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황금비율

신앙의 황금비율

[ 논단 ] 주간논단

한국기독공보 webmaster@kidokongbo.com
2006년 07월 12일(수) 00:00
배현주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부산장신대학교 신약학 교수
21세기 세계 기독교의 지형 변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 성장이다. 전통적으로 세계 기독교의 지도력은 유럽과 미국의 교회가 전담하다시피 했다. 오랜 세월에 걸친 교회와 신학의 유구한 역사가 전개된 무대이자 세계 선교활동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무게 중심이 형성되고 있다. 새천년의 시대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교회,특히 한국 교회는 세계 기독교의 지도력 형성에 참여해야 하는 교회사적 요청 앞에 서 있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 교회사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 교회는 이제 유년기를 벗어나 책임적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성년기에 진입한 모습으로서 세계 기독교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국내외적으로 들려오는 한국 교회의 활동에 대한 평가와 소문은 우리가 건강한 성년기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어쩌면 청장년기를 건너뛰어 벌써 노년기에 접어든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을 던져야 할 정도로 한국 교회의 양적,정신적 쇠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해외 선교현장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별과 같이 빛나는 귀한 선교를 감당하는 훌륭한 선교사들도 많이 있지만,국가뿐만 아니라 세계 기독교의 이미지까지 실추시키는 문제를 빚어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얼마 전 언론이 다루었던 선교사의 추행 사건은 유감스러운 한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선교 현장에 누적되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일부일 것이다. "나라 살림을 잘못하면 소수가 괴롭지만,외교를 잘못하면 온 백성이 고통을 당한다"는 케네디의 말을 한국교회의 해외 선교에도 적용해볼 수 있으리라. 해외선교사는 우리 민족의 민간외교관이면서 동시에 세계 기독교의 외교사절이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난 세기 전반기에 기독교인은 한국 사회에서 보증수표로 받아들여졌다. 기독교는 개인과 가정뿐만 아니라 민족의 희망이었다. 기독교는 사회적 변화의 동력뿐만 아니라 치유와 안정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한국 교회의 역사에 어디서부터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는가. 한국 교회의 목회와 국내외 선교는 대체적으로 '전투적'이라고 부를 만큼 열정적인 활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활동과 성찰,활동과 반성의 황금비율이 깨어진 것이 문제이다. 황금비율은 자연이나 예술에서 발견되는 가장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형태를 가능케 하는 비율로서 신이 주신 비율로도 일컬어진다.

신앙에도 황금비율이 필요하다. 성령의 열매가 열정적 사랑으로 시작해서 냉철한 절제로 끝나듯이,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건강한 신앙생활에는 다양한 요소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공존하기 마련이다. 한국교회가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양의 활동을 하고 있는데도 쇠퇴와 감소의 길로 들어섰다면,혹시 그 왕성한 활동의 질과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행동의 질과 방식을 결정짓는 마음의 습관,생각의 습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숙고해보아야 한다. 교단주의라는 마음의 습관은 특정 지역 내에서 다른 교단 교회들과 더불어 경쟁적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했지만,무분별한 교파주의 교회의 난립은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장제일주의라는 생각의 습관은 해외 선교에 있어서도 하루 빨리 교세를 확장해 후원 교회에 보고해야 하는 교회 중심주의,물량주의,그리고 업적주의를 영속하게 되었다.

선교는 무조건 해외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습관은 교회마다 단기선교로 외국 선교지에 나가는 일을 유행하게 만들었는데,현지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준비 없는 단기선교는 오히려 선교 현지에 뜻하지 않은 폐해를 초래하고는 한다. 한국 교회는 지금 성숙한 사고와 냉철한 성찰력을 필요로 한다. "생각하는 데는 아이가 되지 말고 어른이 되라"(고전 14:20)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경청해야 할 때이다.

한국교회는 21세기 세계 교회사의 책임적인 한 주역이 되어야 하는 거시적 사명 앞에 서 있다. 이러한 거시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목회와 선교 활동 각 단계에서 신앙생활의 기초가 되는 활동과 성찰의 황금비율을 조화롭게 맞추는 미시적 작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목회자들의 현장 신학자로서의 자기 정체성 회복과도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평신도 지도자들도 평신도 신학자로서의 성숙한 면모를 갖추어야 한다.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사고는 올바른 실천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