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버를 생각한다 <상>

니버를 생각한다 <상>

[ 기고 ] 연구실 조차 볼 수 없어 아쉬워

이장형 교수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7월 29일(수) 14:11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0일까지 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으로 연구 중 자료 수집차 미국 뉴욕과 시카고, 보스톤을 방문한 이장형교수는 라인홀드 니버와 관계된 행적을 둘러보고 우리시대에 니버 사상이 주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이 교수는 2002년 숭실대학교 대학원에서 라인홀드 니버 관련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라인홀드 니버 연구소 소장,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교수의 원고를 2회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1.니버 가족과 스톡브릿지
 
7월 5일 주일 스톡브릿지 제일회중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후 그곳에 살고 있는 니버의 가족과 친지를 만날 수 있었다. 만남을 주선한 이는 스택하우스 박사였다. 스택하우스 박사에게 미리 듣기는 했지만, 외모가 거의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4)와 비슷한 아들 크리스토퍼 니버(Christopher Niebuhr)와 대화를 나누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에게는 아버지와 삼촌 리차드 니버(Richard Niebuhr)를 비롯한 가문에 대한 긍지가 겸손한 표현 가운데서도 묻어 나오고 있었다.
 
니버는 뉴욕 유니온신학교 교수로 재직할 때도 여름방학이면 대부분의 시간을 스톡브리지(Stockbridge)와 인근의 히스(Heath)에서 보냈다고 한다. 특히 히스에서 보낸 여름은 니버와 가족들에게 큰 추억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니버는 히스 시민회관에서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으며, 은퇴 후 마음의 고향인 스톡브릿지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곳은 산을 끼고 있기에 한 여름에도 대도시 보스톤이나 뉴욕에 비해선 서늘하다 싶을 정도로 시원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갖고 있는 곳이다. 지금도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오는 휴양지로 마치 유럽의 도시 같은 아름다운 자연과 소박한 도시문화를 이루고 있다.

2. 유니온신학교와 엘름허스트 대학
 
사실 뉴욕 유니온신학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필자의 주관적인 평가일 수도 있지만, 전에 비해 너무나도 급격하게 축소된 교수진과 학생 수 때문에 활기를 느낄 수 없었다. 특히 니버의 아들 크리스토퍼로부터 재정난 때문에 니버의 손때 묻은 관련 자료들이 국회도서관과 버지니아 유니온신학교로 넘겨졌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 한쪽이 무거워졌다. 니버 자신도 은퇴 후 학교에서 지급하는 연금이 작아서 무척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워낙 유명한 학자들이 많이 머무른 학교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귀중문서 보관실 상자에 들어 있던 책 원고 교정본 등을 제외하고는 그의 연구실 등을 기념하는 흔적은 볼 수 없었다.
 
유니온에서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시카고 근교의 엘름허스트 대학(Elmhurst College)을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청년 니버를 만날 수 있었다. 니버는 1892년 6월 21일 미국 미주리 주 라이트(Wright) 시에서 복음적인 교단에 속한 독일어권 교회의 목사인 아버지 구스타프 니버(Gustav Niebuhr)와 아내 루디아 니버(Lydia Niebuhr) 사이에서 4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니버는 엠름허스트 대학에서 공부했고, 이어 자신이 속한 교단의 신학교인 에덴신학교(Eden Theological Seminary)에 진학했다. 나중에 예일대에서 신학사와 석사(M.A.)를 1년을 사이에 두고 받았다. 니버의 동생인 리차드 니버 역시 같은 엘름허스트 대학 출신으로, 그는 나중에 이 대학의 총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니버가 다닐 당시에는 정식 학위를 주지 못하는 학교였지만, 지금은 어엿한 교육중심 대학으로 인문ㆍ사회ㆍ간호ㆍ교육 등 여러 전공에 걸쳐서 알찬 교육 과정과 시설을 구비하고 있었다. 특히 니버 센터를 통해, 사회문제와 관련한 대학 교육 및 연구 활동을 추구하고 있었다. 니버 센터 관장 등 관계자들은 도서관 귀중자료실에서 니버와 관련 문서와 사진들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장형교수
백석대학교 기독교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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