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교회,소비사회를 경계하라

[주간논단] 교회,소비사회를 경계하라

[ 논단 ]

차유진 기자 echa@kidokongbo.com
2007년 07월 11일(수) 00:00
조용훈
한남대학교 교수ㆍ기독교문화연구원 원장

교회마다 강단에서 '영적 전투'를 강조한다. 사실 신앙인의 삶이란 매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과 영적 싸움을 살아가는 삶이다.(요일 1:16) 하지만 싸움에 앞서 적이 누구인가 파악하는 것은 전투 의욕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서는 '허공을 치는'(고전 9:26)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과 교회가 싸워야 할 상대는 누구일까? 우리시대를 주관하며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적그리스도는 누구일까?

과거 한국교회는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와의 전투에서 그리고 70년대에는 유신독재정권과의 싸움에서 상당한 정도의 전과(戰果)를 올렸다. 이제 더 이상 공산주의나 독재정권은 한국교회가 무서워 할 상대가 못된다.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맞서야 할 상대인 소비사회와 그 전위대(前衛隊)인 백화점은 결코 만만해 뵈지가 않는다. 전세(戰勢)를 낙관하지 못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사람(고객)들이 교회보다 더 자주 백화점을 찾는다. 주일날 교회가는 사람보다는 백화점이나 대형쇼핑센타에 가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주일은 예배드리는 날이 아니라 가족들이 쇼핑하는 날로 굳어지고 있다.

둘째, 고객들의 만족도가 교회보다는 백화점이 높다. 백화점이나 대형쇼핑센타에 가보면 천국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여인네들의 주름살은 활짝 펴지고,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치며 날뛴다. 온 식구 얼굴에 행복이 가득하다. 하지만 교회에서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기독교의 현실을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교회에 만족하지 못해서 성당으로 가거나 아예 기독교를 떠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에게 하나의 종교를 택하라면 선호도에 있어서 개신교는 가톨릭과 불교에 이어 세 번째다.

셋째, 교회가 백화점을 따라가고 있다. 교회건축 양식을 보면, 교회에는 십자가가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백화점이나 교회나 별반 다르지 않다. 교회마다 유행처럼 번져가는 문화교실만 해도 홍보물부터 강좌내용까지 점점 더 백화점 문화교실을 닮아가고 있다. 이쯤 되고 보면 과연 백화점과의 싸움에서 교회가 이길 수 있을까 상당히 걱정스럽다.

백화점은 소비사회의 교당(敎堂)이며, 그 안은 '지름신(神)'이 통치한다. '지름신'이란 '물건을 구매한다'는 뜻을 지닌 인터넷 은어 '지르다'라는 말에서 나온 신조어이다. "질러버려,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지름신이 강림하면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백화점 매장에서 카드를 긁어대고 홈쇼핑 채널 앞에서 수화기 버튼을 눌러댄다. 지름신의 강림은 쇼핑중독자를 만들어 내고, 수많은 사람들의 영혼만이 아니라 가정생활까지 파탄으로 내몬다. 빚더미에 깔려 허우적대는 신용파산자들이 수백만 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공허감과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교당인 백화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금단증상에 괴로워하는 알콜중독자나 마약중독자처럼 '이게 아닌데'하면서도 스스로를 제어하지 못한다.

'이 물건만 사면 행복해 집니다.' 소비사회는 구원을 약속하고 행복을 보장한다. 하지만 소비사회가 약속하는 구원은 거짓이며 행복은 순간이다. 아무리 최신 제품, 최신 모델이라 하더라도 사온 물건은 금방 낡은 것이 되며, 사람들은 다음에 더 크고 더 비싼 것을 사야 직성이 풀린다. 마치 알콜이나 아편과 같이 한 번 맛을 보면 그것 없이는 절대 살아갈 수 없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소비사회는 우리시대 또 하나의 사이비종교라 할 수 있겠다. 통일교나 JMS처럼 눈을 부릅뜨고 치열하게 영적 싸움을 해야 할 상대인 것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