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르자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르자

[ 논단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29일(수) 15:07


홍기숙 /女傳全聯 회장ㆍ서울믿음교회 장로

지난해 10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발표한 종교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기독교는 불교, 가톨릭에 이어 3위에 그쳤다. 국민의 1/4이 기독교라고 말하는 나라에서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는 22%에 불과했다. 지난해 조사결과라서 그렇지 지금 당장 신뢰도 조사를 다시 실시한다면 김수환추기경의 선종으로 인해 가톨릭에 대한 신뢰도는 올라가고 기독교에 대한 신뢰도는 그만큼 더 낮아졌을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조사결과에서 나타나듯이 기독교의 이미지는 바닥을 확인하려는 듯 끝 모를 추락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기독교인이 아니면 안티기독교인', '개독교'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 정도다.

최근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교회' 혹은 '기독교인'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면 그 뉴스는 가슴 훈훈한 미담이 아닌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부정적인 기사인 경우가 많다.

최근 주요일간지에서 읽은 기독교인 관련 기사 또한 죽은 남편을 기도로 살려내겠다고 1년 간이나 방치해놓은 한 여성에 관한 부정적인 기사였다. 도대체 언제부터 기독교인들의 위상이 바닥에 떨어졌는지, 추락한 기독교인들의 자화상은 어떻게 해야 회복될 수 있을지 이 시대를 사는 한 사람의 크리스찬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사회적 이미지 추락, 이로 인한 성장의 정체를 겪는 한국교회의 작금의 모습을 보며 한때 번성했다가 쇄락해버린 유럽의 기독교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너무 앞서가는 부정적 추론일까?

깨어있는 크리스찬이라면 '희망을 주지 못하는 교회', '신뢰받지 못하는 크리스찬'이라는 우리의 얼룩진 자화상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가지고 올바르게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병의 시작은 병의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크리스찬들은 어떤 존재였던가? 말 그대로 '빛과 소금'이었다. 필자가 속해있는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선배들의 역사를 뒤돌아보아도 크리스찬은 희망을 주는 존재요,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애국자로 존경받아 왔음을 알 수 있다.

여전도회의 선배들은 남존여비(男尊女卑)의 사회적 풍토에서도 애국열사 김마리아 전회장을 비롯한 수많은 지도자들이 독립을 위한 애국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여성의 몸으로도 상해임시정부를 위한 모금운동을 벌였고,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1948)에도 큰 공을 세웠다. 나라의 빚을 갚기 위해 절제운동을 벌이며 끼고 있던 가락지를 벗어 팔았고, 투옥과 모진 고문을 감수하며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벌였다.

김마리아 선생의 경우는 일제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옥고를 거듭 치르면서 독립운동을 감행하다가 말년에는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분열증을 앓아야만 했다. 김필례 전회장은 여전도회 대표로 국제대회에 참석했다가 6ㆍ25가 발발해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미국에서 들어야만 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택한 길은 복음과 정의의 길이었고, 이들이 어렵게 만들어놓은 선명한 발자국은 지금 우리들이 보고 따라야 할 길이 되어 있다.

지금과 같이 갈 길을 바로 알기 어려울 때 우리는 선배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찾아야 한다. 다시 한번 높아진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이땅을 위해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본교단 제93회 총회가 '섬겨야 합니다'라는 주제 하에 '3백만 성도운동'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우울한 소식이 주를 이루는 교계에 우리 교단이 추진하는 3백만 성도운동은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침체되고 낙담해있는 교인들에게 다시 새로운 열망을 솟아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소식이 교단 안팎에서 들리고 있다. 부디 이 운동을 통해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가 과거 선배들이 쌓아올렸던 긍정적 이미지를 다시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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