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님께 다시 길을 여쭙다

스승님께 다시 길을 여쭙다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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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4일(수) 11:34
김충렬/목사 ㆍ 영세교회

필자는 평소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신 이상근목사님을 사모하고 존경하는 중 약 2년간의 짧은 기간 동안 부목사로 가까이서 섬기며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목사 안수를 받게 해주셨고, 재임시는 물론 서울로 올라와 목회길을 걸을 때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가르쳐주시고 기도해주시며 격려해주셨다. 은퇴하시고 하늘나라 가시기 직전까지도 그렇게 해주셨다. 대구에서 만나 뵌 이후 천국 가시기까지 설교집이나 주해집 등을 출간하시면 부족한 필자에게도 꼭 친필 서명하시어 보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세상을 떠나시기 한달 전쯤 대구 동산병원에 입원해 계셨을 때 전화로 문병을 드렸는데, 말씀을 잘 못하시는 중에도 "김목사님, 나를 위해 기도해줘요"라고 하셨다. 짧지만 간절하게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손을 붙잡으셔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드렸더니 마지막에 힘을 다하여 '아멘' 하셨다. 10년이 지났지만 그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필자가 목사님을 지금까지도 존경하고 본으로 삼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경건한 설교자로서다. 이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 본문의 의미와 단어의 뜻을 깊이 해석하시는 강해설교였다. 어느 날 이 목사님께서는 아들 목사에게 "설교시간에 절대로 다른 목사를 비난하는 말이나 정치에 관한 말을 하지 말아라"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목사님의 설교는 성경말씀을 해석하고 전달하는 것 외에 다른 말씀을 일체 하지 않으셨다. 또한 목사님의 설교는 영감이 있는 감동을 주는 설교였다. 많은 성도들이나 목회자들이 목사님의 설교를 기억하는 것은 설교의 영감 때문이라고 본다. 잠시 곁에서 지켜본 목사님은 수도사적인 기질을 가진 분이셨다. 삶을 부단히 절제하시며 경건과 거룩이 몸에 배어있는 삶을 사셨다. 아들 목사의 말과 같이 이런 삶이 설교를 통하여 듣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목사님의 설교는 잘 정제된 언어만을 사용하셨다. 목사님은 강단에서 속어나 비어를 사용하지 않으셨고 감정적인 언어를 사용치 않으셨다. 사실 목사님은 유머 감각이 매우 뛰어나신 분이시다. 늘 그런 능력을 절제하시며 깊은 사색을 통해 언어를 취사선택하신 것 같다.

둘째, 가정의 목회자로서다. 재임 시에 한번은 사택에 계신 목사님을 뵙기 위해 현관문으로 가까이 갔는데 집 안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요란했다. 들어가 보니 손자, 손녀들이 이 목사님의 등에 올라타서 말놀이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놀랐으나 오히려 이 목사님은 즐거우신 듯 웃으시며 손자, 손녀들과 놀고 계셨다. 평소 목사님은 교역자들에게 "우리는 가정목회부터 잘 해야 할 줄 압니다"라고 하셨는데, 내가 그 사실을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다.

셋째, '오래 참는' 목회자로서다. 필자가 1989년 봄, 현재 시무하는 교회의 위임 예식을 앞두고 대구 사택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대화를 나누는 중 마지막에 "목사님, 제가 어떻게 하면 목회를 잘 마칠 수 있을까요?"하고 여쭈었다. 그랬더니 목사님께서 웃으시면서 "지금과 같이 물어보는 자세로 하면 됩니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침묵하시더니 짧게 "오래 참는 것이지요" 하셨다. 그리고는 다시 침묵하셨다. 당시에는 필자가 경험이 부족하여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으나 그 이후 목회를 하면 할수록 "오래 참는 것이지요" 하신 말씀의 의미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도 후배가 와서 21년 전에 내가 했던 그 질문을 한다면, 나도 그때 스승님과 같이 "오래 참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필자는 요즈음 조석으로 목사님의 강해설교집을 읽으면서 '스승님께 목회길을 다시 여쭈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결국 믿음도 소망도 사랑도 충성도 '오래 참는 것'임을 절감하며 목회 마무리 자세를 갖추며 지내고 있다. "스승님, 깊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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