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너는 하늘로 갔지만 네 심장은 생명이 되었구나"

"딸아, 너는 하늘로 갔지만 네 심장은 생명이 되었구나"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장기기증인 유가족 200가정 초청 카네이션 전달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4년 05월 08일(수) 21:27
양이순 씨 가슴 한편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김지은 씨.
올해 4살 된 라율이는 낯을 많이 가린다. 오늘은 용기를 내 할머니의 귓가에 속삭인다.

"할머니 우리 엄마를 살려주셔서 감사해요."

지난 8일 어버이날을 맞아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 이사장:박진탁)가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200가정을 초청, 카네이션과 어버이날 선물을 전달했다.

이날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인 한필수, 양이순 부부는 심장이식인 김지은 씨와 그의 딸 라율이를 만났다.

김 씨와 라율이는 미리 준비한 빨간 카네이션을 한 씨 부부의 가슴 한 편에 달아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심장병으로 10년이 넘게 투병생활을 해 온 김 씨는 지난 2017년 뇌사자에게 심장이식을 받고 새 삶을 얻었다.

심장 이식 후에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출산에 성공해 딸 라율이를 얻었고 오는 5월 말에는 국내에서 최초로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다.

심장 이식인에게 출산은 기적 같은 일이다. 이식 후 평생 복용해야 하는 면역억제제 일부가 소아 기형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약 복용을 중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씨는 "기증인 덕분에 저 뿐 아니라 라율이와 둘째 튼튼이까지 세 명의 심장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면서 "두 번째 삶을 주신 기증인과 가족들을 항상 기억하며 기적처럼 찾아온 두 아이를 열심히 잘 키우겠다"고 감사를 전했다.

한 씨 부부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있는 김 씨의 손을 꼭 잡고는 "하늘에 있는 딸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처럼 고맙고 애틋하네"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딸 미영 씨(당시 37세)는 2009년 뇌출혈로 뇌사판정을 받았다. 미영 씨는 딸 하나를 남긴 채 장기기증으로 5명의 생명을 살려냈다. 양이순 씨는 "미영이가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날 때 손녀가 라율이만 했는데 이제 대학생이 되었다"면서 "자식을 앞세우고 괴롭고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사람들도 지은 씨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위로가 된다"고 심정을 전했다.

국내에서는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31조(비밀의유지)에 의해 장기를 주고받은 이들이 서로의 정보를 알 수 없다. 이식인을 그리워하며 건강하기만을 기도해 온 한 씨 부부에게 이날의 만남이 더 특별한 이유다. "비록 딸의 심장을 직접 이식받지는 않았지만 딸의 장기를 이식받은 이들도 건강하게 지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는 한 씨 부부는 김 씨가 달아준 카네이션을 한참 어루만지더니 "딸을 만난 것 같아… 고마워…"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행사에는 심장을 이식받은 이식인들과 자녀를 떠나보낸 부모들이 모였다. 자녀를 그리워하며 아픔 속에 어버이날을 맞이할 유가족들은 이날 이식인들이 달아주는 카네이션을 바라보며 "장기기증으로 또 한명의 아들이 생겼다"고 감동했다.

본부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장기기증 유가족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전하고, 생명을 살렸다는 자긍심이 붉은 카네이션처럼 피어나기를 기원하며 이날 행사를 마련했다.

한편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뇌사 장기기증인은 총 7504명이며 이들을 통해 3만 732건의 이식 수술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매해 장기부전 환자는 급증하고 있으며 이들 중 매일 7.9명이 생명을 잃고 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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