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덕목 '겸손'

지도자의 덕목 '겸손'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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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08일(수) 14:00

김찬종/목사ㆍ과천교회

교회든 사회든 지도자가 가져야 할 제일 첫째 덕목은 '겸손(humilityㆍ謙遜)'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대사회에서 찾아보기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 겸손이다.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를 말하는 것으로 영어로 'humility' 또는 'modesty'라고 한다. '겸양(謙讓)'이라고도 하며, 비슷한 말로는 '손순'이라는 말이 있다. 겸손은 예로부터 우리의 자랑스러운 미덕이었고, 오만한 사람은 겸손의 덕을 배워야한다고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성숙할수록 겸손하게 된다고 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은 "내가 우주에 관해 아는 지식은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이 바다의 신비에 대해 아는 지식보다 적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할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 세대는 어른들로부터 겸손의 예를 배우면서 자랐다. 자신을 낮추면서 겸손하게 사는 것이 존경받는 자의 자세라고 알고 자랐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내어주신 겸손한 삶이었다. 왕이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닦아주시며 겸손한 모습을 몸으로 친히 가르쳐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겸손을 가르친다. 낮은 자의 모습으로 겸손하게 사셨던 예수님의 삶을 배워야한다. 성경말씀은 우리에게 겸손하고 낮은데 있기를 즐겨하는 사람은 존귀하게 될 것이나 교만하고 위에 있기를 즐기는 사람은 멸망할 것이라고 가르쳐주신다.

종교개혁자 루터와 츠빙글리는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방향이 서로 달라서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위스의 산을 오르는데 두 마리의 염소가 매우 좁은 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염소들은 다리의 중간에서 오도가고 못하고 곧 한판 싸움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 엎드리자 다른 한 마리가 염소의 등을 밟고 유유히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다. 루터와 츠빙글리는 이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다. 염소에게서 겸손과 양보를 배운 것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분쟁이 없다. 우리가 이 땅에 올 때 빈손으로 왔다. 또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때도 빈손으로 갈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체면이나 허영심으로 살 필요가 있는가?

어떤 교회에서 예배 중에 휴대폰 이 울렸다. 설교를 하던 목사는 설교를 중단하고 휴대폰 벨이 울린 성도에게 예배당에서는 휴대폰을 끄고 예배를 드려야한다고 야단을 했다. 한참 설교를 하고 있는데 또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화가 난 목사가 짜증을 내면서 누구의 휴대폰이 울리느냐고 했다. 그런데 그 벨소리는 목사의 휴대폰 벨소리였다. 목사는 휴대폰을 귀에 대고선 "네, 하나님, 말씀하십시오"라고 했단다. 이 후의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참 우스운 비유이다. 만일 그 목사가 겸손했다면 "성도님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휴대폰을 꺼놓지 못했습니다. 다음에는 조심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예배드리는 일에 에티켓을 지키도록 하십시다. 저부터 잘 하겠습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지도자는 정직하고 겸손해야 한다. 남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지도자가 존경을 받을 수 있다. 겸손한 지도자를 하나님께서는 더 크게 들어 사용하신다. 돈을 가지면 보이는 것이 없는 사람들, 권력을 가지면 사람을 몰라보는 사람들, 돈과 권력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는 이 간단한 세상 이치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이렇게 말씀해주신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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