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의 엑소더스

'내가 먼저'의 엑소더스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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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6월 11일(목) 11:35

오치용/왕십리교회 목사ㆍ예장합동 칼빈5백주기념사업위원장


우리가 잘 아는 말에 '일거양득', '일석이조'가 있다. '내가 먼저'라는 말이 그 효과를 낼 수 있다. '내가 먼저'라는 말이 주는 이미지는 먼저 이기적인 의미를 던질 수 있다. 남을 제치고 나 먼저라는 경쟁적이고 욕심적인 면을 이끌고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먼저라는 것을 버려야한다'라는 결론을 곧바로 옆에 갖다 놓고 싶어진다.

'내가 먼저'라는 말은 우리가 이기적인 의미에서 '내가 먼저'라는 주장으로 살았던 모습을 반추하게 하면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한편 '내가 먼저'라는 말은 우리의 헌신을 제안한다. 남보고 먼저 무엇을 하라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사랑하며 도우며 제공하고 섬겨주는 그런 솔선수범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내가 먼저'라는 말은 하기 싫은 사랑과 용서, 봉사와 섬김, 이 모든 일에 남보다 내가 먼저 앞장서는 십자가를 지는, 선진하는 엑소더스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다.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헌신자들로 인해 이스라엘 민족은 대대적인 출애굽을 국민운동 스케일로 추진할 수 있었다. 물론 하나님의 불기둥 구름기둥의 인도 아래서이다.

지금 길을 잃은 사회 속에서 '나'와 '엑소더스'의 결합이 필요하다. '우리'와 엑소더스의 연합이 필요하다. 교회와 민족을 엑소더스의 개혁적이며 화합적인 이미지와 연결할 필요가 있다. 뿐만아니라 스케일이 큰 이미지화 되었기 때문에 이 엑소더스의 동력이미지를 사용할 때 큰 스케일의 결실이 나타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큰 이미지의 공동기치가 필요하다. 무언가 큰 물결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싶은데 방향제시가 없다. 다 길을 잃었다. 방황하고 있다. 갈등하고 있다. 어디론가 분출하고 싶으나 나아갈 방향을 누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더 속상해하고 있고 더욱 더 좌절하고 있다.

노 전대통령의 투신서거로 인해 온 백성들이 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길을 잃은 모습을 극명하게 보이고 있다. 이 때 길이 제시되어야하는데 무엇일까.

'엑소더스의 부흥(Revival of Exodus)'이다. 엑소더스(Exodus)의  헬라어 원뜻은 시간의 새로운 시작을 가진 끝, 새로운 영역이 시작되는 이쪽의 변경, 들어감이 있는 떠남, 생명이 새롭게 주어지는 죽음을 뜻하던 말이다. 70인 성경이 모세의 두 번째 책과 그 책의 19장 1절에 사용하면서 출애굽의 위대한 이미지를 담게 되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희망이 되어서 신약시대를 여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공통적인 회개운동의 주제개념(마3:2;4:17)이 되었다. 변화산상의 예언이요, 십자가에서의 성취개념이기도 하다(눅 9:31;요 19:30). 이후 교회와 개인의 새출애굽을 예고하는 언어로서 엑소더스는 빛을 발하고 있다(히 11:22;벧후 1:15).

모세의 출애굽이 이제 예수의 엑소더스로서, 그리고 바울에게 이르러 민족과 선교의 대장정을 표현하는 이미지를 품고 선교적인 엑소더스의 동력화언어가되어있다. 이 큰 천국운동의 씨앗은 일반 사회인도 아는 보편개념이 되어있고 기름을 사방에 부어놓은 것같은 폭발력을 갖고 있다. 여기에 우리는 이기심의 회개와 헌신의 불꽃을 담은 '내가 먼저'의 엑소더스를 점화시킬 필요가 있다. 교회로부터 시작되는 '내가 먼저'의 엑소더스가 민족을 이끌어 국민운동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금은 칼빈 탄생 5백주년 기념의 해, 2009년 7월 10일 칼빈 탄생일을 기해 장충체육관에서 기념대회를 하며 그 점화가 이루어지게 하자.

이제 그동안 한국교회가 대대적으로는 사용하지 않았던 엑소더스의 이미지를 가지고 일어날 때가 된 것이다. 교회와 민족, 통일과 선교를 한꺼번에 담으면서 나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 언어에 새시대를 여는 불꽃을 점화시키자. 그 시작이 장로교회가 되기를 원한다. '장로교회', '내가 먼저', '이기심을 버리고 주님 먼저'로 돌아서며 '민족 먼저'로 나아가는 자세를 가질 때 장로교회의 엑소더스는 민족의 새출애굽을 형성할 것이다. 2012년 장로교1백주년도 중요하지만 2015년 광복70주년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개혁(Reformation)과 화합(Reconciliation). 장로교회, 내가 먼저 회개하고 화합해야할 것이다. 통합과 합동, 바로 내가 먼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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