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논단]하인스 워드와 베트남 처녀

[주간논단]하인스 워드와 베트남 처녀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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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8월 15일(화) 00:00
배현주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하인스 워드는 흑인과 국제 결혼한 한국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혼혈인으로 미국 프로 풋볼계의 거목이다. 하인스 워드라는 성공한 한국계 미국인이 한국에 왔을 때,혼혈인에 대한 재인식이 있어야 한다는 여론이 떠들썩하였다. 마치 하인스 워드가 한국 사회에 처음 나타난 혼혈인인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그늘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수많은 혼혈인들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요즈음 농촌 지역의 국제 결혼이 증가하면서 혼혈아동들의 수는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농촌은 점차 국제 마을이 되어가고 있다. 십년 이내에 이러한 혼혈아동들이 2백50만이나 될 것이라는 예측도 들려온다. 그러나 한국의 수많은 혼혈아동들은 따돌림,편견,멸시와 폭행을 겪으며 심각한 고통 속에 자라나고 있다. 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혼혈청소년들의 상당수가 우울 또는 무력감을 느끼며 자살충동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사회의 명사가 된 혼혈아와 그늘에 있는 혼혈아에 대한 한국인의 모순된 자세는 서구세계 외국인과 제3세계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한 통계에 따르면 대한민국 민족주의는 혈연 민족주의보다 국적 민족주의의 성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한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출생하거나 한국인의 혈통을 가져야 한다는 혈연 민족주의도 여전히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지만,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외국인을 한국인으로 여기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통계 기사가 소개한 귀화한 외국인들의 예는 하나같이 한국 사회에서 유명해진 서구 백인들이었다. 유감스럽게도 서구 백인들에 대한 이 관대한 포용의 자세는 제3세계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현재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소위 3D직종,즉 어렵고(difficult),더럽고(dirty),위험하기(dangerous) 때문에 한국인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한국인들의 배타성과 인종차별적 폭언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고 고백한다. "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거친 언사를 듣게 되는 것은 다반사라고 한다. 인권침해의 사례들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서글픈 현실 배후에는 한국 민족의 두 가지 성향이 함께 녹아 있다. 하나는 혈통 순수주의를 절대화 하는 경향이다. 한 나라에서 여러 인종이 함께 공존하며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수많은 외국의 경우와 달리,우리는 한 언어를 사용하는 단일 민족이라는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이 특수성은 종종 민족의 고유한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넘어서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성 그리고 다문화(多文化)에 대한 폐쇄성과 연결된다. 또 하나는 왜곡된 우월감이다.

한국인들이 서구인들에게 대하는 것과는 달리,경제적으로 취약한 국가의 외국인들에게 고압적인 자세로 멸시하는 현상은 국내와 국외에서 동일하게 발견된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역시 그러하다. 미국에서 유색인들만 다니는 격리된 학교가 아니라 통합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된 것이 1960년 흑인들의 민권운동 때문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2세 학생들은,아직도 자신들의 부모들이 흑인들을 '검둥이' 혹은 더 모욕적인 말로 부르는 것에 당황한다.

한국 기독교는 우리 민족 사회의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정신적 고착상태를 극복하는데 지대한 기여를 할 수 있는 종교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말씀은 본래 '동족이 아닌 자들을 사랑하라'는 의미를 지녔다(마 5:44). '동족이 아닌 자들'이 우리의 기도와 사랑의 대상이라면,한국 땅에서 종종 강도 만난 자 같은 신세가 되어버리는 외국인 노동자들,그리고 도시빈민지역과 농촌지역의 결혼이민자들은 한국교회의 적극적 선교의 대상으로 부각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방방곡곡의 교회 학교가 지역의 혼혈아동들을 위한 사랑의 보금자리가 될 수 있도록 교육적,목회적,선교적 배려를 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그들이 국제결혼한 부모님의 자녀인 디모데같이 훌륭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신앙과 사랑의 따뜻한 보살핌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행 16:1).

무엇보다도 기독교는 1세기 로마제국의 광활한 지중해 세계에서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교회들의 전 세계적 연대 네트워크로 시작하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갈 3:28)라는 초기기독교의 세례고백문은 혈통,문화,계급과 성을 뛰어넘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적 비전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복음적 신앙의 비전을 확고하게 하며 지역과 세계에서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위해 일하는 것은, 보편적 인간애를 지닌 창조적인 한국인의 미래 자아상,곧 세계 속의 한국인을 정립하는 일에 중요한 선구적 공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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