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합리적 방안 찾도록 관심 가져야

의대 정원...합리적 방안 찾도록 관심 가져야

최은숙 기자 ches@pckworld.com
2024년 02월 15일(목) 10:44
"아이가 어제부터 열이 나더니 39도에서 떨어지질 않아요. 8시부터 소아과 오픈런하려고 갔더니 다니던 소아과는 휴진. 바로 옆 건물 소아과에 갔더니 8시 20분인데 이미 오전 진료 마감. 고민하다가 다른 소아과에 갔는데 다행히 10번째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어요."

"9시에 나가면 최소 1~2시간 대기는 기본이에요. 오늘은 안되겠다 싶어 새벽 6시에 나와서 병원 철문 앞 대기노트에 이름을 적고 왔는데 이미 앞에 5명이 더 있었어요. 집근처 대학교에 소아 전용 응급실이 운영될 때 요긴하게 활용했는데 전공의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네요."

지역의 맘카페마다 '소아과 오픈런'의 고충을 토로하는 부모들의 글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소아과 오픈런'은 소아과가 문을 열기도 전에 아픈 아이를 안고 줄을 서서 진료를 받은 현상이다. 전문의와 전공의 부족으로 종합병원 내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중단되고 지역의 소아청소년과 폐업까지 이어지면서 '소아과 진료대란'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소아과 진료대란'은 시작에 불과하다. 얼마전 서울아산병원의 한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집도할 의사가 없어 사망했고, 대형병원에 의사가 없어서 타병원으로 이송했다는 소식이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응급환자가 제때 치료받지 못하고 병원을 전전하는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목숨을 잃는 사례는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 의사 부족 현상이 필수 의료 붕괴로 이어지면서 의대정원을 파격적으로 늘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일 보건복지부는 2006년 이후 3058명으로 동결됐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입시부터 5058명으로 확대해 의사 인력 수급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의료계는 철회를 촉구하는 상황이다.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 원장(명이비인후과)은 "우리나라 의과대학의 시작은 130여 년 전 선교사들에 의해서 처음 시작됐다"면서 "선교 목적으로 시작해 현재 전국에 의과대학이 40개까지 늘어났고 입학 정원은 3058명"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 정책에 대해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의사이지 의대생이 아니다"면서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실제로 이들이 의사로서 역할을 하는 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라고 회의적인 입장을 밝혔다. "의과대학 증원으로 입학한 의대생이 유급 없이 6년 만에 졸업을 한다고 해도 이들이 부족한 의료 영역으로 간다는 보장도 없다"는 이 원장은 "더구나 필수 의료 영역의 의사와 교수들이 떠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들을 가르칠 교수나 수련 기회도 없을 것 같다. 당장 의사가 부족한 것이 문제라면, 떠난 의료진이 다시 필수 의료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먼저 환경을 조성하고, 이후에 장기적인 대안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현직 의료진들은 대체로 정원 증원보다 '의료 수가 인상 및 개선'과 '법적 보호 대책 마련'이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개업한 A의사는 "난이도 높은 수술과 고된 업무에 대한 보상 대신 책임만 강조되는 것이 의료 현장의 모습"이라면서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등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분야에 의료진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쓴소리했다.

실제로 의료진 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필수 의료 과목 기피 이유'에 대해 응답자의 31%가 '노력대비 낮은 대가 등 불충분한 처우'를 꼽았고, 응답자의 3분의 2가 '의료수가 인상 및 합리적 개선'을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의대 증원 확대에 앞서 불균등한 인력 배치의 근본적 원인을 파악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료진의 집단행동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3.4%는 '필수 진료과 의사들이 부족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답했고, 89.3%는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했다. 또한 '의대 증원의 결정권이 의협에 있다'는 의견은 10.5%에 불과했으며, 87.3%가 '국민과 정부가 의대 증원을 결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기독교계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는 입장이다. 한국교회총연합은 지난 14일 '의대 정원 확대를 결정한 정부의 합리적인 판단을 적극 지지하며, 국민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책 추진의 결단에 감사하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교총은 '지금 의료 현실은 인력 부족으로 인한 응급체계 마비, 비인기 진료과 기피 현상, 의사들의 과중한 업무와 피로 누적 등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고 우려하며 "의대 정원 확대는 역대 정부마다 논의한 것으로 의료계 반발로 미뤄져 왔을 뿐, 언젠가는 시행해야 할 국가적 사안이며, 이는 지역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공공의료를 확충해 국민 건강권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피할 수 없는 결정"이라고 했다.

교인들은 "의사들이 의료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 보기 안좋다. 변호사가 증가해서 법률서비스도 더욱 다양해진 것 아니냐", "예수님은 아픈 이들을 고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이 충분한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독교 의료진들이 먼저 섬겨주길 바란다" "필수 의료 과목의 의료진 부족이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의대 정원이 급격히 확대돼 의료질이 저하되면 어떻하느냐"는 등의 다양한 의견을 밝히면서도 "한국교회가 방관자가 되지 말고 정부와 의료계가 보다 신속히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도록 관심을 갖고 기도해야 할 때"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최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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