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리그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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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9월 20일(화) 00:00
   
박지영/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한시미션 간사
박 지 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한시미션 간사

혹 음악에 문외한인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연주회에 가서 그 음악을 들어보면 그 영혼을 울리는 소리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음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는 전문가와 일반인에 차별이 없다.

한편,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음악학도들의 작은 음악회 등을 찾아가 봤다면,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음악적 미성숙을 확인한 경험들이 다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연주자의 스승,동료들은 곡의 난해함,연주자의 당시 컨디션 등을 충분히 이해하는고로 좋은 연주였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는 것을 곁눈질로 본 경험들도 있을 것이다. 진정한 대가는 자신의 연주 당시의 육체적 정신적 특수 사정이나 연주곡의 테크닉적 어려움을 전혀 모르는 이들에게도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속사정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해하고 공감하는 연주는 '그들만의 리그'에 머무른다.

'그들만의 리그'는 현 우리 기독교 내에서도 행해지고 있는 것 같다. 기독교인들끼리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나누는 수많은 언어들은 우리나라 인구 중 25퍼센트만이 이해하는 '그들만의 언어'이다. 헨리 나우엔(Henri Nouwen)은 그의 저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에서 저술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명백히 기독교적인 용어나 오랜 교회 생활에 근거를 둔 말로는 위로나 도움을 전혀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 개념과 이미지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영혼의 중심에 도달할 힘을 잃고 있었다."

현재 우리 기독교가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각종 매체,저술 등은 대부분 25퍼센트만을 향한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의 진리를 보다 먼저 들어야 할 우선 순위는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75퍼센트에게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룹 성경공부 등을 통하여 25퍼센트의 기독교인들끼리 이른바 나눔(sharing)을 할 때에는 모두들 성경도사가 되어 말을 잘 하는데,75퍼센트의 비기독교인들과 섞여 사는 일상 생활에서는 그와 같은 말의 성찬을 나눌 일이 없으니 구체적 삶 속에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할 도구나 수단이 없는 것이다. 말이나 글에는 한계가 있다.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 안에 갇혀 있는 기독교적 언어와 글은 일반적인 소통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소화할 수 있는 언어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삶 자체이다. 그 삶이 예수를 생각나게 하는 삶,예수가 누구이시길래 그 예수를 믿는 사람은 저토록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며 사는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삶. 이러한 삶이야말로 진정한 기독교인들의 삶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독교 내 25퍼센트로부터만 인정받고 칭찬받는 연주를 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나머지 75퍼센트가 인지할 수 있는 삶의 내용을 통해 그들의 영혼을 울려 우리 기독교인들의 존재의 향기 자체가 저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게 할 것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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