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평양대부흥운동 다시 보기

[주간논단] 평양대부흥운동 다시 보기

[ 논단 ]

차유진 기자 echa@kidokongbo.com
2007년 11월 14일(수) 00:00

   
 
 
이만식
장신대 교수ㆍ사회복지 전공

최근 2~3년간 한국교회는 'Again 1907'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평양 대부흥운동 1백주년을 준비해왔다. 그러면서 1907년과 같은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다시 이 땅에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2007년 한 장의 달력이 남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연 한국교회는 그렇게 바라던 성령의 역사를 다시 체험했는가? 대부흥이 정말로 일어났는가? 아니면 한국 교회가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는 것을 인식시켰는가? 누구도 이러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필자는 그 이유를 1백년 전 운동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는 자신들이 대부흥이라고 외치는 숫자적 열매에만 집착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당시의 운동을 돌이켜보면 개인적ㆍ교회적 영역에서 공(功)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즉 이 운동의 목적이 교세확장이 아닌 이미 신자된 사람들의 영적 각성이었기 때문에, 개인은 물론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거듭날 수 있는 촉진제가 되었고 그 힘으로 한국교회는 일본 식민지 시대와 6.25사변 그리고 정치적 격동기 시절의 한국교회를 지켜내는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또한, 이 운동으로 인해 기독교인들의 삶의 도덕성이 향상되었다는 점은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로 인정할 수 있다. 타인에게 신체적ㆍ재정적 손실을 입힌 사람들은 이날의 성령체험을 계기로 자신들이 피해를 준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사과하며 그 손해까지 배상하는 구체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진정한 영성은 삶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그들의 회개운동은 성서적이고 실천적인 매우 건강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功)은 개인의 생활환경 범위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고 심지어 당시 독립을 위한 온 국민의 염원을 억누르고 분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 당시 사회의 지식층과 엘리트 계층의 일부가 1907년 운동의 비(非)정치화와 몰(沒)역사성을 문제 삼아 교회를 떠나는 뼈아픈 아픔도 맛보았다.

그렇다면 당시의 평양운동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비춰봤을 때, 한국 기독교와 교회가 귀 기울여야만 하는 역사적인 교훈은 무엇일까?

첫째, 우리는 당시의 대부흥보다는 대각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의 일부 성숙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십자가 안에서의 '참된 자유함'을 깨닫지 못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도리어 그들의 삶에 '부자유함'을 준다고 생각하여 교회를 떠났다는 사실을 주시해야 한다. 통계적으로 살펴보아도 1907년에는 개신교 교인의 증가율이 감소했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지향점은, 교인수의 단순한 증가보다는 진정한 '자유함'을 맛볼 수 있는 기독교인의 삶의 변화에 있다. 지금은 기독교인들이 각자의 삶의 터전에서 당당하게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밝히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운동이 필요한 때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무신론자들이 '커밍아웃(자신들의 성향을 밝히는)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 역시 어느 정도 사생활에 불편함이 있고 사회생활에서 손해를 볼지라도 "내가 기독교인이다"라고 커밍아웃운동을 전개해야 할 때이다.

둘째, 한국교회는 이제 '종교적'영역에 대한 관심을 벗어나서, 사회현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여러 사회현실들-저출산·고령화문제, 장애인문제, 이혼을 포함한 가족문제, 사회 양극화문제 등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만 한다. 최근 천주교정의사제구현단의 모 그룹에 대한 고발 조치는 상대적으로 가톨릭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준다. 우리 개신교도 이젠 사회의 썩고 어두운 곳곳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만 할 것이다. 당장은 교인수가 감소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기독교다운 기독교'가 되어야만 한다.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믿고 손해보기 운동'을 벌어야 할 때라는 한 목회자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1백년 후의 기독교인들에게 2007년은 어떻게 기억될까? 과연 올해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처럼 오래 기억되는 한 해가 될 수 있을까? 이제 남은 50일만이라도 겸허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 음성을 듣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한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근시안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한 알의 밀알이 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눅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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