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격려와 배려의 가치

[주간논단] 격려와 배려의 가치

[ 논단 ]

차유진 기자 echa@kidokongbo.com
2007년 06월 22일(금) 00:00
   
홍순자
신촌교회 장로ㆍ한국교회여성연합회 전 회장

때때로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고 기준이 된다. 사람은 어떤 경우든 마음에 없는 행동과 말은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단지 소리에 지나지 않고 그 행동 또한 무의미한 몸부림일 뿐이다. 글을 뜻하는 문(文)은 원래 '장식, 꾸며 다듬다'는 의미로 쓰였다. 말을 다듬어 표현한 것이 '글'이라는 뜻이지만 더 깊이 파고들면 마음을 다듬고 아름답게 꾸미는 것을 말한다. 이 때 꾸밈의 핵심은 타인(말을 듣는 사람, 글일 읽는 사람, 행동에 영향을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 있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글과 말, 행동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반면 어떤 것은 오히려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거기에 담긴 마음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이 경우 '마음'은 '인격', '품격'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작은 행동과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는 까닭이다.

유감스럽게도 우리 주변에는 혐오감까지는 안 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드물지 않다. 필자가 목격한 어느 파우더룸의 풍경도 그 중의 하나다. 유명 교수 한 분이 화장대 위에 두 발을 올려놓은 자세로 크림을 바르는 광경은 아무리 너그럽게 봐도 찌푸려지는 눈살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얼굴은 아름답게 가꿨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 행동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오만 방자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 지식은 갖추었을지 몰라도 그것을 담아 나타낼 마음을 다듬지 못한, 옛날식으로 표현하면 무문인(無文人)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향기, 편지가 되라'는 설교를 듣고도 주위 사람들에게 향기를 풍기지도, 편지를 전하지도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필자의 모습 역시 부끄러울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본분인데도 그 증거자가 신뢰 받지 못하거나 존경받지 못한다면 사명을 이룰 수 없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

한 유명 MC는 대화의 비법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쓰지 않아도 뜻을 잘 전달하는 것, 상대방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게 말하는 것'이라며 그 근본은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겸허하게 낮추는 데 있다'고 밝힌 것을 읽은 적이 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라는 말씀 속에는 겸손과 남을 배려하는 모든 성품이 다 들어 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면 모든 성도들이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전에 한 교계지에서 '성경을 열심히 배우고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이 문법만 지루하게 배우고 회화한마디 못하는 지난날의 영어교육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하나님 자녀의 본분을 다 실천하지 못하여 세상으로부터 비난을 받는 오늘 날의 신앙인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기에 충분한 경고라고 하겠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교회 여성지도자의 윤리적 사명' 제하의 강연에서 모 교수는 "1907년의 회개 운동은 신앙 대부흥운동의 촉매제가 되었고 그 결과로 제사와 축첩으로 대표되던 한국 사회와 가정문화의 대변혁과 함께 반상계층의 붕괴, 금주, 금연, 도박 추방 등으로 공동체 신앙문화의 싹을 틔울 수 있었으며 이는 축호전도, 교회 자립문화 형성, 교회연합과 일치 등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가정과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바탕으로 하여 교회 부흥을 이룩한 중심에는 교회 여성지도자의 힘이 절대적이었다는 뜻이다.

이처럼 1백년 전 대각성 운동으로 '하드웨어'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면 오늘의 교회는 이를 바탕으로 하여 시대에 걸맞는 '소프트웨어' 구축에 나서야 하는 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정보화가 성숙되기 시작한 지금은 '느낌이 좋으면 쉽게 다가오는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적 특성에 걸맞는 새로운 각성 운동을 통해 하나님의 속성을 닮은 모습의 회복과 그 모습이 보여주는 삶 속에서의 실천, 행함이 있는 믿음, 주님 안에서 관용하고 존중하고 믿어주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격려하고 배려함으로서 남에게 감동을 주며 존경과 신뢰를 받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면 모든 영혼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능력은 은혜로 주실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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