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情緖를 치료하는 병원

병든 情緖를 치료하는 병원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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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6월 14일(화) 00:00
   
신동작/부산장신대학교 총장서리
신동작
부산장신대학교 총장서리

우리는 보통 질병이라고 하면 육체적인 질병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다가 그 원인을 찾기 곤란하면 정신적인 요인을 찾는다. 오늘날 우리는 그보다 더 정서적인 문제가 심각함을 진단하며 교회의 정체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은 의학적인 질병 만을 말씀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1)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병든 자를 병치(竝置)시키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전적인 치유를 필요로 하는 환자들 임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진단 앞에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어떤 형태로든지 환자이다. 또한 그 죄인들 곧 환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다.

이 세상에는 육체적, 정신적 질병을 치료하는 병원은 많이 있다. 그러나 딱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질병을 앓지는 않는다 해도 죄의 본성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본인이 의식을 하든 못하든 건강치 못한 자화상을 안고 살기에 정서적인 치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정서적 치유의 때를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서적인 병인(病因)이 심화되어 육체적 질병으로 또는 정신적 질병으로 발전한 이후에야 병원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요즈음 의료계에서는 사후약방문처럼 병이 난 다음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미연에 발병을 방지하는 예방의학이 부각되고 있다고 한다. 인간의 정서상의 문제를 치료하는 예방적 차원은 어느 누가 그 몫을 담당할 것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이 말씀은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소시켜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3) 이 말씀은 열등감과 자책감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이 말씀은 갈등과 소외감으로 잠 못 이루는 이들을 위한 약속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 씻음과 아울러 정서적 치료를 약속하신다. 이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선포하는 교회 역시 병든 정서를 치유하는 병원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교회 자체의 질병으로 인해 사회의 지탄을 받고 오히려 교회에서 상처받은 영혼이 사회에서 유리방황하는 일도 허다하다. 병원의 본질은 치료이다. 병원이 이윤 추구의 길에 연연한다면 그 병원은 기업일 뿐 병원의 존립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진정한 치유는 의사의 환자에 대한 사랑과 환자의 의사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즉 약물의 대증(對症)적인 치료 이전에 정서적인 치료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병들어 아파하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긍휼의 마음으로 바라보셨던 예수님의 시선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자. 그리고 남에 대한 부정적 평가 이전에 나도 역시 치유 받아야할 존재임을 잊지 말자.

교회는 환자들이 모인 곳이다. 그러나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보듬을 때 그리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고자 노력할 때 나 역시 치유를 경험하게 된다. 예수께서 피로 사신 이 교회가 세상이 주는 상처로 인해 온갖 아픔과 설움을 안고 살아가는 소외된 주의 양들이 와서 평안히 쉬면서 그 상처를 치유하는 안식처요 정서적 병원으로서의 역할을 속히 회복하도록 하자. 주님은 우리를 이를 위하여 부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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