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음악,그 중간 목표로서의 역할

법과 음악,그 중간 목표로서의 역할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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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7월 19일(화) 00:00
   
박지영/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ㆍ한시미션 간사
박지영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ㆍ한시미션 간사

미국의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의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미국 최고의 명문 음악학교인 줄리아드(Juilliard)에서 클라리넷을 공부한 적이 있다. 또한 현재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흑인 최초로 버밍함(Birmingham) 음악학교에 입학한 바 있는 촉망받던 피아니스트였다.

유럽의 대형서점에 가면 '음악과 법'이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된 책들이 서가 한쪽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는 음악과 예술,법률 혹은 기타 학문은 서로 전혀 다른 것,나아가 상호 배치되는 것으로까지 인식하는 우리 나라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일지 모른다. 법과 음악을 분리해서 바라보고 하나의 사회현상 안에 녹여보지 않는 경직되고 때로는 위계적이기까지 한 이분법적 사고는 고정관념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만 특히 두드러지는 특징인 것 같다.

법과 예술이 판이한 분야로 비춰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술은 시대정신이 반영된 예술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사상을 선도한다. 개별적이고 직접적인 영향력의 특성상 독창성과 실험성이 우선시된다. 반면 법은 인간의 일정한 행태가 반복되어 축적된 후 이에 대한 규율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그 과정에서 제도화된 권력에 의한 검증과 다수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에 독창성보다는 공정성이,실험성보다는 안정성이 요구된다. 또한 검증과 합의의 도출 과정에 시간이 걸리므로 다분히 사후적이다. 예술과 법은 한 사회의 앞과 뒤에서 그 사회를 이끌고 밀어 주며 지탱하는 '같은' 나무를 이루는 '다른' 역할을 가진 가지들인 것이다. 그 가지들이 지향하는 것은 한 사회의 발전이다.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은 사회의 긍정적 변화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법이든,음악이든,그 무엇이든,이를 중간 목표로 정해 놓고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평생의 직업이 되었든,전문분야,관심분야가 되었든 말이다.

결국 개개인의 직업과 전문분야, 아울러 삶 속에서 각자의 주어진 위치와 자격,제반조건 등은 한 사회의 발전 그리고 나아가 거룩한 백성과 제사장의 나라가 되는 기독교적 소명의 최종 목표를 위하여 설정해 놓은 중간 목표이다. 최종 목표가 동일한 경우 그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상정한 중간 목표는 서로 이분법으로 가르고 말고 할 관계에 있지 아니하고 상보관계에 있다.

우렁쉥이는 태어나자마자 깊은 바다로의 여행을 시작해 가장 안전해 보이는 산호 깊은 곳에 정착하면 평생을 그 곳에서 산다고 한다. 우렁쉥이가 산호에 정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신의 뇌를 먹어버리는 일이란다. 우렁쉥이의 뇌는 바다 속 산호를 찾는 일을 끝으로 자신의 소임을 다했기 때문이다. 우렁쉥이의 인생의 최종목표는 '산호에의 안착'이었나 보다.

우리 크리스찬이 저급한 은혜에 안주하고 머물러 있다고 비판받는 것은 직장을 가지고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것,그 자체를 삶의 최종 목표로 오인하고 그 최종 목표만을 달성케 해 달라고 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거룩한 백성,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이라는 보다 큰 산봉우리를 향해 올라갈 꿈을 꾸지 않은 채 이미 획득한 중간 목표의 산허리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일지 모른다. 중간목표로서의 법과 음악이 거룩한 사명을 향한 최종 목표를 향한 같은 디딤돌이듯,우리 크리스찬이 각자 가지고 있는 여건과 특권을 보다 더 큰 뜻에 쓰임받기 위한 도구이자, 중간 목표에 불과한 것으로 여길 때,받은 복을 삼키고 안주해 버리는 우렁쉥이의 모습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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