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교 이야기

중국 선교 이야기

[ 목양칼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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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17일(금) 15:23
인병국/목사 ㆍ 한동교회

신학교 시절부터 동아리 '선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 선교에 비상한 관심이 있었지만 중국선교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없었다. 90년대 초 어느 선교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1993년에 2주간 중국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조선족 가정교회를 만날 수 있었고, 그 경험을 기행문과 에세이로 기록하였다. 그러면서 선교학을 공부할 기회가 주어졌고, 그 과정에서 어느 교수님의 명함을 받았는데 그 명함에 'Trainer, Lecture, Consultant'라고 적혀있었다. 그 때 전광석화처럼 '저 일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때부터 중국선교를 알기 위해 전심전력하였고, 모든 과제물을 중국선교, 특히 조선족선교와 관련시켜 작성하였다. 그 결과물이 나중에 선교학 박사 논문의 기반이 되었다.

두 번째 중국에 다녀 오던 중 천진공항에서 "네가 중국선교를 우려먹으려고만 하지말고 너부터 선교사를 파송해라"고 들려주시는 거역할 수 없는 주님의 음성이 마음에 들렸다. 당시 내 형편은 근근히 사는 정도였는데 선교사를 파송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다. 주님께 저항하다가 결국은 항복하고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작정하였다. 작정은 내가 하고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셨다. 어려움이 많았지만 결국 1995년 8월 28일 전도사로 있던 동역자를 파송하였다. IMF 사태를 겪으면서도 중단하지 않고 지속하다가 8년 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선교사가 귀국하였다. 40명 정도의 교세로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그래서 나는 그동안 우리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한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고 증언한다.

선교학을 공부하면서부터 중국선교전문가로 중국선교를 섬기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생겼고,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전심전력하였다. 어느 기도 모임에서 중보기도시간에 '중국선교전문가로 중국선교를 섬길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제목을 내놓았는데, 오늘에 그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본다.

어려서부터 별명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중앙정보부(CIA)'이다. 나는 생긴 것과는 달리 정보수집과 분석 능력이 탁월하다. 그런 면이 쓰임받을 줄은 몰랐다. 오직 부담감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네 권의 중국선교전문서적을 자비 출판하게 되었고, 선교지에 중국선교 관련 글을 발표하며 때를 따라 세미나와 포럼 등에 발제와 논찬자로 참여하고 있으며 중국선교연구원(www.inbora.com) 대표라는 이름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선교사와 선교단체, 현지교회, 후원교회, 중국선교헌신자 등을 자문으로 섬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꿈꾸고 기도하고 노력해왔던 목회는 언제나 변함없이 그날이 그날인데 중국선교전문가의 길은 시온의 대로처럼 열렸다. 노력에 비해 그 길은 놀라울 정도로 형통하였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호랑이 등에 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가 없었다. 초대형 교회를 세워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주님의 지상명령에 쓰임받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겸손하게 중국선교사들을 섬기는 일로 내 길을 인도하고 계신다. 중국선교사를 섬기는 것이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투철한 비판정신 때문에 비토도 당하였지만 지금은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고 품고 섬기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지금 나는 위로하고 격려하며 길을 인도하는 가이드로 중국선교사들을 섬기고 있다.

비록 내 역할이 볼품도 없고, 빛도 안 나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주님의 인도하심 따라 이 길을 가려고 한다. 단 한 사람의 중국선교사라도 나 때문에 힘을 얻고 길을 찾는다면 그것만으로도 보람있는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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