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은 부흥의 다른 이름"

"섬김은 부흥의 다른 이름"

[ 우리교회 ] 3백만성도운동 '성장하는교회' 화성 염광교회

박성흠 기자 jobin@pckworld.com
2008년 12월 10일(수) 09:24

섬김과 부흥은 '따로국밥'이 아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주민을 섬기면 부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흥봉불이(興奉不二)인 것이다.

평양노회 염광교회(최기용목사 시무)는 부흥을 꿈꾸기 어려운 환경이라도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판단하고 실천한다면 부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교회다. 섬김은 부흥의 다른 표현이며 부흥은 반드시 섬김을 자양분으로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다.

   
▲ 신축 염광교회 모습. 뒤로 보이는 곳이 1960년대 염전지역이다.
철수와 영희가 우리나라에서 흔한 이름인것 처럼 염광교회는 한국교회에서 흔한 이름이다. 하지만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삼존3리에 자리한 평양노회 염광교회의 '염(鹽)'은 다른 염광교회와 그 의미가 조금 다르다.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고 하신 말씀에 따라 세상에서 빛과 소금, 소금과 빛으로 살고 또 그렇게 살기를 다짐하는 사람들이 염광교회라는 이름을 선택하는 것이 통례.

   
▲ 최기용목사
최기용목사가 담임하는 염광교회가 자리한 화성시 송산면 삼존리는 실제 19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최대 염전이 있었던 곳이다. 1960년대 염전의 부흥과 함께 설립되어 자연스럽게 염광교회의 이름을 가진 교회다. 1960년대 이후 이 동네에서 번창하던 염전이 사라진 것은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시화방조제 사업이 진행되면서 변해버린 환경생태 중 하나다.

염전은 본디 돈이 많은 동네로 알려져있어 염전이 번창하던 1964년 설립된 염광교회는 당시 2백여 명이 출석하며 부흥의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최기용목사가 1990년 부임한 이후 염전이 사라지면서 마을이 쇠퇴하기 시작해 교인도 50여 명으로 줄어들었다. 염전의 쇠퇴는 마을의 몰락을 불렀고 곧바로 교회의 쇠락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염광교회를 중심으로 반경 2킬로미터 내에는 주택이 50여호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50명에 불과하던 염광교회 출석교인은 지금 2백50명(재적 5백명)으로 불어나 있다. 한번 쇠락한 염전이 다시 흥한 것도 다른 어떤 요인으로 마을이 번창한 것도 아니다. 교회성장을 가로막는 열악한 주위환경은 여전하지만 염광교회는 1990년이후 지금까지 꾸준한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염광교회의 교회론은 '세상속에 있지만 세상을 닮지 않는 교회'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꿈을 꾸었고 그 방편으로 사회봉사를 선택했죠".

담임 최기용목사는 1996년 노인대학을 시작으로 어린이집과 노인요양원 등 지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최고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으로 돌파구를 만들었다. 현재 1백70명이 출석하는 염광노인대학 학생 중 염광교회 교인은 10여 명에 불과한데다 비기독교인이 절반을 넘는다는 것이 최 목사의 설명.

길을 가다가 쓰레기 떨어진 것을 줍고, 낮에 가로등 켜진 것을 발견하면 끄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듯 보이는 작은 일부터 시작한 염광교회의 사회봉사는 무섭기로 유명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송산면을 넘어 비봉 남양 마도 서신면 등 송산면 인근 5개 면으로 퍼져나가 '염광교회 좋은교회'로 이미지를 굳혔다. 급속하게 출석교인이 늘어난 것은 아니지만 매년 꾸준히 새신자들이 늘어났다는 것.

   
▲ 염광교회 노인대학 학생들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
교회의 좋은 이미지는 두해 전 화재로 교회가 전소됐을 때 위력을 발휘했다. 노회가 5천만 원을 위로금으로 보내온 것은 물론 동네 부녀회와 자치회 등 마을에서 들어온 위로금만 1억 원을 넘었다. 최 목사는 "고물상하는 분이 1백만 원을 보내왔고 노인대학에 오시던 어머니의 아들이 1백만 원을 보내오는 등 참 감격스러운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렇다고 노인대학의 특별한 운영의 비법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마음을 얻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하고 꾸준히 섬기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는 법이죠". 최 목사의 말이다.

염광교회가 자리한 송산면 일대는 2012년까지 '송산그린시티'라는 신도시가 완성될 예정이다. 화성시의 주요 정책사업 중 하나인 이 사업은 향후 염광교회의 부흥을 위한 밑그림이기도 하다. 화재 이후 염광교회는 신도시 계획에 따라 다소 무리한 예배당 건축을 추진했다. 6천㎡ 대지에 2천㎡ 예배당을 비롯해 △어린이집 3백30㎡ △노인요양원 1천2백㎡ △노인대학 3백60㎡ △사택 1백㎡ 등 약 4천㎡에 달하는 건축을 완료했다.

열악하게 변한 지역사회의 환경에도 불구하고 염광교회가 지난 20년간 꾸준한 성장을 이뤄온 배경은 섬김이다. 신도시 개발이 완료되는 2012년 즈음에 염광교회는 또 한번 변화의 바람을 맞이하게 되지만 최 목사는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교인들의 자세는 무기질이 풍부한 토양처럼 매우 풍부하다"고 강조했다. △맞벌이 부부 70% △노인 15% 미만 △30~50대 대다수라는 농촌 교회 답지 않은 교인분포가 이같은 사실을 반증한다.

"살아있는 교회라면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영향력을 나타내야 합니다. 지역 주민들에게 영향력을 보여주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은 사회복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염광교회의 새 신자는 성도들의 접촉점을 통해서 들어오기도 하지만, 교회의 좋은 이미지를 보고 입소문을 듣고 옵니다. 교회의 좋은 이미지는 사회복지가 지름길입니다. 섬김은 부흥의 다른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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