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신앙 오늘로 이어가는 공동체, 안동서부교회

뿌리깊은 신앙 오늘로 이어가는 공동체, 안동서부교회

[ 우리교회 ]

김성진 기자 ksj@kidokongbo.com
2006년 12월 20일(수) 00:00
   
경북 안동시 태화동에 위치한 안동서부교회와 비전센터 전경.
유교의 전통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경북 안동에는 지금도 전통을 중시하며 그 전통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러한 유교의 전통은 미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이곳에 세운 교회 안에도 남아 있어 신앙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82년간 믿음의 선배들이 지켜왔던 신앙 위에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교회가 있다. 신앙의 선배들이 지켜온 믿음의 뿌리를 지역주민들과 함께 나누고 있는 경안노회 안동서부교회(김오동목사 시무).

지난 1924년, 이 지역 모교회인 안동교회가 개척한 기도실로 출발한 안동서부교회는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믿음의 정조를 지켰던 목회자와 신앙의 선배들의 전통을 고스란히 이어 받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역복음화에 앞장서고 있다. 최근 안동시 태화동으로 옮겨 교회를 신축한 서부교회는 새시대에 걸맞는 모습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있는 교인들의 모습.
안동서부교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믿음을 지키며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교회의 기초를 닦은 초대 이원영목사를 비롯해 30여 년간 서부교회에서 목회하며 서부공동체의 골격을 이룬 김원진원로목사와 새로운 부흥을 이뤄낸 홍만조목사, 그리고 교회 건축을 통해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담임 김오동목사와 눈물로 기도하며 교회의 부흥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는 장로들과 교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32년, 초대 목사로 부임한 이원영목사는 일제시대의 압박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신앙의 기초를 세웠던 분이다. 본교단 제39회 총회장을 지낸 그는 신사참배 거부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믿음을 지켜냈다. 이원영목사의 뒤를 이어 서부교회의 골격을 마련한 목회자는 김원진원로목사. 1960년 제5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그는 65세에 조기은퇴할 때까지 30년간 서부교회를 지켰다.

그의 뒤를 이어 서부교회를 담임한 홍만조목사는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목회자로 서부교회 안에서 기독교교육의 획기적인 새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5년간 서부교회를 담임하다가 안강제일교회로 목회지를 옮긴 그는 5년간 서부교회의 새로운 부흥을 이끌어낸 목회자였다.

이어 김오동목사는 지난 12년간 서부교회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다. 그가 부임한 후, 가장 먼저 고심했던 부분은 교회 건축이었다. 늘어나는 교인들을 기존의 교회에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또 협소한 기존의 건물로는 새로운 시대를 담아내기에 어려움이 많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

   
제39회 총회장을 지낸 이원영목사의 기념비가 교회 옆에 세워져 있다.
1995년 부임한 그는 그해 연말 당회 때, 건축위원회를 조직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 맞는 교회 모습을 통해 선교의 새로운 장을 펼쳐나가기로 결정했다. 2001년 안동시 태화동에 1천9백14평 부지를 매입한 서부교회는 2002년 12월 기공예배를 드리고 2003년부터 건축에 들어갔다. 1년쯤 공사가 진행되던 중에 뜻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건축업자가 부도를 낸 것.

