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 틀리게 고백하는 것이 은혜인가?

[주간논단] 틀리게 고백하는 것이 은혜인가?

[ 논단 ]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9월 06일(수) 00:00

몇 년째 총회가 열릴 때마다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의 재번역 문제를 가지고 논란이 있어왔다. 번역이라는 것이 결코 완벽할 수 없고 사람마다 해석하는 입장이 다를 수도 있다.

그래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 같은 우리의 신앙의 근본에 관계된 것들을 바꿀 때에는 신중의 신중을 기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명백하게 틀린 것을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고 교인들에게 익숙해져 있다는 이유 하나로 고치면 안 된다고 강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바로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같이 중요한 것들이라면 더더욱 잘못된 채로 계속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총회 때마다 "지금까지 현재의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가지고 은혜롭게 잘 지내왔는데 왜 새로 번역하면서 시끄럽게 하느냐"고 재번역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잘못을 알고도 과연 계속 은혜롭다 할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현행 사도신경 번역문에서 잘못된 것 중 셋만 예를 들어보자.

첫째는 예수님에 관하여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한 것은 문법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주어로 사용돼 예수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하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애를 낳아주셨다는 말이다. 해괴망칙할 뿐 아니라 심한 신성모독이 아닐 수 없는 말이다. 그렇게 고백하면서 은혜롭다는 것인가?

둘째는 '장사 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고'한 것이다. 이 문장에서 주어는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이 말은 이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자신의 장사를 스스로 지내시고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뜻이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말이다. 그렇게 고백해야 은혜롭다는 것인가?

셋째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한 것이다. 원문에는 분명히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로 되어 있는데 아무 이유 없이 '아버지'라는 말을 빼고 사용하여왔다. 원문에 있는 대로 충실하게 하자는 것이 은혜롭지 않은 일인가?

현행 사도신경 번역문에는 그 외에도 신학적으로나 문법적으로 바로잡을 데가 많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해괴망칙하고 신성모독적인 신앙고백을 계속해야 은혜롭다는 말인가?

잘못된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리며 바르게 가르치지 않고 지나가는 것이 진정 은혜로운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을 바로잡을 때에 목회자가 그동안 잘못 가르친 것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두렵다는 것이고 그래서 은혜롭지 못하다는 말인가?

그러나 목회자가 잘못된 것, 잘못 가르친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즉시 바로잡을 줄 아는 용기가 더 은혜로운 것이 아닐까?

그동안 사용해온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이 바뀌면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교육적으로 안 좋다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교육이란 무엇인가? 바른 것을 가르치고 잘못된 것은 바로 잡는 것이 교육 아닌가? 그저 혼란만을 두려워하여 잘못된 것을 계속해서 붙들고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인가? 잠시 동안의 혼란을 무릅쓰고라도 바른 것을 가르치고 세우는 것이 오히려 참된 교육일 것이다.

장로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스스로를 항상 개혁하는 의지를 전통으로 삼아온 교회다. 개혁의 의지가 없고, 더군다나 명백하게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치려 하지 않는 교회나 목회자는 스스로에게서 장로교회라는 이름을 떼버려야 할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나 틀린 신앙고백을 하면서 은혜롭다 하고 지낼 것인가? 언제까지 교인들에게 잘못된 신앙고백을 계속하도록 강요하며 지낼 것인가? 제발 이제는 비겁하고 무책임하며 선동적인 발언으로 총대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만드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번 총회에서는 잘못된 것들이 다 고쳐지는 정말 은혜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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