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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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08일(화) 17:05

김대근/숭실대학교 총장

성서에서 예수님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눅 9:41)"라고 하면서 타락한 시대를 개탄한 적이 있다. 하나님의 뜻을 믿고 따르지 않고, 인간의 논리로 살아가는 추악한 세태를 질타한 말이다.

믿고 의지할 만한 참된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인간적 욕망과 추구에 따라 살아갈 때 인간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를 깨우쳐준다. 종교적 차원을 떠나 우리 사회가 깊이 성찰하고 경청해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믿음이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에서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삶은 매우 귀중한 일이다. 신뢰가 바탕이 된 사회는 어떤 인위적인 제약을 가하지 않더라도 그 사회는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질서가 잡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아 충실하게 수행하는, 구성원으로서 마땅한 도리를 다하게 된다. 공자는 한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신뢰임을 천명한 적이 있다. 공자는 "정치란 백성을 먹고 살게 해주는 것(足食)이고, 둘째는 군대를 강하게 하는 것(足兵)이며, 셋째는 백성들이 믿고 따를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것(民信)"이라고 하면서, 앞의 두 가지는 버리더라도 "백성들이 마음으로 진정으로 믿고 따른다면 버린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신뢰가 바탕이 된 국가는 생존에 필요한 물질적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고, 그 나라는 막강한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불신풍조는 위험한 수위에 이르렀다. 정치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해 있고,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도 좀처럼 신뢰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은 투명성을 잃고 사회적 불신을 자초하여 국가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예수님이나 공자의 말씀에 비추어 해법을 찾는다면, 우리 사회가 공동으로 추구해야 할 높은 도덕적 가치를 먼저 확립하여야 하며, 사회의 지도자들은 무엇보다도 신뢰를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논리나 가치만 앞세울 때 물질의 성장은 가져올지 모르나 정신적 폐허를 면치 못할 것이며, 신뢰를 확보하지 못한 채 정치적 명분만 앞세워 국민을 몰아붙이면 국민적 합의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 인간관계는 더욱 불편해지고 사회는 시간이 갈수록 분열과 갈등으로 혼란만 가중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사회적 불신과 혼란은 교육의 잘못에도 적지 않은 책임이 있다. 특히 사회 각 영역으로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대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이른바 '스펙 쌓기'에 골몰하고 있다. 오로지 입사요건에만 맞추어 자신의 학업을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신입사원에 대한 기업들의 불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 마디로 믿고 맡길 수 없다는 것이다. 업무수행능력에 대한 불만에서만 비롯된 불신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대학경영목표는 '학생이 만족하는 강한 대학'을 만드는 것이다. 대학이 학생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을 때 학생들이 만족할 것이며, 신뢰를 먹고 자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자신의 분야에서 탁월한 영향력을 발휘할 때 그 대학은 '강한 대학'이 된다는 일관된 생각에서 설정한 목표이다. 대학은 사회적 신뢰를 얻어야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더욱 강한 대학이 될 수 있고, 신뢰받는 인재가 사회에 널리 자리 잡을 때 그 국가는 국민이 만족하는 강한 나라가 될 것이다.

신뢰는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신뢰의 원천은 높은 도덕적 가치에 기반한다.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정신적 가치의 공감대가 사회 깊숙이 자리 잡혀 있어야 신뢰는 샘솟을 수 있다. 구성원들이 합의하고, 함께 지향할 수 있는, 이른바 그 사회만의 '기본가치'가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 가치가 부재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는 이러한 가치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다. 높은 도덕적 가치는 종교의 역할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종교는 사람들의 물질적, 가시적 삶을 향상시켜 주는 일보다 사람들로 하여금 높은 정신적 가치를 품고 실현하는 가운데 마음의 평안을 얻게 해주어야 할 책무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의 대사회적 책무가 더욱 막중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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