2004년 봄노회 때, 이 일을 당한 교회로서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고 교회에 불어 닥친 큰 위기였다. 김 목사는 곧바로 금식기도에 들어갔고 그것을 계기로 교인들도 기도실에 모여 눈물로 기도했다. 교인들이 그 어려움을 기도로 견뎌낸 것. 그것도 1년이라는 기간을 교인들이 참고 기다리며 기도했다. 이 기간 동안 교인들은 오히려 교회에 대해 더 큰 사랑과 애착을 갖게 하는 기회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 할까. 담임목사가 대장암으로 고통을 받게 됐다. 목회자나 교인들이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지만 서부교회는 오히려 교회와 목회자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공동체로 하나가 돼 갔다. 이러한 교인들의 모습을 보며 김 목사는 수술 후 복대도 풀지 않은 체 강단에 서서 말씀을 선포하는 투지를 보여줬다. 선배들이 신앙을 영향을 받았던 그로서는 이러한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교인들은 참고 또 말을 아끼며 서로 기도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 일이 있고난 뒤, 김 목사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준 당회원 전원을 건축위원으로 세워 함께 교회를 건축하기로 다짐했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5년에 새로운 건축업자와 계약을 맺고 지난 10일 헌당식을 갖게 됐다. 안동시 태화동으로 이전해 새로 건축한 서부교회는 4층 규모의 본당과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비전센터 등 두 개의 건물을 마무리했다.

서부교회는 교회로 교회되게 하라는 주제로 교회 본질을 회복하고 본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서부(WEST)'라는 교회 명칭을 통해 예배(Worship) 전도(Evangelism) 봉사(Service) 교육(Teaching)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다. 우선, 서부교회는 감동적인 예배를 드리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위해 예배시간에 성경말씀으로 구약과 복음서 서신 등 세 곳을 모두 찾아서 봉독하고 성찬식도 리마예식서에 의해 진행하고 있다.

서부교회가 강조하는 것 중에 또 하나는 전도와 선교다. 복음을 위하여 가든지 보내든지 한다는 목표로 전교인이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현재는 협력선교를 감당하고 있지만 이제 단독선교사를 파송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2010년까지 장년 출석 1천명을 위해 전교인이 함께 전도에 앞장서고 있다. 서부교회가 또 하나 사명으로 내세우는 것은 봉사다. 교회가 요람부터 무덤까지 관리하기 위해 금년에 사역개발위원회를 조직했고 교회가 지역주민을 위해 개방할 수 있는 사역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제자화를 위한 교육이다.

무엇보다 서부교회는 교회 건축을 계기로 지역사회를 섬기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교회 건축을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서부교회는 신앙의 선배들이 보여준 뿌리 깊은 신앙을 오늘에 이어가기 위해 예배 선교 교육 봉사에 열정을 쏟고 있다.


<안동서부교회를 이끌어온 목회자들>

안동서부교회의 기초를 세운 이원영목사는 애국자로 또 교단과 교회를 위해 앞장섰던 목회자였다. 1938년에는 신사참배 반대로 목사 시무 정지를 당하고 다음 해에 신사참배 반대로 안동경찰서에 수감을 당하는 등 많은 고초를 당하면서도 교회의 기초를 굳건히 세웠던 것.

본교단 제39회 총회장을 지낸 그는 일제에 의해 교회가 합병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성경적인 신앙과 애국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목회사역을 감당하며 경안고등학교 설립과 경안성서신학원 설립에도 깊이 관여했다. 경안고의 출발은 서부교회에서 시작했고 최근까지 서부교회에서 채플을 갖기도 했다. 신사참배가 한창이었을 때, 끝까지 신사참배에 반대하며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그는 이후에 교단에서 총회장을 세우면서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이원영목사의 뒤를 이어 안동서부교회의 골격을 이룬 목회자가 김원진원로목사. 그는 이원영목사가 설립에 참여한 경안성서신학원의 1회 졸업생으로 스승의 영향을 많이 받은 목회자였다. 그는 경상북도에서 제1호로 신협을 설립해 지역 서민경제에 크게 기여했을 뿐 아니라 67년에는 교회 내에 농아부를 설립하기도 했다.

농아선교회를 전국을 순회하며 열정을 쏟기도 했던 그는 이후에 농아부가 계속 성장해 농아인교회로 설립하게 됐고 현재 이종만목사가 농아인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무엇보다 서부교회 공동체의 골격을 이룬 그는 80년대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에 앞장섰다. 한국기독교장로회 및 천주교 등과 더불어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던 그는 심지어 교회를 집회 장소로 개방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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