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목사와 장로는 동역자 관계

[주간논단] 목사와 장로는 동역자 관계

[ 논단 ]

차유진 기자 echa@kidokongbo.com
2007년 11월 07일(수) 00:00

정 대 성
전국장로회연합회 회장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성도들을 돌보고 관리하는 좋은 동역자의 관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목사는 말씀 위에 바로서서 가르치고 성도들을 바르게 지도하며 양육하는 일꾼이요, 때로는 대표성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기도 한다. 그렇다면 장로들은 동역자로서 목사와 협력하여 성도들을 보살피며 행정적, 영적 상태를 보살피는 처리자요 감독자요 동역자의 관계인 것이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가 분열했을때 책망하면서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고 말씀하시며,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라고 하셨다.

그렇다. 우리들은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구할 것은 충성밖에 없다. 그런데 교회에 왜 분쟁이 일어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것인가.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들이 잘못하기 때문에 주님을 노엽게 하며 성도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회법으로도 안 되어서 세상 법정까지 문제들을 가져가야만 하는가.

요한복음 13장에 나오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는 섬김의 본을 오늘날의 우리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실천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목에는 깁스가 된 것처럼 굳어있고, 자만하고 교만하여 성도들 보기를 경시하고 목사와 장로 사이는 마치 경쟁자요 세상 사람들처럼 자기들이 우위 인양은 행동하지 않는가.

혹자는 "목사안수를 받고나면 차차 목이 굳어지기 시작하는 것은 아니냐"고, "집사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장로가 되고부터 어른 행세를 하고 대접을 받고자 섬김을 받고자 하지는 않느냐"고 묻는다. 세상이 변해간다고 우리들마저 변해서야 되겠는가. 주님의 근엄하신 책망을 생각한다면 항상 겸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장로들이여 겸손해지자. 목회자들의 사역을 적극적으로 돕자. 시행착오나 잘못이 있을 때는 대화를 통해 도움을 주고 권면해 주자. 되도록 사랑으로 권면하고 법을 앞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목회자들 또한 감정을 앞세워 파국에 이르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때론 부족한 장로들을 세우게 되기도 하고 답답할 때도 있으리라 믿는다. 그러나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기를 바란다.
 
주님께서는 참는 자를 세우시고 택하신다. '모든 것이 내 탓이로다'하는 말처럼 지도자는 관대해야하며 사랑의 종으로서 큰 가슴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참고 견디는 자를 주님께서는 버리지 않으신다.

영적인 눈으로 성도들을 바라보며 말을 삼가고 끝까지 참는 마음을 잃지 말기를 부탁한다. 또한 관용과 칭찬의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우리 모두 무엇 하나 내세울 것이 있겠는가. 주님께서 높여 주실 때만이 진정 높아지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주님께서는 손님으로 초청되었을 때도 자청하여 상석에 앉지 말라고 하신다. 남이 존경하고 우리를 높여 줄때 우리들의 위치가 세워지게 됨을 기억하자.

세상의 목회자와 장로들이여, 우리 모두 다 같이 겸허한 마음으로 겸손해지자. 패역하고 악이 만연한 세대와 사탄이 우리들을 가지고 놀고 있으며 유혹의 손길들이 가까이 와 있음을 명심하자. 자만과 교만은 사탄의 도구요 넘어질 수밖에 없는 길임을 잊지말자.

목회자들과 장로들을 감히 평할 수 없는 필자가 혹시라도 그런 올무에 걸릴까 싶어서 몇 자 적게 되었다. 혹시라도 오해 없으시기를 바라며 남은 생애를 주님께 헌신하며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힘쓰고 싶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