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회의 문화

성숙한 회의 문화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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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8월 30일(수) 00:00
김광웅
포항제일교회 목사

오래전 목회자 몇 분과 함께 유럽을 방문했었다.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며칠을 머물때였다. 일행이 탄 대형버스의 기사는 아주 점잖게 보이는 프랑스인이었는데 침착하게 운전을 잘 했다. 한번은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기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우리가 기사님을 도와드릴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이 점잖은 기사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며,"제발 식사 좀 천천히 하고 나오세요. 같이 들어가서 식사하는데,나는 절반도 못 먹었는데 다들 이쑤시게를 쓰면서 식당에서 나옵니다"하는 것이었다.

그 여행길에 네델란드도 방문했었다. 유명한 풍차촌을 잠시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입장티켓을 사는 입구에 어느 카메라를 든 외국인 여성이 우리 각자의 모습을 부지런히 찍고 있었다. "무엇하는 것이냐"는 우리 질문에는 대답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녀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며 되물었다. "한국 사람인데 왜 그러느냐"고 우리가 묻자 "일본 사람이나 중국 사람이면 사진을 좀 천천히 인화해와도 되지만 한국 사람이면 서둘러야 합니다"하는 것이었다.

'빨리빨리'는 이제 한국의 문화 중 하나처럼 보인다. 이 특급열차를 탄듯한 문화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에 세계에 알려지는 급속한 성장의 나라가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하튼 외국인에 비친 우리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있는 사람들로 비쳐지고 있다.

이 빨리빨리 문화는 곧 좋지않은 다혈질 문화로 이어진다. 참고 기다리지를 못한다. 성질을 내어버리는 것이다. 길가에서 자동차 접촉 사고가 일어나도 외국인들은 교통경찰이 올때까지 표정 없이 느긋하게 기다린다. 그에 비해 한국 사람들은 금방 소리소리 지르고 펄펄 뛴다.

다혈질 문화의 영향은 성직자들이 모인 총회나 노회석상에서도 그대로 반영된다. 얼마든지 조용히 인내하면서 풀어 나갈수 있는 의제들도 걸핏하면 소리를 지르고 손을 휘젓고 흥분을 하는 모습으로 변한다.

미국 뉴져지(New Jersey)주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다. 그 지역의 미국 노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 데 그 가운데 잊을수 없는 감격의 기억이 하나 있다. 그 노회에서 남미 계통의 이민자들을 위해 한 교회가 설립되도록 열심히 도왔다. 좋은 교회가 만들어졌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성도들로 모인 교회였다. 모이는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은 그 미국 노회에 소속된 채 남아있지 않고 독립된 교회로 분리해 나가기를 원했다. 처음부터 그때까지 적극적인 지원을 해 온 미국 노회측에서 볼때 이것은 배신과도 같은 기분을 느낄수 있는 일이었다. 상당히 긴 시간 이 문제를 놓고 노회석상에서 여러 얘기가 오고갔다. 아무도 흥분하거나 큰 소리를 치는 이가 없었다. 신중하게 양쪽 입장을 다 듣고 의논했다.

그리고 결론이 났다. 그들이 원하는대로 분리시켜 주기로 한 것이다. 섭섭한 일이었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동안 그들이 사용해오던 미국 교회 건물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다시 의논하게 되었다. 어차피 남미 계통의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고 순수한 미국인들이 모이는 교회는 약해진 상황이었다. 원래 그 교회의 주인격인 이 미국인 교회 성도들은 이웃에 있는 다른 미국인교회와 합하기로 하고 그 교회당 건물은 분리해 나가려는 스페인 계통의 교회에 그냥 주기로 했다. 엄청난 규모의 교회당과 거기에 부속된 기물들도 그냥 다 주기로 한 것이다.

그때 한 노회원이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그냥 준다는 것은 받는 이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모든 건물 일체를 1불을 받고 정식으로 팔기로 하자는 의견이었다. 모두 찬성했다. 그래서 그 교회당은 분리해 나가는 이들에게 단돈 1불에 팔렸다.

이 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다른 한 노회원이 다시 발언을 요청했다. 그냥 분리시켜 보내지 말고 증경노회장 중에 한 분이 그들을 위해 대표로 축복기도를 해 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보내드리자는 제안이었다. 이것도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증경노회장 한 분이 간곡한 기도로 축복했고 모든 노회원은 아멘으로 그 기도에 화답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끝이 났다.

우리의 총회나 노회의 분위기와 비교해 본다. 엄청난 차이가 난다. 다혈질 문화의 민족이라 할 수 없다고 해버릴 일이 아니다.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 보다 성숙된 회의 분위기를 익히고 변화되어감이 옳은 것이다. 지금 우리 총회의 모습은 말과 영상이 다 함께 인터넷에 올려져 온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공개되는 회의를 진행해 나가고 있다. 더더욱 조심스러운 모습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총회가 열리는 9월이 되니 새삼 은혜스러웠던 그 옛 모습이 머리에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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