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의 전통을 잇는 교회

사도의 전통을 잇는 교회

[ 논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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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11일(금) 00:00

김 희 보

A목사님, 주님께서 목사님에게 큰 사명을 맡기심은 본교단의 정체성인 사도의 전통을 잇는 교회와 총회를 이룩하시려는 뜻인 줄 압니다. 목사님은 항상 외유내강하시며 진리 편에 서서 일해 오셨습니다. 본 교단의 당면 과제인 사도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는 '신학'과 '예배'와 '교회 정치'가 올바른 궤도에 올라서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본교단의 신학은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고 성경 중심의 신학이며, 실천적인 학문의 신학인 동시에 교회 일치의 신학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신학의 전통을 잇기 위해서는 오늘의 신학 교육이 빠져 있는 병폐, 이를테면 기존 신학을 바탕으로 하여 신앙(성경)을 분석할 것이 아니라,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이룩되는 신학이어야 합니다. 신학이라는 학문이 두뇌로 행해지는 지적 작업이라면, 신앙은 하나님이 주권자시라는 신뢰에서 생겨지는 영적 성격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글에 '교육은 국가의 백년 대계'라 하였습니다. 교역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의 교육이 바로 행해질 때 삯군이 아닌 참 목자가 배출될 것입니다. 교인의 목자이며, 봉사하는 종이며, 치리하는 장로이며, 깨우치는 교사이며, 복음의 전도인이며, 또한 진리의 열쇠를 맡은 청지기인 목사를 '월급쟁이'로 키우는 교육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둘째, 어느 신학자는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라고 규정하였습니다. 오늘의 신학 교육은 불행하게도 목회와는 거리가 먼 관념적인 면에 빠져 있는가 하면, 인위적인 '잔 꾀'를 가르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을 갖추는 신앙인이 되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신앙 및 인간성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예배 의식은 하나님의 '세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없게 너무나 떠들썩하여 마치 '아론의 금송아지' 경배를 연상하게 합니다. 칼빈은 "설교자는 하나님의 입이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인간의 '말장난'인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칼빈의 주장이 금과옥조(金科玉條)일 수는 없지만, 그는 예배에서의 찬송가로 시편만 인정하였습니다. 오늘처럼 타악기에 따른 떠들썩한 노래가 과연 찬송가일 수 있으며, 마치 갈멜산에서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같은 흥분 상태가 영성일 수 있겠는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예배는 어서 경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셋째, 교회 정치는 하나님께 복종하고 이웃을 섬기는 교회다운 교회가 되게 하기 위해 존재하며 또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회를 조직하는 궁극적인 근거는 인간의 지혜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있습니다. 교회의 직무와 정치는 교회(노회, 총회)에 대한 하나님의 은사에 속합니다.

이와 같은 본질이 상실되었기 때문에 교회 정치는 세속 정치와 마찬가지로 부패하고 있습니다.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우선 지역성이 청소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인맥에 의해 채용된 일부 총회 직원들의 근무 태도가 섬기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야 올바른 교회 정치가 수행될 수 있습니다.

사도의 전통을 잇는 교회는 정치의 중요성을 주장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가 철저하게 복음에 종속되는 점에 있습니다. 정치가 권력의 순위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정치의 본질은 '땅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기 위한 조직입니다.

본교단의 신학과 예배와 교회 정치는 마게도냐 사람이 "우리를 와서 도우라"는 바울의 비전을 보아야 합니다. 사도의 전통을 잇는 교회의 '마게도냐'는 학벌과 지연과 혈연을 내세우며 보수가 좋은 곳을 찾는 '삯군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곳, 바로 고난과 순교가 기다리는 농어촌이며 공산권이며 또 아랍권이기도 합니다.

 / 서울장로회신학교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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