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품을 보는 기독교적 시각

한강 작품을 보는 기독교적 시각

[ 특별기고 ]

김수중 목사
2024년 10월 21일(월) 10:41
노벨상 홈페이지에서는 문학상 수상자 한강 작가에 대해 소개했다. /사진 노벨상 홈페이지
인간 내면에 대한 고뇌를 섬세한 문체로 형상화한 한국 여성 작가의 소설이 무심하게 일상을 보내던 세상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2024년 가을, 스웨덴 아카데미는 올해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한국의 한강 작가에게 안겨주며 그 선정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이다." 그렇다면 노벨상의 영광은 이 땅에서 일어난 비극적 사건들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과 그 인간적 고뇌를 인식하고 탐구한 작가의 노력이 한데 모여 이룬 열매라 할 수 있다.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낸 한국의 국민 대다수는 트라우마를 훨훨 떨쳐내고 한 가족 같은 마음으로 기뻐했다. 그리고 한강의 작품을 다시 찾아 읽으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내부에 상처로 남았던 고통을 조용히 치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문학적 흐름은 기독교가 추구하는 정신과 근본적인 면에서 일치한다. 이에 한강의 작품을 기독교인의 시각으로 더 세밀하게 바라보아야 할 이유가 생겨난다.

기독교인들은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작가의 작품이 기독교문학으로 인정되고 그 범위 안에서 논의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따라서 먼저 작가가 기독교인인가를 알고 싶어 한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나 소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에 연결되고 있는지 여러 각도에서 살피게 된다.

지금의 시대 조류는 기독 사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의식의 기저에 내밀히 흐르는 작품들이 현대문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한강 작가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이른바 선교적 소설을 발표한 적이 없고, 또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하였다. 한강의 부친인 원로작가 한승원 선생은 불교에 바탕을 둔 작품을 썼으나 딸의 소설 세계는 그와 판이한 양상을 보인다. 인간 내면에 대한 고뇌와 극복 방식이 기독교에 더 가깝다는 점은 부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기독교적 고난의 형상은 세 가지 단계로 나누어 진행된다. 성경은 먼저 삶에 고난이 있음을 말한다. 이어서 이 고난은 특정한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삶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임을 알려준다. 최종 단계로는 궁극적인 장래의 영광에 참여함으로써 완전한 고난 극복이 이루어짐을 믿게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고난을 대하는 태도이다. 이는 사람에 따라 차이를 빚어내는데, 개인의 고뇌와 기도를 중심으로 삼는 부류와 공동체의 위로에 의지하는 갈래로 나뉜다. 한강 작품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고난을 내면적 치유로 풀어가는 사람들이다. 고난의 원인은 각기 다르지만, 그것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려다 생겨난 일이라는 점에 일치성을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깊은 고민 속에서 개인적 변화를 이루려 몸부림친다. 한강 작품은 여기까지 기독교문학의 전개 과정을 함께 걷지만, 마지막 단계인 하나님을 향한 의뢰는 내면에 감추어 둔다.

'채식주의자'는 한강이 맨부커상을 받음으로써 널리 알려진 작품이다. 여성 주인공은 본능적 욕구와 사회적 압박이 일으킨 갈등 속에서 개인적인 변화 과정을 겪는다. 인간 본성에 대해 한없이 고민하면서 사회적 규범에는 맨몸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인간과 사회의 고난이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극대화된 소설이 '소년이 온다'이다. 5.18 광주의 역사적 비극 속에 인간의 존엄성을 수호하고 그 트라우마를 개인적 내면의 치유법으로 이겨내려 하는 애절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미싱사 처녀가 광주의 참상을 보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울부짖음을 발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고통을 외면하는 듯한 초월적 대상을 향한 호소의 표현이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4.3의 제주 학살을 기억하려는 화자와 친구 사이의 대화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지내왔으나 그 상처를 딛고 사랑과 연대의 의미를 되살리게 된다.

필자는 지난 2017년에 한국 기독교문학에 관한 책을 펴낸 적이 있다. 그 책에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포함시킨 것을 두고 '한국기독공보' 기자가 인터뷰를 통해 설명을 요구해 왔다. 필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한강 작가는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작품에 기독교적 정신이 스며있다. 변명을 하자면 목사인 숙부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해보고, 깊은 영혼의 세계를 추구하는 이 시대 최고의 소설가 중 한 명인 그의 작품을 기독교문학에 넣고 싶었다." (『한국기독공보』 제3102호. 2017.8.5. 20면)

시간이 흐르고, 필자의 기대를 뛰어넘어 세계적 대작가로 우뚝 선 한강 작가! 필자는 그의 심오한 인간 탐구의 결실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 귀결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당시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으나 인간의 죄의식을 일깨우는 문인으로서 '지상의 노래' 등 수작을 낸 이승우 작가를 주목한다. 그는 자신의 문학과 삶이 신앙을 벗어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며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문인이다. 인생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가라 하면 필자의 뇌리에 이승우, 한강이 연결된다. 한강 작가에 이어 인간을 탐구하는 믿음의 작가들이 우리 삶을 위로와 소망으로 가득 채워주기를 기다린다.



김수중 목사(조선대 국문과 명예교수)
카드 뉴스
많이 보는 기사
오늘의 가정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