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회복을 기다리며

리더십의 회복을 기다리며

[ 논단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pckworld.com
2009년 04월 02일(목) 10:09

장영일/목사ㆍ장신대 총장

엊그제만 해도 제법 쌀쌀하던 겨울 날씨가 이번 주부터 화사한 봄 날씨로 바뀌면서 경제 한파와 각종 어두운 뉴스들로 움츠러들었던 사람들의 발걸음에 활기가 넘치고 얼굴들도 한층 밝아진 것 같다. 역시 계절의 여왕 봄이 오는 길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가 보다.

사순절 넷째 주를 맞이하여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제자로 자처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했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고, 아울러 위기에 처한 조국의 현실 앞에서 동포에게 희망을 안겨 주기는커녕 오히려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교회의 무기력과 수치를 반성하게 된다.

일제 치하와 해방을 전후하여, 그리고 70년대까지만 해도 어둠과 좌절, 고통과 슬픔 가운데 방황하던 민족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 위로와 용기를 북돋아 주던 우리 교회, 그래서 민족의 역사를 선도하는 리더십을 인정받아 백성들의 칭찬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우리 기독교가 지난 십수년 사이에 그 명예로운 리더십을 상실하고, 오히려 백성들의 비난과 멸시천대의 대상으로 전락하였다는 것은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우리는 몇 달 전 언론을 통하여 백성들이 신뢰하는 종교들의 순위에서 개신교가 천주교와 불교 다음의 제3위로 추락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듣기도 했으며, 지난 2월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를 기점으로 천주교의 교세가 급등, 2020년경에는 신도 수에 있어서 천주교가 개신교를 크게 앞지르고, 개신교도는 6백만 정도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고도 들은바 있다. 현 상황에서 개신교 리더십의 쇠퇴는 무엇을 의미하며, 과연 민족의 역사 속에서 개신교 리더십의 회복은 가능할 것인가?

위의 질문들은 사실상 지난 십여년 동안 신학자들의 토론 때마다 언급된 단골 주제였으며, 그와 같은 토론의 여파로 2년 전(2007년도)에는 '어게인/Again 1907'의 표어 아래 '평양 대부흥'의 재현을 위한 대대적인 회개운동이 개신교 안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그와 같은 교회의 부흥을 위한 어떤 운동에 대하여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것 같고, 이 문제를 놓고 고심했던 개신교 신학자들조차도 개신교 리더십의 회복 가능성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이거나 체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개신교 리더십의 회복 가능성에 대한 대단히 긍정적인 비전을 갖고 있다. 마치 쉽게 물러갈 것 같지 않던 계절의 폭군이 우주 질서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다가오는 계절의 여왕 앞에 자리를 내 주는 것처럼, 만약 개신교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자기 성찰 가운데서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지도력의 원칙, 즉 희생과 섬김의 원칙(마 10:45)을 회복한다면, 만세전부터 예정된 주님의 섭리에 따라 우리 교회가 당한 매서운 한파는 물러가고 개신교 리더십의 봄은 정녕 도래할 것을 믿는다.

우리 주님의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이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감동을 주는 만고불변의 원칙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지나간 2천 년의 세계사가 증언하고 있고, 희생과 섬김을 등한시 하는 리더십, 즉 교만과 탐욕의 이기적 리더십이 백성들로부터의 비난과 굴욕을 자초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도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교회 역사를 통하여 입증되었다.

오늘의 교회에도 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린 장기려박사와 맨발의 최춘선 노인, 그리고 한경직목사와 같은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희생과 섬김의 리더십이 교만과 탐욕의 이기적 리더십에 압도당하고 있고, 창조적인 소수로서의 양화가 파괴적인 다수로서의 악화에게 구축당하고 있다는데 있다. 그러나 다행인 것은 젊은 지도자들 가운데, 주님의 재림과 종말을 향한 인류역사의 여정 속에서 한국교회에게 예정된 세계선교의 주역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자각하고, 무릎 꿇고 눈물로 기도하며 주님의 희생과 섬김의 원칙에 올인(All-in)하려는 사람들이 산불처럼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