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정치 제도'

이상적인 '정치 제도'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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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9일(수) 09:39

지용수/부총회장ㆍ양곡교회 목사

정치학의 시조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정치학(politics)'에서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였다. 교회 역시 탈정치화는 불가능하고, 정치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교회 정치의 운용 방식은 세속적인 정치와는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지켜져야 하고,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훼손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 정치학에서 말하는 정치(政治)는 '도시공동체'를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police)라는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는 '폴리스의 행복'이라는 철학과 직결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칼빈 역시 특정한 성직자 중심의 독단적인 교회 정치를 반대하였고, 전 회중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교회 정치에 참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았다. 그는 전제 군주적 제도에 의해 무너진 그리스도의 왕권을 회복하는 개혁 정치를 하고자 대의 정치를 주창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 철학을 접하면서 우리는 어떠한 정치사상과 정치 제도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정치이며, 그리스도의 왕권을 회복시키는 교회 정치인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우선 독재 정치 제도는 한 마디로 매우 위험한 것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이다. 유다 왕 다윗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정을 베푸는 경우도 있지만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처럼 독선과 아집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게 만드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민주 정치는 다수의 의견과 여론에 따라 법과 질서를 세우고 방향을 잡아가는 제도이기에 비교적 건강하고 안심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벤담의 주장대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위한 정치를 구현하는 과정 속에서 투쟁과 갈등이 빈번히 일어나고, 게임의 규칙을 위반하는 경우가 잦아서 오늘의 폴리스는 행복에 도달하기도 전에 지치고 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군중과 십자가 앞에서의 군중이 보여 준 이중적인 정치 행태, 거의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아 결정하였지만 스스로 저주를 부른 아론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는 민주주의를 표방한 인기 영합적 포퓰리즘으로 전락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악의 늪에 빠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가장 온전하고 탁월한 정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는 신정정치에 순응하면서 건전한 대의 정치를 구현하는 방식이다. 그동안 역사 속에서 명예정(timocracy), 과두정(oligarchy), 참주정(tyranny), 독재정(despotism), 민주정(democracy) 등 수 많은 정치 제도가 주창되었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전개된 결과 타락한 정치로 실패하고 말았다.

우리 모두의 행복을 보장하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규에 의한 다스림(신명기 10:13), 기쁨으로 노래하며 즐거워하고 만복을 누리는 백성(시편 97:1, 시 65:8-13)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지배를 받는 정치문화를 창조해 나가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주창한 '덕의 정치(the politics of virture)' 그리고 그들이 부르짖은 정치 지도자의 덕목 즉 관용, 공명심, 온정주의, 정의감, 자긍심, 합리성, 합법성도 인간의 이성과 노력만을 통해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적인 교훈이다.

때문에 교회, 노회 그리고 총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통치를 경험하며 신정정치의 깊은 경지 속에 들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것만이 곧 하나님의 폴리스를 행복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건전한 교회 정치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잘못된 우리 사회의 정치문화에 교회가 참신한 영향력을 끼치게 되고, 비로소 정부, 국회, 정당의 정치 선진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주님! 한국교회가 오직 주님의 통치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신선한 신정정치에 순응하게 하셔서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정치문화를 창조하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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