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세계속의 총회…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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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 ] 첫 총대와 마지막 총대, 제94회 총회 참관기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10월 14일(수) 16:52

1970년 대구 총회 - 기독공보 복간의 감격
 
1970년 9월 대구제일교회 총회 개막 다음날, 새로 선출된 임원들 사진과 특집의 내용을 담은 '한국기독공보'가 배포 되었을 때 총회장을 비롯한 총대들이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필자에게 기립박수로 격려하는 순간, 1년 반 동안 기독공보 복간을 위하여 당한 수모와 고통과 외로웠던 쓰라린 눈물을 닦으며 5ㆍ16 군사혁명 정부 아래 탄압과 협박 죽음의 고비고비들을 한순간에 위로 받을 수 있었다. 폐간(1966년)된 '기독공보'가 3년 8개월만에 '한국기독공보'로 복간돼 총회개막 장면을 보도해 총대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리라.
 
두 번째 감격은 1972년 9월 총회 때 필자가 긴급조치 반대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생명과 인권, 선교와 언론자유를 위한 평화-복음의 선지자적이며 예언자적인 총회 사회선언 등을 보도한 연유로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고문당하여 목발을 딛고 기독공보 보고 시간에 사장 최창근 장로가 "고환규 편집국장이 고문을 당하고 이 자리에 선 것은 전국교회의 기도의 성원이 컸다"고 말했을 때 총대들의 격려의 박수갈채로 총회의 명예와 기독공보를 세계언론의 기수로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2009년 '데일리 기독공보'의 활동에 갈채를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9년, 전국 1천5백여 총대들이 참석한 소망교회 본당 현장에 총대들의 손에 들려진 타블로이드판의 '데일리 기독공보'가 새로운 감동을 준다. 총회 속보와 볼거리 뉴스로 정리된 면면을 관심있게 보면서 기독공보 보고시간에 놓쳐버린 총대들의 격려에 필자가 이 지면에서 총대들의 마음을 담아 시간과 환경에 쫓기면서 밤 새워 만들어낸 후배 기자들의 땀과 눈물에 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세상 치유의 사명을 감당하자
 
필자는 1972년 기독공보 편집국장 때 긴급조치로 고문을 당하여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 찾아온 윤보선대통령,세계주요언론인,국제앰네스티(Amnesty)대표, 미국의회 프레이즈의원, WCC, NCCK 총무 , 한국-세계선교사들(특히 마펫선교사,문희석목사)들이 필자의 구출을 위하여 애쓰면서도 강원용 한경직 강신명 곽선희, 조남기, 금영균 목사 등의 간곡한 권유로 입원환자복에 목발을 딛고 총회전도부 총무실에서 예장인권위원회를 조직하고 이어 WCC, NCC 권유로 국내 최초의 인권위를 탄생시켰던 것도 기독공보 편집국장 때였다.
 
그 때의 활동으로 예장 총회가 민주주의 회복과 생명과 인권 선교의 자유 사회 선언 등이 기독공보 특집으로 보도됨으로서 '자유언론의 기수'로 동아일보 발행 신동아 '75년 3월호에 특집기사로 보도 됐었다.
 
그 시대의 총회는 세상을 아파하는 민족 속에서 세상을 대변하는 생명의 총회였다.
 
필자는 서울관악노회(남노회에서 분리-30년 목회)에서 총대들의 만장일치추대로 마지막 총회 총대로 참석하여 발언권을 얻어 장신대에 사회복지과를 두어 세상 치유의 사회복지사 지도자 양성을 청원하자 지용수총회장이 장신대커리큘럼위에서 연구 검토하도록한 것에 크게 감사드린다.
 
필자는 1961년 장신대가 국내에서는 최초로 대학 4년 졸업 학위 소유자로 대학원제 시행, 제1기 최연소(22세)로 입학 후 48년동안 예장 총회 목사로서 사역해왔다. 1961년 9월 총회와 장신대 채플시간에 '수난당한 목사-교수의 생명과 인권회복'을 위하여 발언했던 내용-"총회의 지역 지연 학연 문제, 신학과 신앙의 개혁과 갱신, 장신대와 총회에 인적자원의 개방, 사회 정의 민주 생명과 인권의 백서와 사회적 선언문을 발표해야 한다"고 했던 마지막 부분을 되새기며 이글을 마지막으로 쓴다. '평화와 인권상' 수상 때 격려해주신 총대들의 뜨거운 박수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마지막 총대
고 환 규
목사ㆍ관악교회ㆍ본보 전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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