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병(派兵)이나,선교 출국장의 모습에서”

“해외파병(派兵)이나,선교 출국장의 모습에서”

[ 기고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12월 03일(목) 15:52


1990년대 초 걸프전에 참전하는 미국 장병들이 출국장에서 사랑하는 가족이나 애인과 부등켜 안고 입맞춤까지 하면서 도무지 싸움터로 가는 사람들 같지 않게 작별 인사하는 장면을 언론보도로 보았었다. 그후 우리와 비교하면서 이런 미국인들의 문화를 이해해보려고 관심을 가졌다.
 
어릴 때 6.25전쟁이 난 후 친구 형들이 징집영장을 받고는 실망한 사람처럼 만취하여 동네골목을 누비며 다니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족상잔 참전 외에도, 건군 이래 1960년대 중반의 월남파병을 시작으로, 의료지원단이나 해ㆍ공군수송지원과 평화유지활동 등으로 우리 군 34만 여명이 해외로 나갔다고 한다.
 
어느 땐가 파병되는 여장교가 어린 아기 볼을 부비며 인사한 후, 아이를 다시 아빠 품에 안겨주면서 출국하는 모습이 나의 가슴을 찡하게 한 기억이 있다. 명분 없는 일제 징용이며 강제로 끌려가는 힘없던 백성의 애환의 상처도 깊은 우리다. 이제는 이념 다른 사람들의 극성 때문에 해외 파병용사들을 격려하며 환송하는 장면을 언론에 알리지도 못한다고 한다.
 
1994년 여름방학 때 필자가 직장생활 하면서 섬기던 대구의 모 교회에서 여 청년 5명을 방글라데시에 단기선교로 파송한 일이 있었다. 교인들이 정성으로 모은 선교비를 챙겨주면서 하나님께 파송예배를 드렸다. 평소 그런 자리라면 눈시울을 적실 사람이 가녀린 아이들을 우리나라 60년대와 같이 열악한 이국만리, 풀벌레 득실거리며, 화장실도 없다는 곳,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 곳으로 보내면서 마음이 이렇게 매정할 수 있을까? 자기 딸이 아니라서 그럴까? 하는 여러 생각이 교차되었다.
 
교인들이 예배 중에 찬송과 기도로 주님께 의탁하며 선교지에서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는 소망에 찼었고 부모들까지 믿음으로 자녀들을 축복했다. 생명을 사랑하며 선한 일에 나서는 이들의 마음을 그 후 조금씩 알아지는 것 같았다.
 
6.25로 우리나라가 침략자의 총칼 앞에 풍전등화 같이 가물거릴 때 우방국이 도왔다. "우리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와 만나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전쟁터를 찾아온 수많은 젊은이들이 희생되었다. 1886년 토마스 선교사는 끝내 복음을 전할 우리 땅에 발도 붙이지 못하고 대동강 가에서 순교의 피를 뿌리셨다. 이 분들이 고국을 떠날 때 나눈 인사장면은 어땠을까?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 기독청년들이 피랍되는 일이 있기는 하였지만 우리는 이런 시련과 훈련을 쌓으면서 세계로 하나님의 뜻을 펼쳐가는 나라가 되었다. 원조를 받던 처지에서 이제는 원조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동안 일궈낸 지혜로 어려운 나라들을 보듬고 섬겨야 할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지금 저 출산과 어려운 일을 꺼려하는 풍조로 수다한 외국인이 우리 곁에 '땅 끝으로' 다가와 있다. '두 문화 가정'이며 '다 문화 사회'의 구성원이 앞으로 우리의 상당부분을 채우게 될 것 같다. 북한 동족의 아픔은 60년을 훌쩍 넘어가고 있다.
 
자유대한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유와 평화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들도 우리는 껴안아야할 것이다.
 
이 글은 국가의 일시적인 해외파병 찬반에 대한 논란보다 필자가 그동안 해외 선교와 관련하여 생각해 본 일면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보기에도 몇 십 년 동안의 변화가 흥미롭다.
 
별 자원도 없이 자학에 빠져있던 우리가 앞으로 "하나님의 보우"하심으로 더 큰 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도 우리 안에 들어온 외국인 가족과 또 가서 만나야할 여러 민족과 함께 더 넓어질 것이다.
 '종교성이 많고' 흰옷을 즐겨 입으며 다른 나라를 해한 일도 없는 평화를 기리는 백성이 나눌 작별 인사는 "굿 바이(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God be with ye)"보다  더 넓은 의미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빌면서 헤어지고 만날 모습을 그려본다.

이 석 근
은퇴장로ㆍ경주황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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