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의 길

사명의 길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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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11일(목) 13:21

정 성 진 / 목사ㆍ거룩한빛광성교회

이때쯤 되면 각급 학교에서 신입생 선발을 위한 시험이 진행된다. 우리 교회에서도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보기 전날 1백 명이 넘는 학생들을 위해 일일이 안수기도를 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그리고 시험 당일 어머니들은 하루 종일 기도실에서 자녀들이 시험을 잘 치를 수 있도록 간절히 기도드렸다.

금년 우리교회에서 장신대 신대원에 6명이나 지원했다. 대학을 마친 젊은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40대의 집사도 한 분 끼어 있었다. 이들은 합숙을 해가며 열심히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그런데 여자 집사들 중에 다른 교단 신학대학원에 가겠다고 추천을 받으러 온 분들이 있었다. 한 분의 대학성적을 보니 놀랍게도 4.5점 만점에 4.42를 맞아 수석졸업을 했다. 그에게 물었다. "목사가 되려고 하십니까? 아니면 공부를 계속하고 싶으십니까?" 그랬더니 "목사가 될 맘은 없구요,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목사 교육과정인 신대원을 갈 것이 아니라 기독교교육대학원을 가든지 상담대학원을 가든지 하는 것이 옳은 생각이 아니겠느냐"고 하루만 더 기도해보고 올 것을 권했다.

그랬더니 다음날 기독교교육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해서 잘했다고 격려하고 추천서를 써주었다. 목사들에 따라 열심이 있는 교인들에게 목회자가 될 것을 권하기도 하고, 당신에게 사명이 있다고 신학을 권유하는 분들이 더러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나 같은 삯군 목사가 되려면 아예 목사가 될 꿈도 꾸지 말라"고 말린다. 교회에서 신대원에 가서 목사가 되겠다는 학생들이 나올 때마다 도대체 "내가 어떻게 본을 보였기에 이들이 이렇게 쉽게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일까?"하고 자신을 돌아보면서 회개하게 된다.

적어도 목사라고 한다면 순교를 각오하고, 그렇지 못하면 가난을 각오하고, 명예도 다 버릴 각오가 아니라면 가서는 안될 길인데 너무 쉽게 많은 젊은이들이, 심지어 나이든 분들이나 주부들까지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목회의 본을 엉터리로 보였으면 저렇게 신학을 지원하는 것일까 하고 양심에 가책을 느낀다.

어린 시절 내 눈에 비친 목사의 모습은 몹시도 추래했었다. 자가용은 커녕 자전거도 드문 시절 목사들이 걸어서 심방을 할 때면 심방대원으로 따라 다니는 권사들은 검정치마에 고무신을 신고 꾸부정한 허리를 지탱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기도 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목사는 채권장사 가방과 같이 닳고 닳은 가방을 들고 다니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이름난 큰 교회 목사 몇 분을 제외하고는 자녀들의 등록금을 대기 힘든 것이 목회자들의 생활이었다.

그리고 싸우고 갈라지는 교회가 왜 그렇게도 많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집안에서 나에게 신학교를 가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얼마나 싫었던지 화를 내면서 "그렇게 후줄근한 일을 왜 내게 권하느냐"고 혈기를 부렸다.

그 후 어머니는 말씀은 못하셨지만 계속 기도를 하셨다. 그러고보면 하나님의 사랑의 포로가 되어 사명의 길을 가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옛날 고생하는 목사들의 모습이 뇌리에 각인된 까닭인지 지금도 누구에게든지 목회자가 되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적어도 목회자의 길을 가겠다고 결단했다면 순교를 각오한다든지, 그렇지 못해도 무소유를 결단한다든지, 세상부귀 영화를 멀리하겠노라는 다짐쯤은 해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벧세메스로 가는 암소같이 힘들고 어려워도, 마음이 아프고 괴로울지라도 눈물을 흘리며 뒤돌아 보지 않고 가야 할 길이다.

그런데 요즘 목회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그런 결의가 보이질 않는다. 공부 잘하니까 해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존경도 받고 출세도 하고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지원하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군에서 군종사병 시절 모셨던 김홍태 군종목사께서는 "폐병에서 고쳐주시면 주님만 섬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일생을 독신으로 헌신하셨던 모습을 보았다. 29세 때 폐광촌 담임전도사로 갔을 때 은퇴하신 조남붕 전도사의 딸이 이화여자대학교를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보내지 못했고, 시골교회 여섯 곳을 담임하는 동안 네 곳을 건축하셨다.

그리고 금왕교회에서 전도사로 은퇴하실 때 교회에서는 양복 한 벌 해드린 것이 전부였다. 이곳 저곳에서 도움을 받아 교회를 건축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사모께서는 건축 중 철근에 찔려 얼굴에 큰 상처가 나 있었지만 젊은 전도사를 후임으로 모신 것만으로도 신이 나서 감사하며 떠나셨다. 지금 조 전도사께서는 92세로 공주원로원에 계신다.

혹시라도 큰 교회 목사들이 마치 성공한 CEO처럼 비쳐져서 그것을 보고 좋은 직업으로 동경하고 신학교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재고해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지금 우리나라 개신교는 사회적으로 큰 신뢰와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이 목사는 신부와 스님보다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진정으로 이런 시대상을 알고 있는가? 정말 주님이 나를 목회자로 부르셨는지 소명에 대해 묻고 또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나도 스스로 자문해 본다. '나는 오늘 과연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명의 길을 걷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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