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죽고 싶다는 욕망'이란 병

자살, '죽고 싶다는 욕망'이란 병

[ 기고 ] 특별기고/ 기독교와 자살 (2)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7월 08일(수) 14:54

한국교회가 자살에 대해서 성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오직 한가지다. '자살은 죄다',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자살에 대한 가르침이 성서적이라고 생각하는가? 필자가 단호히 말하건데 '비성경적'이다. 자살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5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에서 자살에 대한 단호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자신을 죽이는 자는 명백한 살인자다." 신국론의 입장은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살에는 살인의 죄가 더해지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에 따라 563년 '브라가 공의회'와 580년 '오세르 성직자 회의'에서는 모든 자살자를 처벌한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저서 '신학대전'에서 자살에 대한 반대 이유를 세 가지로 밝혔다. 첫째, 자살은 자연적인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다. 둘째, 자살은 공동체에 손해를 끼치는 일이다. 셋째, 생명은 하나님께서 부여해 주신 선물이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러한 이론은 중세를 거쳐 구 교회법전까지도 영향을 미쳐 자살자들에 대해서는 교회에서 장례식을 해 주지 못하도록 했다. 자살자들은 죽어서도 교회공동체에 묻힐 수 없었다. 이와 같이 교회는 전통적으로 자살에 대해서 심각한 형벌로 대응해 왔다. 자살을 범죄의 하나로 보면서 현재의 자살은 영원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인해 일부에서는 자살자의 장례식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들은 교리적으로 확정된 형태는 아니었다.
 
개신교에서도 정해진 교리나 윤리적 교훈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살한 자는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간다는 이야기는 중세적인 속설이 목사들에게나 성도들에게 전해져 그렇게 가르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신학이 답변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자살에 대해서 연구하고 글을 발표하는 신학자들이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총신대 윤리학 교수인 이상원교수는 '자살과 기독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첫째, 자살한 기독교인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는 견해는 중세시대에 형성된 견해로서 루터, 푸치우스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과 개혁주의 전통에 서있는 신학자들과 윤리학자들에 의해서 비성경적인 교리로 거부되었다. 둘째,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인간이 지은 죄를 남김없이 회개한 공로를 근거로 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졌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뿐이라고 했다. 예를 들면, 회개하지 못한 교인이 항공기를 타고 가다 추락하여 갑작스럽게 죽은 경우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가? 치매에 걸려서 자기가 한 행동이 죄인지도 모르고 회개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죽으면 구원이 없는가? 구원론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은혜로 받는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상원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구원의 유일한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어떤 것도 이 순수한 구원의 기준에 끼어들어올 수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고 여러 가지 욕구들을 주셨는데 가장 강력한 욕구는 살고 싶은 욕구이다. 살고 싶은 욕구는 건강한 사람에게는 다 있다. 그런데 살고 싶은 욕구가 죽고 싶은 욕구로 바뀌었다. 이것을 우리는 질병이라고 한다. 특별히 우울증이란 질병은 죽고 싶은 욕구를 일으킨다.  우울증으로 자살한 사람은 우울증이란 질병이 그를 죽인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대해서 자살은 질병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신적인 질병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자살을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이 아닌 자살에 대한 예방 교육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살하면 안 된다. 자살은 가장 불행한 죽음이다. 자살은 말려야 한다. 오늘의 교회는 목숨 걸고 성도들의 자살을 말려야 한다. 이제 교회는 자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자살하면 지옥간다고 가르치지 말고 자살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를 가르쳐야 한다. 자살하면 안 되는 진짜 이유를 정직하게 가르쳐야 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우리의 삶이 피투성이가 되어서라도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가르쳐야 할 것이다.

박 영 득
목사ㆍ큰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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