 수 있다. 멀리 느꼈던 사람도 편지로 매우 가까움을 느끼게 만든다. 편지는 말이 없어도 옆에서 소곤소곤 친절하게 말을 하듯 친근감을 준다. 그리스도인은 따뜻해야 한다. 마음을 포근하게 할 수 있는 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은사인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의 공동체를 흐뭇하고 따뜻하게 만든다. 가정도, 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교회의 사명은 편지의 뜻이 강하게 들어 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교회를 이 땅에 세우신 것은 복음 선교에 있다. 그리스도를 전하는 소식이 복음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엡 5:23) 모시고 그를 사랑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란 역시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런고로 그리스도와 교회는 뗄레야 뗄 수 없다. 머리와 몸이 하나이듯이 교회와 그리스도는 하나이다. 그런데 편지의 사명으로 교회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 모이는 교회(에클레시아)
'에클레시아'란 말은 모인다는 뜻이 강하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그곳에 내가 함께 하리라"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초대교회 때부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신앙 공동체가 바로 교회였다. 그러므로 교회란 모임, 곧 회중이다.

# 흩어지는 교회(디아스포라)
교회란 모임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흩어진다는 말엔 더 큰 편지의 사명이 있다. 교회는 한 주님을 섬기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말씀으로 다짐이 된 다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다 편지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이다. 여기에는 분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편지로 흩어진다.

# 선교적인 사명
편지는 선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편지로 어딜 가나 소식이 된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마태복음 5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그 말씀은 적극적이고 소극적인 두 가지 사명으로 선교하라는 말씀이다. 빛은 적극적인 선교 방법이다. 편지가 말없이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나 바르게 살면 전도가 된다. 스스로 교인이라고 자랑을 안해도 착한 행실을 보고 감화를 받고 빛을 따라 어둠의 생활에서 광명으로 따라 온다. 빛은 언제 어디서나 무조건 어둠을 내쫓는다.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바로 편지라 할 수 있다. 역시 반가워 할 줄 알도록 빛을 비춰야 한다.

소금은 자신을 희생시켜 맛을 낸다. 소극적이라 함은 없어지면서 전하는 선교이다. 자신은 없어지지만, 결국 공동체에 맛을 남긴다. 다 편지의 사역이다. 편지는 반드시 주인이 있다. 편지를 보면 누구의 편지인지를 묻는다. 여기에 역시 편지의 묘미가 있다.

# 받는 분의 편지
편지엔 수신자가 있다. 분명히 그의 편지다. 우리는 모두 편지를 받는 사람이다. 편지를 쓰신 분은 주님이지만 받는 우리들도 편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걸어다니는 편지들이다. 그런데 누구의 편지인가? 그리스도의 편지다. 쓰신 분은 주님이시고, 먹은 살아 계신 성령이고, 용지는 육의 심비, 즉 마음에 썼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씻고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사연을 우리 마음속에 심었다. 또박또박 박아 주셨다.

# 보내는 분의 편지
편지는 쓴 사람의 편지도 된다. 누구의 편지냐고 묻는데는 누구로부터 왔느냐 하는 뜻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편지로 선택하셨다.오늘 본문 3절 앞부분에 쓰기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라고 하였다.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우리들은 곧 '그리스도의 편지'다. 금년, 우리 모두는 편지의 역할을 다 했으면 한다.

김순권목사
증경총회장ㆍ경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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