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지(協商意志)

협상의지(協商意志)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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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17일(금) 15:16

고세진/목사ㆍ아세아연신 총장

사람이 혼자 살면 무슨 낙(樂)이 있나? 어울려서 같이 살려면 타협도 하고 협상도 해야 한다. 경직되어 있는 한국 사회, 협상을 모르는 듯 혼자 질주하고 질타하는 현상들 속에서, 평화공존과 더 나은 미래를 위하여 협상의 지혜를 실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때는 1982년 4월, 장소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 협상을 벌이고 있던 타바(Taba) 지역. 타바는 이스라엘의 남쪽 항구 도시 에일에서 차로 잠깐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이집트의 최전방 거점이다. 1979년에 이집트는 사다트 대통령의 주도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으나,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 이후 15년간 점령하고 있던 시나이(Sinai) 반도에서 미적거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우파(右派)인 메나헴 베긴이 총리였고, 협상에는 별명이 불도저인 극우파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과 아브라함 타미르 장군이 대표로 나왔고, 이집트 측에는 이브라힘 무싸 장군이 있었다.

시나이 반도는 이스라엘 영토 보다 세 배나 크고, 이미 이스라엘 정착촌들이 건설되어 7천 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알마(Alma) 유전(油田)에는 당시 계산으로 천 억 달러가 넘는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고 그 양은 이스라엘이 필요한 기름을 다 충당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군대는 시나이 내에 수십 개의 조기 경보망과 전략적 방어기지와 함께 1백70개가 넘는 군사시설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이집트 쪽에서는 이스라엘이 그 어떤 협상에도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더구나 극우파의 샤론 국방장관이 협상 지휘를 하고 있는 판이었으니 타결이 불투명해 보였다.

양측의 협상안들 중에서 큰 문제는 국경선을 타바와 에일 사이 어디에 그을 것이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이집트는 타바에서 좀 더 북쪽으로 올려 긋기를, 이스라엘은 좀 더 남쪽으로 내려서 타바 쪽 가까이에 긋기를 주장하였다. 회담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교착상태에 빠진 회담이 수렁에서 빠져 나온 것은 이스라엘 측이 선의(善意)를 실행하였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다. 즉, 캄캄한 밤에 이스라엘 장군은 임시로 국경선을 표시한 돌들을 이집트 대표가 원하는 만큼 이스라엘 쪽으로 올려서 옮겨 놓았다. 날이 밝았을 때에 이집트 대표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히 띠고 다른 협상안들에 찬성하였다. 드디어 4월 25일 이스라엘 군대는 아리엘 샤론의 지휘 아래 모든 유대인 정착민들을 이스라엘로 철수시켰다. 4월 26일 이스라엘 군대는 시나이 반도의 대부분에서 철수하였고 이집트는 시나이 반도를 환수하였다.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면서 결국 이스라엘 군대는 시나이에서 완전히 철수하였고,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시대로 진입하여 지금까지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왜 이스라엘 군은 자국 영토 쪽으로 돌들을 옮겼는가? '우리는 좋은 사람들이며 당신들과 영구한 평화를 원하는 것은 진심이다'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땅을 더 내어준다는 것은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기에 충분하였다. 그 일을 전혀 예상 밖의 사람, 극우파이며 강경파인 아리엘 샤론이 해낸 것이었다. 그는 싸울 때와 평화할 때를 분별하는 사람이었다(전도서 3:8). 상대방이 좋은 사람들이며 진심이 선하다는 것을 알고 나면 사람은 그 상대를 껴안을 수 있게 된다. 주고받는 것이 평화의 정수(精髓)인 것이다. 협상의지는 주고받는 것을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에게서 무엇을 얻으려고 싸움판을 벌리는 사람들이 곱씹어 볼 역사적 교훈이다. 그 후 2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교역(交易)이나 여러 관계에서 이스라엘과 아랍나라가 공존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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