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찌'라는 캐릭터 명상

'부찌'라는 캐릭터 명상

[ 논단 ] 주간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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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5월 18일(수) 00:00
신동작
목사ㆍ부산장신대 총장서리

기업은 요즘 이미지 메이킹(image-making)에 상당한 비용을 들이고 있다. 캐릭터도 만들고 캐릭터송도 제작하고 있다. 이런 현대화된 기업 홍보 전략은 곳곳에서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사회가 기업의 신선한 이미지에 호감을 갖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한국 교회의 차례다. 새로운 차원의 캐릭터를 사회에 내놓을 때가 됐다.

부산장신대는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학교 캐릭터를 '개미'로 정하고 이름을 '부찌'(Buzzi)라 부르기로 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는 말씀을 근거로, 우리 학교는 비록 작지만 개미같이 부지(찌)런히 뛰어보자는 의미를 담아 본 것이다.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할 것이 없다고 자조하는 자리를 넘어서, 작지만 부지런히 땀흘려 일해서 이 민족을 복음으로 세우는 학교가 되자는 몸부림이다.

인간은 달려만 가던 길에서 잠시 멈추어 때때로 자신과 자신의 환경을 점검해 보고 주위 사람과의 관계를 검토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 모 회사를 경영하던 어떤 사장이 괴로움을 호소한 적이 있다. 자기는 회사를 경영하면서 사원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여 봉사했다고 한다. 그래서 명절 때만 되면 사원들이 집에 줄을 지어 찾아왔단다. 그런데 그 회사가 부도났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셋방으로 물러앉게 된 그는 함께하던 사원들이 찾아와 위로해 주면 용기를 얻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한 사람도 찾아와 주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주위에 있는 사람이 나와 어떤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간의 관계는 돈, 지연, 학연, 혈연 등 다양하게 얽혀있다. 하지만 궁지에 몰려 있을 때 진정으로 위로해 주고, 찾아와 주는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몇 사람이나 있는지를 생각해 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의 교회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점검해 보자. 오늘의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푸념만 하지 말고 모든 교회가 사회를 향하여 의미 있는 교회의 캐릭터를 정하여 자기 반성의 기회와 쇄신의 기회를 삼아야 하겠다. 우리는 때로 진지한 말로 이야기를 나눌 때 '마음을 비우라'는 말을 사용한다. 마음을 비운다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겸손함을 나타내는 것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양보한다는 뜻인가? 아니면 다수의 의견에 따른다는 것인가? 그런데 이렇게 해서 지나놓고 난 다음에 그 마음이 불편하고 그 다음에 불평이 이어진다면 그것은 마음을 비운 것이 아니다. 잠시 마음으로 도피한 것 뿐이다.

참으로 마음을 비우는 것은 그 빈 자리에 예수님을 모시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세상에서는 어디에도 빈 자리가 없다. 컵에 물을 쏟으면 빈 것 같아도 사실은 공기가 그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그와 같이 인간의 마음에도 그냥 마음 자리를 비우면 다른 것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예수님의 생각으로 꽉차게 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요동이 없어진다.

이렇게 하려면 우리의 마음에도 분명한 신앙자의 캐릭터가 있어야 한다. 성경의 인물들을 분석해 보면 다 신앙 부면(部面)에 캐릭터가 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개인이나 단체나 간에 세상 물결에 휩쓸리지 말고 신앙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그것을 머리에 그리면서 성화의 길로 매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작은 것에 대해 그 가치를 평가절하할 때가 많다. 그러나 예수님의 교훈은 작은 것에서부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크고 작은 것으로 저울질 하지 말고 질적인 경중을 다루면서 새로운 의미를 부각시키며 교계의 분위기를 바꾸는 일에 적은 힘이나마 동참하려는 운동을 해야 한다. '나에게서 비쳐지는 캐릭터는 어떤 것일까', 자기 모습을 진지하게 살펴보는 시간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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