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 30주년

목사 안수 30주년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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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9월 30일(수) 10:57
김충렬/목사 ㆍ 영세교회

필자는 원래 처음에는 목사될 생각이 없었다. 1년간 재수를 거쳐 대학에 입학하고 두 달쯤 되었을 때, 목사이신 부친께서 나에게 졸업 후에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면 어떻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하셨을 때 그 자리에서 "아버지, 목사되는 거 그거 제게는 적성에 안맞아요. 죄송하지만 못하겠어요"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무식한 대답이었는지 부끄럽기만 하다. 그래도 아버님께서 오래 기도하시며 조심스럽게 물어 보셨을텐데 그렇게 대답했으니 말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아버지 한번 기도해보겠습니다' 해야 하지 않겠는가? 40년이 넘고 어른은 천국에 계시지만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죄송하고 민망하다.

그런데 목사가 되고 안되는 것은 사람의 뜻에 달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일이 그 일이 있은 후 2년쯤 되어서 일어나게 되었다. 1969년 4월 논산 훈련소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는 기간 중 모교회에서 청년회가 입대 시에 기념으로 준 시편 달린 신약포켓 성경을 휴식시간에 간간히 읽는 중 특별히 시편을 통해 홀연히 회심을 경험하고 목회자로의 부르심을 체험하게 되었다.

"내가 죄에 빠진 너를 구원하러 네게 왔노라." "너는 이 타락한 인생들, 길을 잃은 영혼들을 보고 있지 않느냐, 네가 그들을 내게로 인도하거라." 감사와 감격, 회개와 결단의 기도로 응답하게 되었다. 그 직후 필자는 곧 부친 목사님께 그 회심과 부르심의 경험을 말씀드리고 '아버지께서 2년 전에 말씀하신대로 이제 그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편지로 알려드렸다. 아버지는 곧 답장을 보내셨는데, 어머니와 함께 큰 감격을 느끼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 후에 휴가를 나왔을 때 아버지는 나를 얼싸안으시며 감격으로 축복의 기도를 해주셨다. 그 후 10년 후 목사안수를 받고 또 그때부터 한 세대라고 하는 30년의 세월이 흘러 안수 30주년의 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돌아보면 지난 30년은 국내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엄청난 변화가 계속되어온 시기였고, 세계적으로도 전쟁, 기근, 지진, 테러 등 종말적인 현상이 심화되어왔던 시간이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1998년을 전후하여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변화되어 지금은 정보화 시대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물론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누구나 그렇듯이 괴롭고 즐거운 일, 기쁘고 슬픈 일 등이 수없이 교차되어온 지난 30년 세월이었다. 그러나 목사로서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 때 가장 먼저 할 수밖에 없는 말은 '주님, 감사드립니다'이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모든 목사 중에서 가장 작은 나, 아니 모든 성도들 보다 더 작은 나, 아니 죄인의 괴수인 나를 충성되이 여겨 '목사'라는 영광스런 직분을 맡기시어 지난 30년간 온갖 은혜와 은사, 지혜와 능력을 주시어 미력이나마 감당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현재 시무하는 교회에 부임한지 22년째인데 깨닫는 것 중의 하나는 먼저 교인을 어떤 대상으로 보아야 하는가이다. 즉 부임해서 10년 전까지만 해도 교인은 '교육'(제자훈련)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대장수술, 뇌혈관 수술 등 환난을 겪으면서 교인들은 교육의 대상 이전에 '사랑'의 대상으로서, 먼저 사랑할 때 교육이 비로소 이뤄짐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 후에는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교인들을 그 개인에 따라 맞게 영접하고 격려하고 위로하고 기도하고 축복하려고 애쓰고 있는데 역시 부족과 한계를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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